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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1.15 05:01 수정 : 2019.11.15 20:56

세계체제와 아프리카
이매뉴얼 월러스틴 지음, 성백용 옮김/창비·2만2000원

지난 8월 타계한 이매뉴얼 월러스틴(사진)이 주창한 ‘세계체제론’의 핵심은 자본주의가 다른 역사적 체제와 마찬가지로 생로병사의 운명을 가진 체제라는 주장에 있을 것이다. 500년 역사의 이 체제는 구조적 위기로 인하여 ‘존재의 가을’을 맞고 있으며, 우리는 지금 “자본주의 체제로부터 그 후속 체제 또는 체제들로 가는 특이한 이행 과정에 있다”는 것이다.

지금이 “자본주의의 최종적 승리 국면”이 아니라 “첫번째이자 유일하게 진정한 위기 국면”이라는 근거로 월러스틴은 네 가지 거대한 추세를 제시한다. 세계의 탈농촌화로 인해 저임금 노동자를 쉽게 찾기 어렵게 된 점, 임계점에 다다른 기후 변화를 포함한 생태학적 위기, 세계적 민주화로 인해 사회임금에 대한 지출이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높아졌고, 재정위기에 시달리는 국가가 조정 메커니즘으로서 기능을 상실해 가고 있다는 점이다.

“현존 자본주의 세계체제는 자체의 ‘성공들’로 다져진 모순들의 결과로 얼마 전부터 흔들리고 있다. 진짜 문제는 다음에 오는 체제는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아프리카와 세계체제, 1985)

월러스틴이 1980년대부터 30여년 동안에 걸쳐 아프리카에 대해 쓴 글을 모은 <세계체제와 아프리카>는 바로 이런 ‘이행기적 관점’에서 ‘세계체제의 주변부’ 아프리카를 바라본다. 월러스틴은 “아프리카가 현 체제를 지탱하는 데 아주 큰 구실을 해온 계몽사상의 ‘보편주의’ 이데올로기에 지적으로 덜 예속되어 있다”는 점에서 아프리카에 기대를 건다. 그러나 냉철한 현실주의자인 그는 낙관론을 펴지 않는다.

“나는 아프리카가 노력하면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고 말할 생각이 없다. 아프리카는 그리고 우리 모두는, 이 이행으로부터 더 나은 어떤 체제가 등장할 가능성을 기껏해야 50 대 50 정도로 갖고 있다. 역사가 반드시 우리 편에 있는 것이 아니며, 만일 우리가 그렇다고 생각하면 그러한 믿음이 우리를 거슬러서 작동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이 과정의 지극히 중요하고 필수불가결한 일부다. (…) 우리가 집단적 노력을 조직할 때, 그 중심에는 길은 험하고 결과는 불확실하나 그 투쟁은 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바로 그러한 깨달음이 있어야만 한다.(아프리카에 어떤 희망? 세계에 어떤 희망?, 1995)

바로 그러한 깨달음으로부터 어떤 행동을 시작한다면, “안으로가 아니라 밖으로 향하는 지역적 연대를 조직하고 그것들에 활력을 불어넣어야 한다. 특히 실제로는 다른 어떤 집단을 희생하여 우리 집단을 보호하는 것이 자멸적인 것임을 또렷이 인식해야 한다. (…) 공은 바로 아프리카 구장에 있다.”(아프리카에 어떤 희망? 세계에 어떤 희망?, 1995)

마지막 문장은 이렇게 바꿔도 좋을 것 같다. ‘공은 바로 우리 동네 구장에 있다.’ 신좌파의 대표적 사상가로서 후학들에게 인식의 지평을 넓혀준 대가답게, 그의 글에는 세월의 풍파를 견디는 뚝심이 오롯하다.

이재성 기자, 사진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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