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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2.06 05:59 수정 : 2019.12.06 15:29

백민석 음악소설집 ‘버스킹!’ 출간
록밴드 음악 소재 삼은 소설 16편과
음반소개 에세이, 버스킹 사진 곁들여

종말과 파괴 이미지 주를 이룬 가운데
트리뷰트 밴드 만든 이들 이야기도
뮤지션과 버스커들에게 바치는 헌정

버스킹!
백민석 지음/창비·1만5000원

백민석의 소설 <버스킹!>은 크게 세 요소로 이루어졌다. 커브드 에어에서부터 이츠 어 뷰티풀 데이까지 주로 록 밴드 뮤지션들의 음악을 소재로 끌어들인 짧은 소설 16편, 그 소설에 언급된 뮤지션의 음반을 소개하는 에세이, 작가 자신이 찍은 버스킹 사진들이 그 셋이다. 말하자면 음악 소설집이라고도 할 수 있을 텐데, 소설 속에서 음악이 맡는 역할은 작품에 따라 편차가 있다. 작품의 분위기와 어울려서 배경음악처럼 깔리는 음악이 있는가 하면, 그 뮤지션과 그 음악이 소설 주인공들의 삶을 규정하다시피 한 경우도 있다. 소설 한 편당 버스킹 사진 하나씩이 붙어 있는데, 그 사진들은 소설이나 해당 소설에서 언급된 뮤지션과 직접 관련은 없다.

소설 열여섯 편은 소재와 주제가 천차만별이어서 독자를 이 공간 저 상황으로 널뛰기 하게 만드는데, 그래도 지배적인 정조가 있다면 어떤 종말의 분위기라 할 수 있겠다. 첫 작품과 마지막 작품에서 인용한 이런 대목들이 대표적이다.

“이젠 거실이 무너진다. 거친 바람이 거실과 작은방 사이의 벽을 잡아 뜯고, 내 머리카락을 뒤집고, 모래와 벽돌 조각들은 얼굴을 할퀸다.”(‘영감의 사막에서 음악이 들려온다’)

“심은 다시 숨을 돌렸다. 원래 종말 문학에 대해 시험을 볼 생각이었지만, 종말은 이제 공개적으로 다루기엔 지나치게 피부에 와 닿는 것이 되었다.”(‘마지막 수업’)

소설가 백민석이 록 뮤지션들의 음반을 소재로 삼은 짧은 소설 열여섯 편을 모은 소설집 <버스킹!>을 내놓았다. 책 속에는 작가가 직접 찍은 버스킹 장면 사진들도 들어 있다. 사진은 2014년 3월 이탈리아 여행 중에 찍은 사진으로 록 밴드 신 리지 편에 실렸다. 사진 백민석

이 작품들 말고도 ‘도망쳐라, 사랑이 쫓아온다’에서는 사랑의 악다구니가 좀비처럼 사람들을 쫓아오는 세계가 그려지고, ‘물곰 가족’에서는 벌레로 변한 아내와 물곰으로 변한 남편 그리고 채소로 변한 딸들이 등장하며, ‘버서커스 버스킹’에서는 동성애자들의 파티를 급습하는 대 테러 부대 군인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런 분위기가 이 책에 소개된 뮤지션들의 음악 세계와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을, 스래시 메탈 밴드 슬레이어의 음반에 관한 에세이가 알려준다.

“슬레이어의 사운드에는 말랑말랑함이나 유연함, 상업적인 타협, 위트와 유머 같은 요소들이 완전히 배제되어 있다. 오로지 금속성의 육중함, 고속의 스피디한 연주, 난폭하게 날뛰는 에너지, 공격적이고 파괴적인 리듬, 쇳소리 나는 보컬로만 사운드를 채웠는데…”

슬레이어의 1986년 음반 <레인 인 블러드>에 관한 설명을 읽자면 어쩐지 백민석의 초기 소설 <16믿거나말거나박물지>의 세계가 떠오른다. 특히 “난폭하게 날뛰는 에너지, 공격적이고 파괴적인 리듬”이라는 대목은 초기 백민석 소설의 한 기원을 짐작하게 한다.

