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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1.01 06:01 수정 : 2019.11.01 09:25

당신이 아름답지 않다는 거짓말-페미니즘이 발견한 그림 속 진실

조이한 지음/한겨레출판·1만6500원

“위대한 여신이었다가, 악마와 붙어먹는 사악한 존재였다가, 메두사나 스핑크스 또는 세이렌이었다가, 마녀가 된 여성이라는 타자는 현대에 오면 유대인이 되고, 난민이 되고, 흑인이 되고, 성소수자가 되고, 그리고 페미니스트가 된다.”

2015년 이후 한국 사회의 새로운 페미니즘 물결 속에서 조이한의 그림 읽기는 더욱 선명하고 강력해졌다. 독일 베를린 훔볼트 대학에서 미술사와 젠더학을 공부하고 2005년 돌아온 그는 이후 ‘아트 에세이스트’로서 지난 10여년간 강의와 책을 통해 명화 속 ‘위험한 젠더 이야기’들을 한국 사회에 꾸준히 제출해 왔다.

제니 사빌의 ‘낙인찍힌’(1992). 캔버스에 혼합 재료, 209.5×179㎝, 영국 런던 사치 컬렉션.

신간 <당신이 아름답지 않다는 거짓말>은 미술사로 본 남자 이야기를 다룬 <그림에 갇힌 남자>(2006)와 쌍을 이루는 여성 이미지 미술사 책이다. 그림 속에 박제된 불온한 여자들이 화폭을 찢고 나와 오랫동안 은폐된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하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미술에 나타난 여성의 표상을 살피면서 아름다움을 승인하거나 추함을 낙인찍는 권력의 시선을 분석하고 역사적 맥락을 설명하는 것이 책의 한 축이다. 또 다른 축은 미술을 실마리 삼아 가부장의 역사, 남성중심적 신화, 여성억압의 문화를 새롭게 읽어내는 사회 비평이다.

주디 시카고의 ‘출산의 눈물’(1982). 비단에 자수, 50.8×69㎝.

지은이는 미켈란젤로, 케테 콜비츠, 케년 콕스, 프랑수아 부셰, 사이 톰블리의 작품을 거쳐 신디 셔먼, 해나 윌키의 사진까지 시대별로 ‘문제작’을 검토한다. 여성 성기와 젖꼭지를 왜 그리 보려고 안달이며 한편으론 숨기라고 야단인가? 어째서 사랑과 폭력, 섹스와 강간을 구분하지 않나? 제우스가 백조로 변신해 레다를 강간하는 테마를 그린 사이 톰블리의 <레다와 백조>는 2017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5300만 달러에 팔렸다. 책은 남성중심사회가 극찬하는 ‘미적 성취’가 약자에게는 지독한 공포나 야만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명백히 한다. 성별 고정관념을 강화, 재생산하는 가부장제의 주구로서 예술가를 향한 비판도 신랄하다. “정의롭지 못하고 불평등한 사회에 대해 날카로운 시선을 던지는 작가라도 세상의 절반인 여성들이 처한 현실에는 둔감하기 짝이 없다.”

산드로 보티첼리의 ‘프리마베라’(1482경). 패널에 템페라, 203×314㎝, 이탈리아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 신화에 의하면 싫다고 도망가는 클로리스를 제피로스가 겁탈하는데, 제피로스를 받아들이고 나자 클로리스는 우아하게 꽃을 뿌리며 걷는 플로라가 된다. 강간 테마를 그린 그림들은 ‘예술은 예술로 받아들이라’는 말과 함께 계승되었다. 지은이는 이런 폭력적 이야기를 아름다운 작품으로 남겨 비판적으로 보기 힘들게 만든 구조적 문제를 밝힌다.

니키 드 생팔이 총을 쏴 작품을 만드는 모습(1961). 영국 런던 테이트모던 미술관.

책은 천사, 미녀, 마녀, 성모, 어머니, 성판매여성으로서 지겹도록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전형적 여성 이미지를 분석하는 한편, 비전형적 여성 캐릭터와 여성미술가도 조명한다. 남성에게 순종하느니 악마와 살기를 택한 여성 릴리트,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성폭행 당한 상처를 ‘총격 퍼포먼스’로 치유한 니키 드 생팔, 포르노극장 관객들 앞에서 ‘진짜 성기’를 드러낸 발리 엑스포트, 거대한 여성 몸에 낙인 찍은 그림을 선보인 제니 사빌… 이를 통해 책은 여성이 악마도, 구원자도, 피해자만도 아니라고 말한다. 미술과 젠더를 결합한 장르에서 최적의 지식과 글솜씨를 보여주는 에세이스트, 조이한의 이름에 값한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그림 한겨레출판 제공

바바라 크루거의 ‘당신의 몸은 전쟁터다’(1989). 비닐에 사진실크스크린, 284.5×2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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