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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0.25 06:02 수정 : 2019.10.25 20:26

[책&생각] 책이 내게로 왔다

<라틴어 수업>은 라틴어를 가르치지 않는다. 단지 이 낯설고 매혹적인 언어를 통해 다른 세계를 만나고 삶을 돌아보게 한다. 이 책은 출간 후 빠르게 베스트셀러가 된 이래 지금까지 사람들이 찾는 스테디셀러가 되었다. 그래서인지 종종 책의 출발선에 대한 질문을 받는데, 모든 것은 우리의 무지개 같은 바람과 적시에 만난 저자와, 왼손(?)으로서의 의욕이 시작이었다.

당시 우리는 삶과 학문의 근간이 되면서도 보다 많은 사람에게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책을 만들고 싶었다. 그래야 사람들이 한 권의 책을 다리 삼아 또 다른 책, 또 다른 학문이라는 새로운 세계로 나아갈 수 있을 테니까. 물론 잘 알고 있다. 이건 특별하지 않은 바람이자 뜬구름 같은 소리라는 것을. 그러나 그런 책이 실재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때마침 한 대학교에서 진행된 한동일 교수의 라틴어 강의가 일간지 기사에 실렸다. 우리는 라틴어가 학문의 뿌리에 닿아 있다는 사실과 삶에 대한 질문으로 강의를 마치는 수업 방식에 주목했다. 수업 대상이 대학생이라는 점과 저자의 독특한 이력도 눈길을 끌었다. 그런 이유들이 우리로 하여금 이 책의 출발선에 서게 했다.

꽤 긴 시간이 지나 본격적으로 시작된 집필은 순식간에 마침표를 찍었고, 원고는 불시에 우리에게로 왔다. 저자가 보내온 파일을 열어보니 빠르게 치고 나가는 글은 라틴어 수업이자 인문학 수업이었고 인생 수업이었다. 라틴어를 도구 삼아 언어와 종교, 역사와 문화를 아울렀고, 저자 자신의 경험과 속내가 곳곳에 녹아 있었다. 수강생이었던 한 학생의 표현이 적확했다. “아직 꽃피지 못한 청춘, 그러나 ‘라틴어 수업’에서 배운 것은 ‘꽃’이 아니라 그 근본이 되는 ‘뿌리’였다.”(제자 김리은)

또한 다방면의 인문학적 지식으로 밀어붙이다가도 ‘사랑하라, 그리고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하라(Dilige et fac quod vis)’ 같은 라틴어 명문들과 저자의 경험이 녹아든 텍스트가 읽는 이를 끌어당겼다. 다만 상대에게 다가가는 보폭, 속도와 리듬은 조절할 필요가 있어 보였다. 그러니 ‘왼손은 거들 뿐’이다. 자발적이자 의욕적으로. 우리는 저자와 함께 글의 완급 조절에 힘을 기울였고, 강의 현장의 느낌을 최대한 전하고 싶어 문체도 강연체로 바꿨다.

책에 대한 반응은 예상보다 빨랐고 컸다. 그 물결이 지금까지 이어져 100쇄를 향해 가고 있다. 우리는 그사이 <라틴어 수업>을 통해 ‘라틴어’뿐만 아니라 새로운 언어에 흥미가 생겼다는 독자들, 공부에 대한 의지가 생겼다는 독자들과 스스로의 삶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다는 독자들을 많이 만났다. 시간이 흐르고 보니 한 권의 책이 또 다른 세계로, 자기 자신에게로 사람들을 이끌고 있었다. 무지개를 좇았는데 어느새 또 하나의 무지개가 되어 있었다. 무엇보다 처음의 바람대로 가는 실뿌리라 할지라도 이 책이 누군가에게는 시작점이 되었다는 것이 가장 기쁘다. 지금 여기에 작은 바람을 보태자면 그 여린 뿌리가 자라 흔들리지 않는 근간이 되고, 싹을 틔우고 줄기를 올려 저마다의 꽃들을 피워냈으면 싶다. 어쩌면 또 누군가는 그걸 동력 삼아 새로운 무지개를 세울 테니 말이다.

김수진 흐름출판 편집자

※ 우리 사회와 출판계가 주목한 책을 펴낸 편집자들이 직접 들려주는 책에 얽힌 이야기를 4주마다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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