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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2.13 16:36 수정 : 2005.02.13 16:36

국제미술시장의 큰 손인 작가 겸 사업가 김창일씨의 저돌적인 젊은 작가 전속지원 프로젝트를 화랑가가 주시하고 있다. 확대경을 들고 자세를 취한 김창일 회장의 작품용 사진.

유망작가 ‘큰손’ 이 크게 키운다

‘사치 컬렉션’의 신화가 한국에도 가능할까. 80~90년대 영국의 광고재벌 찰스 사치는 대학을 갓 졸업한 데미안 허스트 같은 젊은 자국 미술인들의 작품을 집중 매입· 집중 전시하면서 영국 현대미술을 단숨에 세계 미술의 중심부로 밀어올렸다. 이 신화를 우리 미술판에 재현하겠다는 프로젝트가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국제미술품 시장의 큰 손이자 천안에서 백화점, 터미널과 아라리오갤러리를 운영해온 김창일(54 ·일명 씨킴)아라리오 그룹 회장이 장본인이다. 그는 최근 국제적인 스타작가를 만들겠다는 명분 아래 화단의 젊은 유망주 8명과 1인당 연간 5000만원 이상을 대는 파격적 조건의 전속계약을 맺고, 작품 제작 및 전시 지원을 전담하기로 했다. 스스로도 작가를 자처해온 김 회장은 90년대 이후 데미안 허스트, 마크 퀸, 시그마 폴케 등 서구 정상급 작가들의 작품들을 대량 수집하면서 의욕적인 기획전을 계속 마련했으며 오는 3월에는 허스트의 대표작 <채리티>를 들여오겠다고 밝히는 등 미술판에 화제를 뿌린 인물이다.

국제미술품 거상 김창일씨
8명과 파격조건 전속계약
국외 마케팅 국제스타 육성
“화랑 유통망 무시”비판도

전속계약을 맺은 작가들은 구동희(31·비디오 퍼포먼스, 설치), 권오상(31·사진), 박세진(28·회화), 백현진(33·종합예술), 이동욱(29·미니어처 조각·설치), 이형구(36·사진, 설치), 전준호(36·비디오, 설치), 정수진(36·회화)씨로 현대미술 각 분야를 망라하고 있다. 모두 20대 후반 30대 초반으로 대개 2~3년 전부터 대안공간 등의 각종 개인전과 그룹전, 비엔날레 등에서 작가적 역량을 인정받은 소장작가들이다.

화랑가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아라리오의 프로젝트는 연말부터 감지되었다고 한다. ㅋ, ㄱ갤러리 등 몇몇 화랑들의 알선으로 국제아트페어와 기획전 등에 참여했던 예비 전속작가들이 갑자기 아라리오쪽으로 옮긴다는 의사를 밝히면서부터다. 경악한 몇몇 화랑주들의 입말이 퍼져나갔고, 8명의 작가들이 막대한 금전지원을 약속받았다는 설도 전해졌다. 함구해오던 아라리오쪽은 뒤늦게 설날을 앞둔 지난 7일 급히 기자 간담회를 열어 프로젝트를 일부 공개했다.

