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1.22 05:59
수정 : 2019.11.22 20:11
[책&생각] 책이 내게로 왔다
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
엄기호 지음/나무연필(2018)
사실 엄기호라는 필자를 두고 ‘고통’에 대한 책을 준비하겠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는 조금 의아해했다. 출판 시장은 점점 더 가벼워지는데 너무 무거운 화두가 아니냐, 좀 더 대중성 있는 문제를 다루면 어떻겠느냐는 거였다. 이 책은 그래서 더더욱 오기를 동력 삼아 밀어붙였다. 물론 마음 졸이기도 했지만 말이다.
<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는 고통에 대한 이야기가 세상에 불거져 나오는데 그것을 어떻게 다뤄낼지에 대해 한걸음 더 나아간 필자의 사유를 펼쳐봐달라고 했던 책이다. 처음에 고통의 당사자들을 만나면서 필자가 계속해서 듣게 된다는 말은 두 가지였다. “이 고통이 끝이 날까요?” 그리고 또 하나. “당신은 내 고통을 몰라요.” 이는 고통이 가진 특성에서 비롯된 말이기도 하다. 끝난 것 같지만 또다시 되풀이되곤 하는 것, 그러면서 결국 타인에게 이해받지 못한 채 고립된다고 느끼는 것. 대체 이 괴물을 어떻게 돌파해야 하는 걸까.
우리가 돌파해야 할 괴물은 하나 더 있었다. 그것은 고통을 통해 어떤 깨달음을 얻게 된다는 통념이다. 얕은 고통의 경우 그럴 수 있을지 모르지만, 대개의 고통은 반복된다. 끝나지 않고, 타인에게 이해받기도 어렵다. 철저한 외로움의 시간이다. 극심한 고통을 겪어본 이들은 알 것이다. 다시금 고통이 밀어닥치면, 마치 음악에서 ‘처음부터 다시’를 말하는 ‘다카포’ 기호를 만난 듯 간신히 쌓아올린 찰나의 깨달음이 산산이 부서지고 고통의 세계로 되돌아간다는 것을. 그 무한 반복의 세계를 뚫고 나올 길을 찾기가 정말 어렵다는 것을.
켜켜이 쌓인 지층들을 한 겹 한 겹 들여다보듯 고통의 당사자들 이야기를 하나씩 써내려가면서, 필자가 도달한 지점은 고통의 ‘곁’이었다. 더 나아가야 할 지점은 이곳이 아닐까 싶었다. 고통의 당사자로서의 목소리가 아닌, 고통에 대한 2인칭의 시점을 밀어붙여보는 것, 그것이 고통의 지형도를 그려내는 데 더 필요한 작업이 아닐까 싶었다. 고통에 탈출구가 있다면, 그것이 아닐까 싶었다. 고통의 서사 속에 ‘곁’이 개입되는 순간, 그 서사는 고통받는 당사자만의 것이 아닌 게 된다. 아무런 의미 없는 고통에서 스스로가 조금 발을 빼고 새로운 이야기가 피어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모든 이야기를 과연 들리게 할 수 있을까. 고통의 당사자라면 “당신은 내 고통을 몰라요” 소리를 입에 달고 살지도 모를 텐데, 그 사람에게도 곁의 자리를 둘러보게 할 수 있을까.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감히 밖으로 발설하진 않았지만, 필자는 자신이 무모한 시도를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한 적이 있을 것이다. 사실 나는 그랬다. 그래서였겠지만, 오히려 책을 펴내고서 홀가분했다. 무모할지라도 할 수 있는 한 끝까지 직면하면서 밀어붙였기에.
이 책을 내고서는 유독 책에 대한 ‘독후감’보다 자기 경험을 들여다본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된다. 그중 필자가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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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윤희 나무연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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었던 한 여성의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싶다. 그녀는 수년간 알 수 없는 병 때문에 극심한 고통을 겪었다. 마치 쌀 한 가마니를 어깨에 짊어지고 사는 듯했단다. 그 고통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서, 몸을 일으켜 화장실에도 가기 힘든 삶. 책을 읽고서 이 여성은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던 자신을 지극정성으로 돌보던 남편을 바라보게 되었단다. 책을 만든 사람으로서, 그럼 된 것 같다. 그렇게 곁을 바라보는 데 보탬이 되었다면 된 것이다.
임윤희/나무연필 대표
※ 우리 사회와 출판계가 주목한 책을 펴낸 편집자들이 직접 들려주는 책에 얽힌 이야기를 4주마다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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