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준 지음/동아시아·1만5000원 미국 정치학자 에리카 체노워스는 1900~2006년 사이 전 세계의 대규모 시민저항운동 수백 건을 분석했다. 결과는 흥미로웠다. 폭력 진압에 맞선 비폭력 저항운동의 성공률이 6배나 높았으며, 특히 지속적 참여자가 인구의 3.5%가 넘은 ‘모든’ 저항운동은 성공했다. 3.5%의 법칙이다. 통계물리학자 김범준 교수는 <관계의 과학>에서 이를 물리학의 ‘상전이’에 비유한다. 상전이란 ‘얼음-물-수증기’처럼 특정 환경에서 물질의 거시적인 상태 변화를 말한다. 극미립자부터 광활한 우주까지 물질 세계를 다루는 물리학이 복잡한 인간 관계가 지배하는 ‘세상 물정’과 상관이 있을까? 지은이는 “많은 사람이 서로 연결돼 살아가는 인간사회도 대표적인 복잡계”라며 “사회연결망의 구조, 부의 불평등, 대박 영화의 흥행 패턴과 전염병의 전파 방식의 관계” 같은 질문은 많은 통계물리학자들의 관심 주제라고 말한다. 얼핏 아무 상관이 없어 보이는 현상들의 관계를 분석해 규칙을 발견하고 세상의 연결고리를 읽어내는 ‘관계의 과학’이다. 술에 만취한 사람의 귀가 행보나 꽃가루의 브라운 운동 같은 ‘마구 걷기’에서 위치와 이동 거리의 평균값을 구해보자. 만취자가 애초 위치에서 멀어지는 거리는 √t(시간의 제곱근)에 반비례한다. 1년 동안의 주가지수 변동 폭은 √250으로, 약 15% 안팎이다. 다만, 주가의 변동 방향, 즉 상승인지 하락인지는 예측할 수 없다는 게 함정이다. 배차 간격이 일정한 시내버스의 도착 시간과 혼잡 정도가 왜 들쑥날쑥인지, 적절한 소득세와 기본소득 배당이 불평등을 어떻게 줄이는지도 ‘과학적으로’ 설명한다. 물리학자들은 2016~17년 박근혜 탄핵을 외친 광화문 촛불 집회의 참가자 계산 방법에도 관심이 컸다. 지은이는 “촛불을 들지 않아 사진 분석으로는 그 존재를 알 수 없는 암흑물질과 같은 이들의 존재”에도 주목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게 아니다. “우리 사회의 소수자들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이들의 연약한 목소리를 듣기 위한 우리 모두의 노력”을 말하는 대목에선 차가운 물리학에 따뜻한 체온이 감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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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물리학에 따뜻한 체온을 불어넣다 |
김범준 지음/동아시아·1만5000원 미국 정치학자 에리카 체노워스는 1900~2006년 사이 전 세계의 대규모 시민저항운동 수백 건을 분석했다. 결과는 흥미로웠다. 폭력 진압에 맞선 비폭력 저항운동의 성공률이 6배나 높았으며, 특히 지속적 참여자가 인구의 3.5%가 넘은 ‘모든’ 저항운동은 성공했다. 3.5%의 법칙이다. 통계물리학자 김범준 교수는 <관계의 과학>에서 이를 물리학의 ‘상전이’에 비유한다. 상전이란 ‘얼음-물-수증기’처럼 특정 환경에서 물질의 거시적인 상태 변화를 말한다. 극미립자부터 광활한 우주까지 물질 세계를 다루는 물리학이 복잡한 인간 관계가 지배하는 ‘세상 물정’과 상관이 있을까? 지은이는 “많은 사람이 서로 연결돼 살아가는 인간사회도 대표적인 복잡계”라며 “사회연결망의 구조, 부의 불평등, 대박 영화의 흥행 패턴과 전염병의 전파 방식의 관계” 같은 질문은 많은 통계물리학자들의 관심 주제라고 말한다. 얼핏 아무 상관이 없어 보이는 현상들의 관계를 분석해 규칙을 발견하고 세상의 연결고리를 읽어내는 ‘관계의 과학’이다. 술에 만취한 사람의 귀가 행보나 꽃가루의 브라운 운동 같은 ‘마구 걷기’에서 위치와 이동 거리의 평균값을 구해보자. 만취자가 애초 위치에서 멀어지는 거리는 √t(시간의 제곱근)에 반비례한다. 1년 동안의 주가지수 변동 폭은 √250으로, 약 15% 안팎이다. 다만, 주가의 변동 방향, 즉 상승인지 하락인지는 예측할 수 없다는 게 함정이다. 배차 간격이 일정한 시내버스의 도착 시간과 혼잡 정도가 왜 들쑥날쑥인지, 적절한 소득세와 기본소득 배당이 불평등을 어떻게 줄이는지도 ‘과학적으로’ 설명한다. 물리학자들은 2016~17년 박근혜 탄핵을 외친 광화문 촛불 집회의 참가자 계산 방법에도 관심이 컸다. 지은이는 “촛불을 들지 않아 사진 분석으로는 그 존재를 알 수 없는 암흑물질과 같은 이들의 존재”에도 주목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게 아니다. “우리 사회의 소수자들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이들의 연약한 목소리를 듣기 위한 우리 모두의 노력”을 말하는 대목에선 차가운 물리학에 따뜻한 체온이 감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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