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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2.14 17:36 수정 : 2005.02.14 17:36

우리말로 주소를 쓸 때는 도시 이름으로 시작해 좁아지는 행정구역, 번지수, 건물 이름과 동 호수들이 나타난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동 …” 요즘은 받는 이의 이름을 맨 앞에 쓰지만 옛날에는 주소를 다 적은 뒤에 받는 사람 이름이 나왔다. 서양 사람들이 주소를 적을 때는 우리와 정확하게 반대 방향으로 적어 나간다. 먼저 받는 이 이름이 나오고, 작은 행정 단위에서 큰 단위 차례로 적는다.

날짜 적기에서도, 영어에서는 보통 달-날-해 차례지만, 도이치말에서는 날-달-해 차례로 나타난다. 우리말과는 반대 방향이다.

이런 것들은 사람이 스스로 차지하고 있는 때와 장소를 인식하고 표현하는 방식을 아주 간결하게 보여주는 것인데, 제가 있는 곳과 때의 좌표를 인식하는 데서 우리말과 서양말이 (거의) 반대 방향으로 흐른다.

애초에 사람이 말을 만들었지만 한번 만들어지고 나면 말이 사람 생각의 큰 모양과 흐름을 결정한다는 것을 여기서 볼 수 있다. 우리말만 쓰고 산다면 이렇게 다른 생각의 흐름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지낼 것이고, 반드시 알아야 할 필요도 없을 터이다. 하지만 오늘날과 같은 세계화 시대에는 사정이 그리 단순하지 않다. 내 것도 알아야 하지만 남의 것도 제대로 알아야 비로소 나를 더 잘 알게 되고, 자신의 좌표를 다른 관점에서 살펴볼 수가 있다. 말을 논할 때도 비교 관점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생각의 방향이 다른 것은, 명사 하나에 꾸며주는 말들이 여러 가닥 붙는 데서도 볼 수 있다. 서양말과 우리말은 명사를 꾸며주는 말이 오는 차례가 서로 다르다. 생각이 흐르는 방향이 반드시 반대는 아니라도 여러 모로 차이가 나는 것이다.

안인희/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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