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2.15 16:42
수정 : 2005.02.15 16:42
‘과거’ 가 ‘현재’ 준거된 사회상황 반영
비사저널리즘이 새롭게 각광받고 있다. 최근 방송 시사프로그램을 통해 한국사회 과거사의 감춰진 이면을 파헤치려는 시도들이 집중적인 관심을 끌고 있다. 지상파 방송사 두루 공통된 현상이다.
에스비에스는 지난 12일 밤 <그것이 알고싶다>를 통해 ‘누가 육영수 여사를 쏘았는가?’를 내보냈다. 박정희 전 대통령 부인 육영수씨 피살사건의 실체를 추적한 이 프로그램의 시청률은 무려 23.6%(티엔에스미디어코리아)를 기록했다. 평소 10%대의 시청률을 보이던 데 비해 두배 가량 높은 수치다.
한국방송 2텔레비전 <추적60분>이 16일 밤 11시 방영하는 ‘정형근 고문 논란, 누가 거짓을 말하나’도 방영 전부터 커다란 사회적 관심사가 되고 있다. 국가정보원 과거사 7대의혹 사건의 하나인 ‘1992년 중부지역당 사건’ 고문피해자들의 증언을 중심으로 사건 실체 추적에 나선다.
문화방송은 비사저널리즘의 간판 격인 <이제는 말할 수 있다>를 다음달 말 시작한다. 3월27일 1편 인혁당 사건의 진실을 탐사하는 ‘8명의 사형수와 푸른 눈의 투사들’을 시작으로 역시 육영수씨 피살 사건을 다룬 ‘문세광과 육영수’(4월3일),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4월17일) 등을 준비하고 있다.
최근 비사저널리즘의 대두는 한국사회의 과거사 진실규명 열기와 뚜렷한 상관관계가 있다. 국정원이 과거사 7대의혹 사건 규명을 새해 과제로 내세운 점과 지난달 20일 한-일관계 정부문서 공개 등이 과거사를 둘러싼 두터운 미스터리의 베일을 벗겨내야 한다는 세간의 공감대를 형성케 했다.
더 깊게는 과거사가 단지 흘러간 옛이야기가 아니라 오늘 한국사회의 정체성과 미래상을 가늠하는 중요한 ‘사회적 현실’이 되고 있다는 점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과거사에 대한 평가가 지금 정치적 선택의 준거가 되고,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좌표가 되고 있는 상황이 옛 비사들에 대한 대중적 관심을 추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문화적으로도 <그때 그사람들> 같은 옛 권력자를 다룬 창작물이 뜨거운 사회적 현안으로 떠오르는 등 바야흐로 과거의 기억을 둘러싼 사회적 승인투쟁이 불붙고 있는 상황이다.
‘지금 여기’와의 관련성은 최근 비사저널리즘이 과거의 그것과 대별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비사저널리즘은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반 사이 대대적인 선풍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당시 인쇄매체를 중심으로 가열됐던 비사저널리즘은, 그러나 당대 권력의 실체를 파헤치기엔 무력하거나 겁이 많았던 탓에 과거 정권의 ‘죽은’ 이야기에 집중했던 당시 언론의 한계를 고스란히 반영한 것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전 비사저널리즘과의 차이는 최근 프로그램들이 독자적인 검증을 불사하는 한층 심층적인 취재 방식을 선보인다는 점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것이 알고싶다>가 총성분석을 통해 ‘경호원 저격 의혹’을 제기한 것과 <추적60분>이 고문 수사관 4명의 몽타주를 작성해 행방 추적에 나서는 것 등이다. 익명의 관련자 육성에 주로 의존했던 초기 비사저널리즘과 달라지는 지점이다.
김환균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책임피디는 “최근 비사저널리즘은 사회적 의제와 맞물려 파장이 커진 측면이 있다”며 “단순히 과거를 들추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바라보며 우리사회가 어디로 나갈 것인가를 염두에 둔 프로그램이 되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