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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20.01.10 06:01 수정 : 2020.01.10 10:35

애트우드 ‘시녀 이야기’ 속편 ‘증언들’
남성지배 체제 길리어드 붕괴 그려
초판 50만부 발행에 부커상 수상

세 여성의 수기와 증언 녹취록 형식
부패와 타락 속 여성들 저항 담아
“독자들 질문에서 속편 영감 얻었다”

증언들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김선형 옮김/황금가지·1만5000원

캐나다 작가 마거릿 애트우드의 소설 <시녀 이야기>(1985)의 결말은 주인공인 ‘시녀’ 오브프레드가 임신한 상태에서 비밀 조직의 도움을 받아 전체주의 국가 길리어드에서 탈출하고자 길을 나서는 장면이다. “이것이 내 끝이 될지 새로운 시작이 될지 나로서는 알 길이 없다.” 이 문장은 그의 앞에 놓인 것이 자유와 해방의 길일 수도 있지만, 반대로 그 탈출극이 그를 파멸로 이끌기 위한 음모일 수도 있다는 두 가지 상반된 가능성을 보여준다. 책을 읽은 독자들이 오브프레드의 운명을 궁금해하며 작가에게 <시녀 이야기>의 뒷이야기를 써 달라고 주문했음에도 애트우드는 삼십년이 넘도록 완강히 침묵을 지켜 왔다.

마거릿 애트우드가 페미니스트 디스토피아 소설 <시녀 이야기>(1985)의 속편으로 34년 만에 발표한 <증언들>이 번역돼 나왔다. 사진은 <시녀 이야기>를 원작으로 만든 드라마 <핸드메이즈 테일>의 한 장면. ⓒShutterstock

2017년 이 작품을 원작으로 삼은 드라마 <핸드메이즈 테일>이 불러일으킨 반향이 작가의 변심을 부추겼을 수도 있다. 드라마의 힘을 업고 <시녀 이야기> 영어판은 누적 부수 1천만부 가까운 판매고를 올렸다. 그런 뜨거운 분위기 속에서 34년 만의 속편으로 지난해 초에 나온 <증언들>은 미국에서만 초판을 50만부 찍고 곧바로 중쇄에 들어갔으며, 애트우드는 이 작품으로 지난해 영국 최고 권위의 부커상을 수상했다.

<시녀 이야기>는 지금의 미국에 해당하는 지역에 길리어드라는 남성 지배 전체주의 체제가 들어선 뒤 사령관의 씨받이 격인 시녀 오브프레드가 겪는 시련과 그로부터의 탈출 노력을 다룬다. 대규모 전쟁과 환경 파괴로 인해 출산율이 급격히 떨어진 상황에서, 출산 경험이 있는 가임기 여성은 길리어드의 지배 세력인 사령관들의 씨받이로 징발된다. 사랑의 표현이어야 할 성행위가 출산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고, 여성들의 인권이 섭리의 이름으로 짓밟히는 끔찍한 체제 묘사는 이 소설을 페미니스트 디스토피아 소설의 대표작 중 하나로 만들었다.

공개 처형을 당하고 장벽에 매달린 이들의 주검 아래로 시녀 복장을 한 두 여성이 지나가고 있다. 그래픽 노블 <시녀 이야기> 중에서. 황금가지 제공

<시녀 이야기> 뒷부분에 부록처럼 붙어 있는 별도의 장 ‘<시녀 이야기>의 역사적 주해’는 2195년의 시점에 한 역사학자가 20세기 후반에 존재했다가 사라진 신정(神政) 국가 길리어드의 실태를 기록한 <시녀 이야기>라는 원고의 발견 경위와 그 의미에 관해 발표하는 형식이다. 길리어드가 한때 존재했다가 몰락했음을 이로써 알 수 있다. <증언들>은 <시녀 이야기>로부터 십몇년 뒤의 시점을 택해 길리어드의 몰락을 초래한 요인을 내부자의 시점으로 들려준다.

