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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1.22 06:01 수정 : 2019.11.22 10:04

늦저녁의 버스킹
김종해 지음/문학세계사·1만2000원

<늦저녁의 버스킹>은 1963년에 등단해 햇수로 57년째 활동하는 김종해(사진) 시인의 열두 번째 시집이다. 웬만한 독자의 일생보다 더 긴 세월 동안 시를 써 온 노시인의 경륜과 지혜가 시집 곳곳에서 반짝인다.

“나뭇잎 떨어지는 저녁이 와서/ 내 몸속에 악기가 있음을 비로소 깨닫는다/ 그간 소리내지 않았던 몇 개의 악기/ 현악기의 줄을 고르는 동안/ 길은 더 저물고 등불은 깊어진다”

이렇게 시작하는 표제시 ‘늦저녁의 버스킹’은 이즈음에 읽기에 맞춤하다. 삶에서도 자연의 계절에서도 그리고 하루의 무렵에서도 느지막한 시간대. 시인은 자신의 몸속에 악기가 있음을 새삼 깨닫고 버스킹을 준비한다. 통상 버스킹이란 무명 또는 신인 가수가 거리에서 불특정 대중을 상대로 자신의 노래를 선보이는 행위를 일컫는다. 그런데 노시인은 버스킹의 취지를 조금 달리 해석한다. 지난 삶의 결산이요 자기표현으로서 버스킹이다. “어둠 속의 비애” “아픔과 절망의 한 시절”이 불려 나오는가 하면, “사랑과 안식과 희망의 한때” “나그네의 한철 시름”도 노래에 얹힌다. 어둠이 짙어지면서 노시인의 버스킹도 마무리를 향해 간다.

“저녁이 와서 길은 빨리 저물어 가는데/ 그동안 이생에서 뛰놀았던 생의 환희/ 내 마음속에 내린 낙엽 한 장도/ 오늘밤 악기 위에 얹어서 노래하리라”

지난 삶을 돌이켜보고 더 늦기 전에 나름대로 정리하고자 하는 모습은 표제작뿐만이 아니라 시집 속 여러 작품에서 만날 수 있다. “걷는 길 어디에서나 허방이 따라오고/ 사는 곳 어디에서나 참회가 필요했다”(‘길을 걷다’)고 시인은 자책하지만, 그러면서도 수고하고 애쓴 자신을 격려하고 다독이기를 잊지 않는다.

“내가 내 이름을 불러볼 때가 있다/ 하루의 시간을 끝낸 자에게/ 등 두드리며 나직이 불러주던 이름/ 거울 앞에 서 있는/ 주름진 늙은이의 얼굴을 보며/ 나는 나직이 내 이름을 호명한다/ (…) / 그대를 사랑했노라 나직이 말한다”(‘거울 앞에서’ 부분)

사랑과 만족은 다른 법인지, 19일 만난 시인은 “지난 삶을 돌이켜볼 때 만족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더 많은 시간이 주어진다면 더 살아 있는, 건강한 시를 쓰고 싶다”고 덧붙였다. 아침마다 운동 시설에 가서 몸을 단련하고, 신문과 잡지에서 좋은 시를 만나면 가위로 오려 따로 보관해 두고 공부하는 것은 여전히 더 좋은 시를 쓰고 싶다는 싱싱한 욕망 때문일 것이다. “좀 더 사람의 몸에 가닿는 고통과 환희의 시를 쓰고 싶다”(‘시인의 말’)는 노시인의 바람이 청청하다.

글·사진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김종해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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