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1.01 06:01
수정 : 2019.11.05 15:15
호재
황현진 지음/민음사·1만3000원
황현진(
사진)의 소설 <호재>는 주인공 호재의 고모부가 죽었다는 연락으로 문을 연다. 재개발 사업이 공표된 동네에서 밤 늦게까지 홀로 복덕방을 지키던 고모부는 강도의 칼에 찔려 절명했다. 고모는 자식이 없는 자신들에게는 유일한 혈육인 호재에게 오랜만에 전화를 걸었고, 그로부터 호재와 고모 두 여자의 시점을 오가며 지난 시간들이 불려 나온다.
호재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10년 가까이 고모 두이의 집에 얹혀 살았다. 부모는 이혼을 했고, 택시 운전을 하는 아비는 딸을 누이에게 맡겨 놓은 채 1년에 두 번 명절 때만 잠깐 얼굴을 비칠 뿐이었다. 마지막으로 고모 집에 들렀던 10년 전, 아비는 자신에게 빚을 진 누군가를 쫓는 길에 호재를 동행했고, 소득 없이 끝난 그 추적 이듬해 몰던 택시가 버려진 채 발견된 것을 끝으로 행방이 묘연해졌다.
호재 아비 두오의 삶을 망가뜨린 사건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무렵에 벌어졌다. 동갑내기 청년과 사소한 시비 끝에 그를 죽게 만들었는데, 함께 폭행에 가담했던 친구 둘은 빠져나가고 두오가 자발적으로 죄를 뒤집어쓰게 된 것. “우리가 너한테 큰 빚을 졌다. 평생 갚을게”라는 친구들의 말을 두오는 순진하게 믿었다. 재판정에서 그는 “후회하거나 반성하는 기색 없이, 위풍당당하게 살인을 인정했다.” 그가 쫓는 ‘빚쟁이’란 바로 그 두 친구들이었던 것. 이제 그에게는 배은망덕한 옛 친구들을 붙잡아 밀린 채무를 정산하는 것이 삶의 목표가 되었다. 그러니까 그는 “그들에게 걸었던 인생을 되찾으려고 다시 자신의 삶을 통째로 갖다 바쳤다.”
이토록 허랑하고 졸렬한 두오를 대신해 고모 부부가 호재의 부모 노릇을 착실하게 한다. 혈육인 고모는 물론이고, 많은 면에서 두오와 상반되는 고모부 역시 호재를 친딸처럼 챙긴다. 비록 부유하지는 않아도, 저녁을 준비하면서 “모두가 잔뜩 취한 사람들처럼 흥에 겨워 같은 노래를 부르는 한때”는 호재의 삶에서 드물게 평화롭고 행복하던 시절로 기억된다.
고모부의 장례식 다음날 출근한 호재에게 고모는 아버지가 돌아왔다는 놀라운 소식을 전해 준다. 게다가 그 아비가 로또에 당첨되었다는 더 놀라운 소식도 함께. 가난하고 무능했던 고모부가 평생 매달린 것이 로또였다. 아비는 정말 로또에 당첨된 것일까. 그 로또는 혹시 고모부의 것이 아니었을까. <호재>는 이런 불길한 의문을 남긴 채 돌연 끝을 맺는다. 끝나도 끝나지 않은 소설, 마지막 문장에서부터 새로운 사건이 벌어질 것 같은 여운이 남는 소설이다.
글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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