<시녀 이야기>가 시녀 오브프레드의 수기 형식을 취했다면, <증언들>은 세사람의 기록과 녹취록이 교차하는 구성이다. 길리어드 사회의 여성 관련 제도와 업무를 총괄하는 ‘아주머니’ 계급의 실력자 리디아 아주머니의 비밀 기록, 사령관의 양녀인 아그네스의 증언, 그리고 이웃 나라 캐나다 소녀로 길리어드와 운명적으로 얽혀 있는 데이지의 증언이 그것들이다. 이 작품에서는 또한 리디아 아주머니의 기록을 통해 신정 체제가 들어서던 초기의 모습과 아주머니 계급의 출현 과정 및 기능 등에 관한 좀 더 구체적인 정보가 제공된다.

“<증언들>은 전편 <시녀 이야기>를 읽은 독자들의 마음속에서 부분적으로 집필되었고, 독자들은 소설이 끝난 뒤 어떻게 되었냐고 계속 질문했다. (…) <시녀 이야기>에 대해 반복적으로 나오는 한 가지 질문은 이것이다. 길리어드는 어떻게 붕괴했는가? <증언들>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썼다.”

책 뒤에 붙인 ‘감사의 말’에서 애트우드는 <증언들>이 독자들의 질문에서 영감을 얻어 집필되었노라고 밝혔다. 작가와 독자의 일종의 ‘협업’의 소산이라는 뜻이겠다. <증언들>은 또한 드라마 <핸드메이즈 테일>과도 긴밀한 관련 아래 쓰인 것으로 알려졌다. 드라마를 만드는 과정에서 작가의 견해를 청취했고, 다시 작가는 드라마로부터 속편과 관련한 아이디어를 취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증언들> 뒷부분에는, <시녀 이야기>에서는 드러나지 않았던 오브프레드의 본명 ‘준’(June)이 드라마 <핸드메이즈 테일>에서 밝혀졌다는 사실이 각주 형태로 제시되어 있기도 하다.

“사회는 남자와 여자가 별개의 반구를 차지하고 봉사할 때 가장 잘 돌아갑니다.”

길리어드의 최고 권력자 가운데 한 사람인 저드 사령관의 이런 신념대로 길리어드는 남자와 여자의 역할을 철저하게 구분한다. 구분한다기보다는 실질적인 권한을 거의 모두 남자가 차지하고 여자는 다음 세대를 재생산하고 가사노동을 전담하는 등의 역할로 제한하는 것이다. 그를 위해 여자들에게는 글자도 가르치지 않고, 얼굴을 제외한 온몸을 모자와 옷으로 가리도록 하며, 술과 연애를 금한다. 하느님과 성경 말씀을 받들며 ‘청교도적’ 도덕률에 기반한 사회를 표방한 것인데, 아그네스의 증언에 따르면 “미덕과 순수의 외면 밑에서 길리어드는 썩어 가고 있었”다. 진료실에서 미성년자를 추행하는 저명한 치과의사, 다른 사령관의 아내와 불륜을 저지르는 아그네스의 양아버지, 아내를 살해하고 어린 새 아내를 취하기를 거듭하는 저드 사령관…. 이런 부패와 타락이 길리어드 체제를 근저에서부터 갉아먹고 있었음이 드러난다. “전체주의는 집권 과정에서 한 약속을 계속 어기는 과정에서, 내부로부터 무너질 수 있다”고 애트우드는 ‘감사의 말’에 썼다.

<증언들>의 저자 마거릿 애트우드. ⓒLiam Sharp

여성에 대한 억압과 차별은 필연적으로 저항과 탈주를 초래한다. 소설 주인공인 세 여성은 각자의 방식으로 길리어드 체제의 붕괴에 기여하며, <증언들>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독자들은 <시녀 이야기>의 뒷이야기에 관한 궁금증을 풀 수 있게 된다. 아그네스와 데이지의 감추어진 이야기가 스릴러적 흥미를 유발한다면, 리디아 아주머니의 고백은 놀라운 반전으로 읽는 이의 허를 찌른다. 마거릿 미첼의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대한 오마주일 “그러나 내일은 또 다른 날이다”를 비롯해, 윌리엄 블레이크와 로버트 프로스트, 로버트 번스 등의 선행 텍스트에 관한 언급을 만나는 재미도 쏠쏠하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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