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2.20 16:50
수정 : 2005.02.20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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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명도 팔폭’ 가운데 일부인데, 수박과 가지 등을 담은 그릇의 고졸한 묘사와 받침탁자의 알록달록한 나무무늬 표현이 신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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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화는 조악하다?
색채가 강렬하지 못하고 보는 맛이 밋밋하다? 담백한 우리 옛 그림에 흔히 따라붙는 이런 불만에 귀기울였던 사람이라면 23일 서울 견지동 동산방화랑에서 막을 올리는 ‘한국민화’전을 가볼 일이다. 화려하면서도 경쾌한 색채와 현대적 디자인 감각이 울렁거리는 선묘, 초현실적이기까지 한 도상의 상상력이 아롱진 전통 민화의 성찬이 오해를 풀어줄 법하다. 이번 전시는 고미술품과 한국화 전시에 일가를 이룬 이 중견화랑이 공력을 쏟아부은 기획전으로 민화전시에 목말랐던 애호가들에게 쏠쏠한 안복을 선사할 것으로 보인다. 98년 호암미술관의 ‘매혹의 우리 민화’전에 이어 7년 만에 풀어놓는 대규모 민화전이다.
7년 공들인 수작 100여점 나들이
꽃, 새그림인 화조화를 중심으로 익살스런 까치호랑이 그림, 청룡도, 문자도, 책거리도 등 100여 점의 개인 소장 민화명품들이 나오는 전시장은 채색이나 구도 등에서 호암컬렉션에 뒤지지 않는 수준급 컬렉션을 보여준다. 민화는 화원, 선비화가들의 전통 화법을 형식적으로 답습한 격 떨어지는 그림으로 인식되곤 하는데, 출품작들은 그런 통설과는 다른 면모를 보여주는 수작들이 많다. 1층의 경우 가벼운 필치의 선에 푸른빛을 가득 머금은 모란 등의 화조그림이 상큼하게 관객들을 맞는다. 특히 복숭아, 석류, 수박, 가지, 오이 등의 과일·채소 등을 청화백자 그릇에 담은 기명도 그림은 아기자기한 배치와 수박 속살을 슬쩍 열어보인 재치있는 구성, 받침대인 나무탁자의 정교한 무늬 등 여러 측면에서 사랑스러운 감정을 일으킨다. 소나무 아래 학이 노니는 화조도에 묘사된 나무 등걸 무늬나 솔잎의 탁탁 끊어지는 듯 반복적인 장식표현은 깔끔한 그래픽에 가깝다.
정밀한 선묘·과감한 생략 정통화 빰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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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급민화 ‘화조도’ 팔폭 병풍 가운데 세번째폭. 비단에 불투명 안료로 채색한 진채그림이다. 선명한 원색조 배색을 제외하면 새와 꽃 등의 세밀한 필선, 틀 잡힌 화면 구도 등이 정통화법을 방불케한다. 동산방화랑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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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으로 가면, 신혼방에 장식되었던 원앙, 사슴 등 각종 동물의 쌍쌍그림들이 눈에 안긴다. 정교한 구도와 세밀하게 나무와 짐승들의 털, 윤곽을 잡은 선묘 등이 매력적이다. 고갱이는 2층에 있는 까치호랑이와 운룡도. 벽사를 위해 호랑이와 앙숙인 까치를 한데 모은 까치호랑이 그림은 터럭 한 올 한 올을 세밀하게 잡으면서도 표정은 엉성하게 만들어 까치와 눈싸움하는 호랑이 모습이 일품이다. 정면구도의 생략법으로 용틀임하는 청룡의 역동적 이미지를 잡아낸 운룡도는 기우제 그림으로 몇 안 남은 희귀본이라고 한다. 또 3층에 있는 화조도는 거장 장승업의 그림을 연상시키는 선명한 비단채색그림으로 전시의 걸작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죽서루, 청간정, 삼일포 등 관동팔경을 극도로 단순화시켜 표현한 <관동팔경도 육폭>과 원근법을 거꾸로 뒤집은 진채의 책거리 그림, 화조화와 어울린 북방 오랑캐의 사냥그림 등도 쉽게 보기 힘든 작품들이다.
초현실적 상상력 양반계층도 향유 암시
주로 18세기 것으로 추정되는 출품작들은 세간의 통설과 달리 화원이 그린 정통파 회화와 민화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것을 일러준다. 대개의 민화들이 정통회화를 뺨치는 정교한 선묘와 치밀한 화면배치를 지녔고, 상상력의 분방함도 뛰어나 서민층뿐 아니라 양반계층에서도 나름대로 사랑받았다는 것을 암시하는 까닭이다. 민화가 이발소 그림 풍의 조악한 장르였다는 세간의 속설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는 점에서도 숭늉같은 여운이 남는다. 박우홍 동산방 대표는 “70년대 이후 민화의 가치가 재평가되면서 일어난 수집 바람으로 80년대 이후 오히려 명품 구경이 어려워지고, 연구도 지체된 현실”이라며 “이번 전시가 민화의 미술사적 가치를 대중과 나누는데 도움이 되기 바란다”고 말했다. 3월8일까지. (02)733-5877, 6945.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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