반드시 건물이 무너지고 폭력이 지배하는 세상이 아니더라도, 멀쩡해 보이는 현실이 사실은 종말에 못지 않게 극단적이고 절망적이라는 인식도 책에서는 만날 수 있다. 취업 준비생을 주인공 삼은 소설 ‘악마를 향해 소리 질러라’에서 주인공은 어렵사리 어느 부잣집 저택의 정원사로 취직한다. 헤비메탈 밴드 머틀리 크루의 음반 <샤우트 앳 더 데블>을 등장시킨 이 소설에서 세계는 적자생존과 승자독식의 냉혹한 법칙이 지배하는, 삶이 곧 전쟁인 곳이다.

“삶은 사상자가 속출하는 전장이 됐다. 총성과 비명이 들리지 않는 침묵의 전장. (…) 우리는 이번 전쟁에 참전한 줄도 모르고 참전해, 맞은 줄도 모르고 자본의 흉탄에 맞아 다치거나 죽었다. 베란다에서 뛰어내리면서도 그게 자본이 사지로 떠민 결과인 줄도 모르고 뛰어내렸다.”

백민석 소설집 <버스킹!> 중 야나체크 콰르텟 편에 실린 사진. 2016년 7월에 찍은 사진이다. 사진 백민석

와스프의 <라이브…인 더 로>를 소재로 삼은 ‘난 의사가 필요 없어’에는 소설가와 그가 만든 등장인물들이 나온다. 신부가 집전하는 모임에 대학생과 기술자, 청년 백수, 소설가 등이 참여해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소설이 진행되면서 감추어졌던 사실이 드러난다. 거기 모인 인물들은 소설가가 알지 못할 죄의식에 시달릴 때마다 하나씩 지어내서 자기 대신 잘못이나 죄를 짓고 그에 따른 벌을 받게 만든 이들이라는 것.

“여러분은 제 머릿속에서 영원히 울려 퍼지는 지옥의 메아리예요. 악몽이자 죄의식이고, 제 영혼에 드리워진 떨쳐낼 수 없는 어두운 그림자들이지요. 제 안의 어두운 타자들이세요. 백인 앵글로·색슨 신교도, 그러니까 와스프의 등 뒤로 길게 드리워진 살해당한 흑인들의 그림자이지요.”

소설가의 이 말을 굳이 이 작품에만 국한시켜 이해할 일은 아니겠다. 이 책 <버스킹!> 전체, 아니 모든 소설가들의 창작의 비밀에 관한 힌트로 이 말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백민석 소설가.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아프로디테의 못생긴 아이들’은 아프로디테스 차일드와 그들의 음반 <666>을 소재로 삼은 작품이다. 이 소설에서 그리스 록 밴드 아프로디테스 차일드를 흠모해서 친구들과 트리뷰트 밴드를 결성했던 ‘반젤리스’는 오랜 시간이 흐른 뒤 회한에 차서 자신들의 음악적 한계를 인정한다. “데미스는 지저분하게 갈라지는 목소리로 악을 썼고, 실버는 외우는 코드가 네개밖에 없어서 기타의 지판을 더듬느라 늘 박자를 놓쳤다. 루커스는 강약 조절을 못해 리듬을 망쳤고… 반젤리스는 음치였다.”

소설에서 반젤리스의 본명은 ‘백민석’으로 나오는데, 그렇다는 것은 트리뷰트 밴드 결성으로 표출된 반젤리스와 친구들의 음악적 순정에 작가 백민석 자신의 경험과 정서가 녹아 들어 있다는 뜻이기도 하겠다. “집에 있을 때나 외출했을 때나 늘 음악을 들었고 십대 시절부터 좋아하는 밴드의 음반들을 사들였다”는 ‘작가의 말’에 반젤리스의 목소리가 겹쳐 들리는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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