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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1.29 05:01 수정 : 2019.11.29 20:14

기존의 왕자-공주 도식을 깨는 ‘현대판 동화’
‘만화계 아카데미상’ 2관왕 빛나는 그래픽노블

왕자와 드레스메이커
젠 왕 지음, 김지은 옮김/비룡소·1만6000원

마거릿 킹은 18세기 아일랜드 귀족 집안의 딸로 태어났다. 그는 의학을 공부하고 싶었다. 하지만 남자가 할 수 있는 일과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의 구분이 엄격했던 보수적 분위기가 그를 옥죄었다. 그러나 킹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남자 옷을 입고 대학에 들어갔고 훗날 어린이에 대한 가정 의학 책까지 써낸다.

남자의 옷이라 생각되는 옷을 여자가 입는 것 또는 여자의 옷을 남자가 입는 것을 크로스드레싱(cross-dressing)이라 한다. 크로스드레싱은 킹의 사례처럼 사회의 속박을 깨뜨리는 통쾌한 전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왕자와 드레스메이커>는 이런 크로스드레싱을 소재로 풀어낸 ‘현대판 동화’이다.

벨기에 왕자 세바스찬에게는 남들에게 말 못할 비밀이 있다. 바로 여성의 드레스를 입을 때 강렬한 행복을 느낀다는 점이다. 하지만 아버지를 포함해 대대로 장군 출신임을 명예로 삼는 국왕 가문의 왕세자인 그에게 이 사실이 밝혀지는 것은 너무도 두려운 일이다. 어느날 세바스찬은 자신의 비밀을 공유할 만한 사람을 발견한다. 귀족 집안의 딸들이 모인 자리에서 도발적인 드레스를 입은 한 여성에 세바스찬의 눈이 꽂힌 것이다. 그러나 세바스찬을 매혹한 것은 귀족 여성이 아니라 그 드레스를 만든 평민 신분의 말단 재봉사 프랜시스였다.

비룡소 제공

300년 전 킹이 주위를 속이면서까지 대학 공부를 할 수 있었던 데에는 가정교사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의 역할이 컸다. 시대를 앞선 여권신장론자였던 그의 가르침은 킹을 일깨웠다. 울스턴크래프트의 딸이 훗날 <프랑켄슈타인>이라는 걸작을 쓴 소설가 메리 셸리다. 세바스찬도 프랜시스를 만나 비로소 자신의 은밀한 욕망을 세상 밖으로 꺼내놓는 용기를 낸다. 그는 ‘레이디 크리스탈리아’가 되어 대범하게 사교계에 진출한다.

비룡소 제공

<왕자와 드레스메이커>는 여러 면에서 기존 동화의 문법을 깬다. 우선 진취적인 왕자와 현명한 공주라는 도식이다. 이 그래픽 노블에서 세바스찬과 프랜시스는 이렇게 구분되지 않는다. 둘은 각자의 욕망을 위해 서로 손을 잡는 친구로 나온다. 이야기의 갈등은 시샘하는 다른 귀족이나 고약한 마녀 등으로 인해 극으로 치닫지 않는다. 가장 큰 갈등은 물론 신분을 감춘 채 살아가는 세바스찬 안에 잠재돼 있지만, 세바스찬의 ‘그림자 재봉사’로서 자신의 실력을 떳떳하게 드러낼 수 없는 프랜시스와 진실을 숨기려는 세바스찬 간의 갈등이 중요하게 부각되는 점은 이 책이 현대판 동화로 불릴 만한 이유다.

물론, ‘동화적’인 결말이 다소 아쉬울 수 있지만 어떠랴, 그것이 동화의 매력인 것을. 2019년 만화계의 아카데미상이라고 불리는 ‘아이스너 상’ 2관왕의 영광을 차지했다. 3살 이상.

권오성 기자 sage5t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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