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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1.15 05:59 수정 : 2019.11.15 20:52

도서관 지식문화사-세상 모든 지식의 자리, 6000년의 시간을 걷다
윤희윤 지음/동아시아·2만5000원

기원전 4000년께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인류 최초의 문자가 등장했다. 역사 시대를 맞은 인류의 지식정보는 비약적으로 풍성해지기 시작했고 세대를 넘어 전수됐다. 최초의 기록은 동굴 벽과 암석에 새겨졌다. 이후 수천 년 동안 점토판, 파피루스, 양피지, 죽간, 종이에 이어 오늘날 디지털 매체에 이르기까지 기록 수단도 비약적으로 발전해왔다. 축적된 정보의 보존은 공동체의 핵심 과제였다.

기원전 7세기 신아시리아 제국의 수도 니네베(현재 이라크 북부)에 세워졌던 아슈르바니팔 왕립도서관 복원도. 동아시아 제공

대학 시절부터 40년간 ‘도서관’을 천착해온 문헌정보학자 윤희윤 교수의 <도서관 지식문화사>는 “지식의 성전이자 지혜의 산실”인 도서관의 탄생과 시대적 변천, 그 의미와 미래를 톺아본 책이다. 고대부터 중세, 근대, 현대(1~4장)에 이르기까지 도서관을 둘러싼 역사를 개괄한 전반부가 씨줄이라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에토스·파토스·로고스 개념을 빌어 도서관의 가치와 오늘날 정체성 위기를 짚고(5장), 공동체 안에서 끊임없이 기능이 진화하는 역동성에 주목하며(6장), 책과 도서관에 바치는 헌사(7장)로 마무리한 후반부는 날줄에 해당한다. 110장이 넘는 컬러 사진과 도판을 곁들여, 동서고금 도서관 순례 여정의 즐거움을 보탠다.

고대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내부 복원도. 동아시아 제공

전반부는 인류 지성사의 ‘메타 버전’이라 할 만하다. 인류 역사상 최초로 ‘도서관’이란 명칭이 붙은 건축물은 기원전 3세기 고대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었다. 프톨레마이오스 1세가 스승 아리스토텔레스의 권고로 세운 무세이온 아카데미(왕립학사원)의 부속 기관이었다. 역사·법률·수학·과학·문학 등 방대한 주제를 아우른 파피루스 두루마리가 40만~70만장, 오늘날 단행본(300쪽 기준)으로 약 13만권에 이르는 지식의 보고였다. 클레오파트라-카이사르-안토니우스-옥타비아누스 등 당대 영웅들의 사랑과 권력투쟁을 거쳐 이슬람제국의 침공으로 완전히 소실되기까지 900년 역사는 안타깝고도 흥미진진하다.

한반도에선 645년 고구려 보장왕 때 당나라 군대가 침공해 장문고를 불태웠다는 기록이 전해온다. 우리 역사에 기록된 최초의 왕실도서관이다. 1488년 완공돼 팔만대장경을 보존한 해인사 장경판전은 중세 유럽의 대수도원과 대모스크 부속 도서관에 뒤지지 않는 사찰 도서관이자 보존서고로, 과학적 설계와 원형 보존에서 독보적인 가치를 인정받는다.

스페인 마드리드 인근의 엘 에스코리알 수도원 부속 도서관의 내부. 동아시아 제공

16세기 오스만 제국의 술탄 술레이만 1세 시절에 세워진 술레이마니예 모스크. 동아시아 제공

중세에는 유럽의 수도원과 아랍의 모스크 등 종교시설의 부속 도서관이 ‘지혜의 집’ 구실을 톡톡히 도맡았다. 유럽 각지의 아름다운 수도원 도서관들과 이슬람 세계의 화려하고 웅장한 모스크 도서관들은 고대 왕실(또는 신전) 도서관과 근대 도서관을 잇는 가교이자 근대 대학의 원형이 됐다. 이슬람제국의 우마이야 왕조가 10세기 스페인에 세운 코르도바 모스크 부설 대도서관의 장서는 40만권이 넘었는데, 이는 당시 프랑스 모든 도서관의 장서보다 많은 양이었다고 한다. 이때만 해도 대다수 책은 필사본으로 생산·유통된 고가의 귀중품이었다. 책을 서장과 열람대에 쇠사슬로 고정해 분실을 방지한 ‘체인 도서관’이 대세였다.

중세 유럽 수도원 부속시설인 스크립토리움에서 필경사가 책을 필사하는 모습. 동아시아 제공

영국 최남단의 윔번 뮌스터에 있는 체인 도서관의 책꽂이. 동아시아 제공

소수 귀족과 식자층의 전유물이었던 도서관은 근대 들어 인쇄술의 발명으로 혁명적 변화를 맞았다. 새기거나(각사) 베껴 쓰는(필사) 위 시대가 저물고, 도서의 대량보급 시대가 열렸다. 개인 도서관이 출현한 데 이어, 회원제 도서관, 대출 도서관 같은 개방형 공공 도서관의 확산과 지식 정보의 대중화는 독점적 지배구조에 균열을 내며 도시의 발달과 언어 표준화, 민족주의를 자극했다. “인쇄술은 중세의 가을이 근대의 봄으로 전환하는 결정적 동인”이었다.

1850년 영국에선 최초의 공공도서관법이 제정돼, 지식정보의 민주화 시대를 열었다. “부자로 죽는 것은 수치”라고 믿었던 미국의 부호 카네기가 설립한 카네기 재단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까지 북미,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등 세계 전역에 2509곳의 도서관 건립비를 지원했다.

미국 시애틀 중앙도서관. ‘만인을 위한 도서관’을 표방하며 2004년 신축 개관했다. 동아시아 제공

오늘날 도서관은 단지 장서의 보관과 방문객의 독서 공간을 넘어, 북카페, 복합문화공간, 융합형 지식발전소, 지역사회 큐레이터, 지능형 통합검색센터 등 다양한 양식으로 변모하고 있다. “고대 신전 도서관이 신에 이르기 위한 지식의 통로였다면, 현대 공공도서관은 문화도시의 랜드마크이자 문명사회의 트레이드 마크”다. 현재 모든 공공도서관은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교차점 위에 있다. 지은이는 이 둘이 “이분법적으로 대립하는 게 아니라 공존하며 조화를 이루는 화이부동의 혜안”을 강조한다.

지은이는 “공공도서관은 지식과 정보, 학습과 문화, 장소와 공간, 참여와 소통이 공존하는 사회적 시스템이자 민주주의의 광장”이라고 말한다. 한국의 공공도서관도 “책(지식정보)을 기반으로 다양한 기능의 상호작용을 촉진함으로써 사회적 장소와 시민의 대학으로 외연을 확장해야 한다”고 주문하는 이유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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