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서영인의 책탐책틈
이랑 지음/위즈덤하우스(2019) 예전에 한 출판사의 기획위원으로 일한 적이 있다. 기획이랍시고 새 소설 시리즈의 아이디어를 내놓았는데, 작은 출판사였으므로 자본이 없었고 나는 아이디어에 비해 추진력이 현저히 부족했으므로 기획은 당연히 무산되었다. 느슨한 범위의 테마를 잡고 통상의 단편보다 좀 짧은 단편을 모아 작고 예쁜 책을 만들자는 아이디어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실행도 되기 전에 카피 겸 캠페인도 혼자 생각해 두었다. “일주일에 세 번, 3·3·3” “세 편의 소설, 세 번의 운동, 세 명의 친구” 이런 내용이었는데, 오랜만에 떠올리고 보니 민망하다. 꽤 오래전의 아이디어였고, 이후에 테마소설집이나 짧은 소설이 속속 기획되어 출간되는 것을 보며 역시 시대를 앞서갔다고 자부하기도 하였으나, 사실은 터무니없는 생각이었다. 원고지 60~70매 분량의 단편 하나를 읽는 데 30분쯤 걸리니까 일주일에 세 편이라면 무리한 계획은 아니라 생각했지만, 사실 쉬운 일이 아니다. 30분의 시간을 내지 못할 정도로 바빠서가 아니라 30분의 시간 동안 온전히 소설 한 편에 집중하기가 쉽지 않아서이다. 게다가 세 명의 친구에다 세 번의 운동이라니, 기획한 시리즈의 주 고객층일 젊은 직장인들은 생각만 해도 피로하다고 고개를 가로저을지도 모른다. 이런 이야기라면 일주일에 세 편쯤은 읽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한국인 여자와 일본인 남자와 고양이 한 마리가 함께 산다. 갑자기 긴급 재난 문자를 통해 사람들이 좀비로 변하기 시작했다는 뉴스가 들려온다. 문단속을 하고 남아 있는 식량을 체크하며 남녀는 생존을 걱정한다. 그 와중에 긴급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 자꾸 되묻는 일본인 남자는 귀엽다. 모두가 좀비가 되어 버린 세상에서 굳이 사람으로 남으려 애쓰지 않기로 한 남녀는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다. 고양이에게는 식량과 물, 반쯤 열린 창문을 선택지로 남겨 두었다. 고양이로 남든가, 좀비의 세상으로 나가든가는 고양이의 선택이다.(‘하나, 둘, 셋’) 30분 소설 읽기가 어려운 까닭은 계속 ‘나’로 남아 있기를 고집하기 때문이다. 일상의 ‘나’와 ‘나’의 일들이 너무 집요하게 ‘나’를 차지하고 있어서, 소설의 세계로 진입하기가 어렵다. 정기적으로 소설 읽기는 ‘다른 존재 되어 보기’, ‘다른 존재와 마음 바꾸기’ 연습이기도 하다. 일주일에 세 번쯤 시도해 볼 만한 훈련이다. 굳이 사람으로 남으려 하지 말고, 굳이 ‘나’로 남으려 하지 말고, 좀비나 고양이나 다른 인간이 되어 보기. 짧은 시나리오이기도 했다가, 스탠드업 쇼의 대본이기도 했다가, 짧은 소설이기도 한 <오리 이름 정하기>는 ‘다른 존재 되어 보기’의 좋은 안내서이다. 다른 존재의 힘이 세 번의 운동과 세 명의 친구를 부추겨 줄지도 모른다.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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