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2.17 17:55
수정 : 2005.02.17 17:55
흑백사진에 인화된 젊은 미술가의 영혼
우리 미술판에 서구 포스트모던 미술의 잔향을 흩뿌렸던 작가 박이소가 지난해 4월 심장마비로 홀연 마흔여섯해 삶을 접은 사실은 1달 뒤에야 미술판에 알려졌다. 그와 친했던 미술인들은 서울 청담동 누나 집 작업실에 뒤늦게 차려졌던 빈소의 회색빛 정경을 기억한다. 작가가 잠자듯 앉은 채로 숨을 거둔 소파와 재즈음반, 포도주병이 놓였던 탁자, 커텐 달린 창문, 재료물 서랍들…. 삭막한 미술판에서 생존을 고민했던 인간 박이소의 그 실존적 자취들은 이후 유족들이 집을 헐면서 영영 사라져 버렸다.
세상을 뜨기 일년전 작가의 모습과 작업실의 아련한 잔상들을 담은 사진들이 서울 관훈동 관훈갤러리에 내걸렸다. 패션사진가 추영호씨가 2003년 찍은 흑백사진 16장으로 꾸민 ‘박이소의 잔상’전은 이제 볼 수 없는 작가의 아릿한 풍경들이다. 당시 에르메스 미술상을 탔던 작가의 사진을 한 월간지에 싣기 위해 아침녘 찾아왔던 추씨는 렌즈를 응시하기 싫어하는 박이소의 퀭한 옆모습 두 컷만을 찍었다. 대신 바닥에 널부러진 작업도구와 조형물, 작업노트, 담배를 곧추 세운 그의 손 등을 뷰파인더에 담았다. 돌에 붙은 숟가락 등 기묘한 생물같은 소품 조형물들과 작가가 숨진 소파, 탁자 위로 번지는 여명의 빛, 담배를 쥔 손가락 등은 생전 한 작가의 ‘불확실한 삶과 무료함과 답답함이 들어있는 영감의 오브제’들이다. 사진가 추씨는 “퀭한 눈으로 사진을 거부하던 그가 밉지 않았다. 반드시 다시 찾아와 친구가 되리라 다짐하고 1년만에 외국에서 돌아와보니 그는 없었다”고 했다. 건조한 시선으로 허공을 바라보는 사진 속 고인의 눈길은 무엇을 주시하려 했던 것일까. 3월1일까지. (02)733-6469.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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