공개한 프로젝트 내용을 보면 전속작가들은 합의를 깨지 않는 한 갤러리쪽에서 일체의 국내외 개인전 및 기획전 경비와 작업실·생활비용 등을 부담한다. 단, 전속하는 동안 제작하는 작품들은 갤러리와의 협의가 없이는 한 다른 화랑, 미술관에 낼 수 없고 모두 아라리오쪽 컬렉션 전시와 해외기획전에 출품한다. 전속작가 3명의 작업실 스튜디오를 화랑쪽이 이미 마련해 주었으며 제주도 성산 일출봉 근처에 1000여 평에 달하는 공동작업 스튜디오도 짓기로 했다는 설명이다. 또 천안시 신부동 현 갤러리의 3배에 이르는 ‘어나더 아라리오’라는 대형 전시공간을 옆에 별도로 짓는 외국 건축가의 설계안도 완성되어 곧 건립공사에 들어간다고 한다. 김 회장은 “판매에 신경쓰지 말고 하고 싶은 대로 작업하라는 것이 계약의 핵심”이라며 “작가가 계약을 파기하지 않는 한 영구계약으로 봐도 된다”고 말했다. 그는 “해외 유수의 미술관, 상업화랑 등과 네트워킹해 이들 작가의 관련 정보를 수시로 홍보하며 공동기획전 추진 등 최상급의 마케팅 전략을 펼칠 것”이라고 덧붙였다. 예컨대 내후년 베니스비엔날레 행사장 인근에서 합동기획전을 열거나 바젤 아트페어 특별전 등에 출품하겠다는 것이다. 한편 아라리오쪽은 아시아권 전시공간들과 꾸준히 교류해온 대안공간 루프쪽과도 최근 계약을 맺고 문예진흥원을 통해 매달 수백만원대의 지정후원금을 대어주기로 했다. 루프쪽은 대신 젊은 국내외 대안작가들의 활동정보와 컨설팅 등을 아라리오쪽에 해줄 것으로 전해졌다. 아라리오는 이밖에도 ㅎ갤러리, ㅍ갤러리 등 일부 중견 화랑 관계자들한테도 자문을 받고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사치컬렉션을 대부분 벤치마킹한 듯한 아라리오의 청년작가 프로젝트는 국내 미술시장 구도에 어떤 식으로든 변화를 몰고올 전망이다. 기존 화랑들이나 삼성 같은 거대 컬렉터들이 젊은 작가들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 프로그램으로 미술시장의 체질개선을 도모하려는 시도에 인색했던 선례에 비춰 이번 프로젝트는 시장구도 개편을 노리는 승부수 성격이 짙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치컬렉션이 기존 상업화랑의 유통망을 활용한 것과 달리 아라리오쪽은 화랑 중심 시장의 작가 수급 구조를 무시한 채 일부 화랑의 예비전속작가들까지 끌어와 국내 시장과의 갈등은 어차피 불가피할 것이란 관측이 많다. 또 기존 국내 작가 작품을 다량 구매했다가 상품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무더기 처분하는 등의 즉흥적인 ‘동키호테’행보를 보여온 김 회장의 평판에 대한 미술계 시각도 다소 엇갈리는 편이다. 작가 ㅎ씨는 “다른 화랑들이 하지 못했던 획기적 발상”이라며 “작가들 밑천 빼가기에 급급했던 다른 상업화랑들도 성찰의 계기가 되지 않겠느냐”고 반겼다. 기획자 ㅂ씨도 “대안공간에서 각광받아도 국제적 통로가 없어 주저앉은 경우가 많았는데, 이런 구상자체는 진일보한 것”이라고 반겼다. 반면 화랑 관계자들은 잔뜩 긴장하거나 신중히 지켜보자는 분위기다. 국제 갤러리의 이현숙 대표는 “단지 금력을 앞세워 화랑들이 노력해 쌓아올린 유통구조 자체를 깨는 행위는 환영받지 못할 것”이라며 “작품판매와 안목은 돈만으로 해결될 수 없는 문제”라고 말했다. 또다른 화랑쪽 기획자 ㅇ씨는 “최근 화랑들이 젊은 작가 마케팅에 관심을 가지는 추세였는데, 씨킴의 행보가 이런 흐름을 가속화시킬지는 미지수”라며 “과시성 전시에 치중해온 그의 전력이나 컬렉터로서의 신뢰성에 대한 논란 등이 변수가 될 것 같다”고 내다봤다.

논란많은 이 프로젝트의 성과를 가늠해볼 첫 뚜껑은 내년 상반기 예정된 권오상, 이동욱, 이형구씨의 3인전에서 열리게 된다. “10년여 의 국제미술품 거래로 세계미술시장과 우리 갤러리와의 시차를 이제 상당히 좁혔다”며 자신감을 내보인 김 회장의 시나리오가 과연 결실을 맺을 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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