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강 강변 언덕에 정박한 콜럼버스의 ‘산타마리아’호 레스토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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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의 허상 렌즈 담아 21세기 한국에서는 거대한 돛배들이 바다 아닌 산과 들에 닻을 내린다. 2000년대 이후 대도시 교외와 유원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범선 모양의 카페와 호텔 건물들을 이르는 말이다. 대항해 시대 부와 영화를 얻으려고 출항했던 범선이 지금 한국에서는 왜 부적절한 곳에 정박했을까. 평소 한국사회의 이질적 공간을 찾아 작업해 온 젊은 사진가 전은선씨가 한국적인 ‘땅배 건축’에 렌즈를 들이댄 데는 이런 궁금증이 한몫을 했다. 서울 인사동 갤러리라메르에서 열리고 있는 그의 근작전 ‘산타마리아’는 나라 안 곳곳에 분위기를 내며 걸터앉은 배 건축물들을 2년여 간 다양한 각도에서 포착한 사진들 모음이다. 등장하는 배들은 정동진 바닷가 야산 꼭대기에 흉물스럽게 걸터앉은 유람선 모양의 대형호텔, 북한강 강변언덕에 뜬금없이 등장한 콜럼버스의 ‘산타마리아’호 레스토랑, 해도 대신 도로표지판 보고 찾아야하는 자유로 인근 숲속의 범선카페, 진해 다도해 바닷가에 있는 배 모양의 찜질방·레스토랑 등이다. 얼핏 주위 환경을 깡그리 무시한 채 정박한 땅배들의 강퍅한 몰골을 연상하기 쉽지만, 전시장에 낭랑히 흐르는 재즈음악 속에서 감상하는 사진 속 배의 자태는 의외로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왠지 모를 안락감을 준다. 측면 혹은 원거리에서 산야에 얹힌 배들의 모습을 차분히 조망하는 특이한 구도가 작용한 탓인데, 때론 설경 속에서 초현실적인 배건축의 자태를 조망하기도 한다. 그건 작가의 말처럼 “서양배를 본딴 건축물의 이색적 풍경 속에서 식사하고 데이트하면 행복할 것 같은 환상”을 안겨주기 때문일 것이다. 세속적인 과시의 욕망으로 들끓는 한국사회의 공간에서 잠시 현실을 일탈할 낭만을 쉽사리 안겨주는 시각적 상징물로서 이들 배의 효용가치는 뚜렷이 입증되었음을 드러낸 셈이다. 작가는 서구 소비문화를 강박적으로 본뜨는 이땅 공간에 나타난 기묘한 변종인(어쩌면 곧 헐릴 수도 있는) 옛 서양배의 이미지들을 주위 땅의 질감과 대조시키며 긍정도 부정도 아닌, 이용객들의 시선으로 기록하는 듯하다. 땅배란 흥미거리 소재에만 자칫 치중할 법한 함정을, 건물 실체를 에둘러 포착하는 은유적 시선으로 피해가려는 기지가 엿보인다. 22일까지. (02)730-5454. 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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