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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1.22 05:59 수정 : 2019.11.22 10:06

퀴어는 당신 옆에서 일하고 있다
희정 지음/오월의봄·1만4000원

규원은 직장에서 “남자친구 있어요?”란 질문을 받으면 “전 지금 별로 생각이 없어요”라고 말을 돌린다.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대답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나름의 생존법이다. 그는 하나 이상의 젠더에게 성적으로 끌림을 경험하는 바이섹슈얼이다.

강표는 커플반지를 사서 혼자 낀다. 나머지 하나는 가상의 여자친구를 위한 몫이다. 그의 연애에 관심이 많고 그의 일상을 공유하고 싶어하는 회사 동료들을 위해 가짜 반지, 가짜 커플 사진, 가짜 연애 이야기를 만든다. 그는 커밍아웃하지 않은 게이다.

이들은 존재하기 위해 자신의 존재를 가리는 법을 먼저 터득했다. “애인 있나요?”란 질문은 지정성별(출생시 기록된 성별)과 성적지향이 같고, 이성애자이며, 소위 ‘정상가족’ 지향 사회의 구성원이 될 자격을 검증하는 일종의 통과의례다. 성원이 되기 위해선 이를테면 가상의 남자친구가 나온 군부대 명까지 정해놓는 철저한 준비성도 필요하다.

각본의 치밀함과 섬세함은 성소수자의 생존과 직결된다. 이를 던져버리는 순간 정규직을 포기한 채 단기 일자리를 전전하며 구직이 일상인 삶을 이어가야 한다. “일터는 무성의 공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성별이분법이 엄격하고, 지정성별에 따른 성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직장문화를 견딜 수 없어 퇴사를 선택하기도 한다. 채연(에이섹슈얼: 무성애자)은 “나는 계속 이렇게 적은 돈을 받으며 일할 거고, 노후를 생각하면 미쳐버릴 것 같으니까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동시에 각본의 존재는 삶을 버겁게 만든다. 양돌(게이)은 대화할 때 자신의 상황을 이성애자의 시선으로 재현해서 이야기한다. 말하기 전에 머리를 계속 굴리고, 혹시 잘못 이야기하지 않을까 고심한다. 감정노동이 두 배가 된다. 아무리 훌륭한 연기를 하더라도 폭로될 것이 있다는 위축감이 늘 발목을 잡는다. 소유(게이)는 “그거”가 되지 않기 위해 일에 더 매진한다. “나중에 정체가 밝혀졌을 때 ‘쟤가 그거라서…’라는 생각은 무의식적으로라도 눈곱만큼도 안 들게 하고 싶”기 때문이다.

책은 우리 곁에 있는 성소수자 청년 노동자의 이야기를 추적해 △모욕 면접 △꾸밈노동 △블라인드 면접 △유리천장 △‘어린 여자’ 정체성 △정규직 △공정 △엔(N)포세대란 8가지 키워드로 풀어냈다. ‘다름’을 ‘존재하지 않음’으로 상정하는 사회에서 “스스로를 인정하고 인정받고자 하는 그 욕구 때문에 드러냄과 숨김 사이에서 줄타기 중”인 성소수자의 삶을 그들의 언어로 포착한다.

지난 19일 이들의 삶은 “동성혼 문제에 대해 사회적 합의를 이루지 않은 것이 엄연한 현실”이라는 발언 앞에서 한 번 더 지워졌다. 저자는 말한다. “경계에 선 이들의 경험과 목소리에 응답한다는 건 지금까지 세상이 작동해 온 방식에 의문을 갖는 일”이자 “다른 삶을 꿈꾸는 일”이라고. 그러므로 “퀴어는 일터에 있어야” 하고, 이들의 ‘드러냄’에 응답해야 한다고 말이다.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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