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1.22 05:59
수정 : 2019.11.22 14:58
굿바이, 편집장
고경태 지음/한겨레출판·2만원
1999년 <한겨레21> 편집자로 일하면서 김규항, 김어준의 ‘쾌도난담’을 기획, 진행했다. 종이매체에선 처음으로 농담과 잡담처럼 시사 현안에 대해 풀어놓은 이 코너는 ‘저급하다’ ‘상스럽다’는 비난과 동시에 열혈 마니아 팬들을 양산했다. 2000년 <한겨레21> 기자로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을 특종 보도했을 때는 고엽제후유의증전우회원 2000여명이 회사 앞에 몰려왔고, 이 중 일부가 신문사에 난입해 7천만원 상당의 피해를 남겼다. 2007년 <한겨레>에서 ‘잘 놀고 잘 먹고 잘 마시자’를 모토로 생활문화섹션 이에스시(esc)를 선보였을 땐 ‘이게 한겨레 가치에 부합하는가’라는 내부의 공격에 시달렸다. 2012년 스토리텔링 중심의 토요판을 만들면서는 ‘이건 신문이 아니다’라는 내부의 거센 반발에 멘탈이 너덜너덜해졌지만, 결국 업계에서 ‘고유의 디엔에이(DNA)를 창조했다’는 상찬을 받으며 다른 신문들도 줄줄이 토요판 대열에 합류하게 만들었다.
<한겨레21>과 <한겨레>에서 일한 30년 중 10년 이상을 편집장으로 보낸 고경태가 종이매체에서 처음 도전하고 주도했던 ‘혁신’의 과정을 <굿바이, 편집장>에서 풀어놓았다. 업계에선 ‘최고의 카피라이터’ ‘천재적인 기획자’라고 불렸던 그였지만 도전은 매번 거센 우려와 비난의 가시밭길이었다. 신문 1면을 돌고래 ‘제돌이’의 사연에 할애했을 때나, 신문과 논조가 맞지 않는 보수 전문가를 필자로 섭외했을 때나, 1면을 털어 만화를 실으려 했을 때나 그 어느 시도 하나 쉽게 통과된 적이 없다. ‘아집’이라는 비난까지 받아야 했다. 거센 풍랑에도 방향키를 놓지 않았던 건, ‘재밌게! 멋지게! 독하게!’라는 편집장으로서의 철학 때문이었다. ‘멋대로 독하게 하면서도 독선으로 비치지 않고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편집장’이라는 그의 목표는, 가끔은 망하기도 했다고 고백하지만, 대부분 성공했다.
과연 그 영감과 기획의 원천은 무엇일까? 그 비결은 의외로 단순하다. ‘눈에 띄는 혹은 떠오르는 사람(필자, 취재원)이 있으면 연락한다, 찾아간다, 만나 줄 때까지 계속 집 앞에서 기다린다, 끈질기게 설득한다’는 거다. 그야말로 발로 뛰는 성실함이다. ‘성실함이란 만물의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성실하지 않으면 어떤 것도 존재하지 못한다’는 <중용>의 구절을 온몸으로 실천한다. 그래서 북한 축구대표팀 정대세 선수, 구자범 지휘자, 노환규 대한의사협회 회장을 필자로 등판시킬 수 있었다. 칼럼니스트로만 글을 쓰던 김두식 경북대 교수에게 인터뷰어를 맡겨 나온 ‘김두식의 고백’은 기존 인터뷰의 수준을 월등히 뛰어넘는 솔직한 내용으로 화제가 됐다. 심지어 대한민국 최초로 현직 판사에게 일간지 소설 연재를 맡겨 나온 ‘미스 함무라비’는 드라마로 제작되기도 했다. 물론 마감시한을 지키지 않거나 툭하면 때려치우겠다고 협박하는 필자들을 어르고 달래는 것 또한 그의 주요한 업무였다. “집을 하나 지으면 10년은 폭삭 늙는다”는 건축주들의 말처럼, 그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할 때마다 ‘다시는 하지 말아야겠다’고 이를 갈았지만, 멈춘 적이 없다. 왜? 무언가 배우고 성장했기 때문이다. 그 성장감의 희열이 그를 멈추지 못하게 했다. 그래서 그가 가장 사랑하는 접속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다. 그런 그는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블록체인 미디어 <코인데스크코리아>를 발행하는 22세기미디어 대표로 일하고 있다. 어느 날 신기술에 ‘훅’ 꽂혀서 뛰어들었고, 역시나 ‘한겨레가 왜 이상한 투기 매체를 앞장서서 만드느냐’는 비판에 시달리며 악몽을 꾸는 중이다.
편집자들이라면 이 책에서 기획과 영감의 원천을 배울 것이고, 언론사 지망생이라면 전쟁터 같은 언론사 내부를 체험할 것이며, 종이매체의 미래를 불안해하는 사람이라면 콘텐츠의 진화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을 것이다. 책에 포함된 이충걸 전 편집장, 김도훈 <허프포스트코리아> 편집장 등을 만나 나눈 인터뷰는, ‘편집장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더 생생히 보여주는 덤이다.
김아리 자유기고가
ari9303@naver.com광고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