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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2.22 19:35 수정 : 2005.02.22 19:35

중국 뤼순 공략을 맡은 일본 제3군이 이 지역에서 가장 높은 203고지 공격을 벌이는 장면을 묘사한 그림. 아시아평화와 역사교육연대 제공.


오늘날 많은 일본인에게 러일전쟁은 침략전쟁이 아니라 방위전쟁으로 기억된다. 그 ‘기억’ 속에서 러일전쟁은 국민국가의 승리라는 자부심 가득한 사건이다. 일본은 이 전쟁을 통해 20세기 세계사에 ‘문명국’으로 화려하게 등장했다.

반면 러일전쟁에 대한 한국인들의 기억은 미미하다. 러일전쟁의 결과인 을사조약에 대한 기억을 재생하려는 움직임만 강렬할 뿐이다. 국권상실의 치욕을 잊지 말자는 민족주의적 접근만 강조된다. 정작 치욕의 원인인 당시 국제열강과 러일전쟁에 대한 이해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미완성의 기억이다.

러일전쟁의 원인과 결과에 대한 재인식은 올해 100돌을 맞는 을사조약의 역사적 의미를 다시 살펴보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관건이다. 동시에 2005년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열강의 각축을 대비하는 핵심적 역사쟁점이다. 러일전쟁에 대한 어떤 기억을 되살려 교훈으로 삼을 것인가에 대한 문제가 녹아 있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의 기억에서 사라진 것은 러일전쟁만이 아니다. 이 전쟁에 대한 일본의 역사해석 변화에 대해서도 한국인들은 무관심하다. 일본에서는 개전 100돌인 지난해부터 종전 100돌인 올해에 걸쳐 러일전쟁에 대한 여러 학술토론회가 진행되고 있다. 러일전쟁 승리를 통해 제국주의 국가 대열에 들어섰으며, 온 국민이 참여해 승리를 거둔 ‘국민의 전쟁’이었음이 부각되고 있다.

일, 침략 아닌 방위 단정 “국민승리” 자부
“아시아 독립 고취” 서술도-100돌맞이 요란
한국은 ‘을사조약’ 단순배경으로 기술 그쳐

일본의 여러 신문사는 ‘러일전쟁 100주년’ 특집을 다뤘다. 쓰시마 해전의 영웅 도고 헤이하치로의 전기가 대단한 인기를 끌고 있다. 역사소설가인 시바 료타로가 1968년부터 72년까지 <산케이 신문>에 연재했던 <언덕 위의 구름>이라는 소설도 다시 부각되고 있다. 러일전쟁의 영웅을 강조해 ‘조국방위전쟁’의 시각을 부추기는 내용이다.

이는 일본 사회 전체의 보수화 경향과 잇닿아 있다.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 지난 2001년 발행한 중학교용 <새로운 역사교과서>(후소사)를 보면, 러시아 위협론을 강조하면서 러일전쟁을 조국방위전쟁으로 단정하고 있다. 이 책의 필자 가운데 한 사람인 후지오카 노부카쓰는 “군사균형이 깨어지지 않는 사이에 전쟁을 감행하는 것도 일종의 방위전쟁”이라며 “러일전쟁은 일본에게는 방위전쟁”이라고 말한다.

러일전쟁에 대한 일본의 기억을 한국인들이 곱씹어 봐야 할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노부카쓰 식의 평가는 “북한이 일본의 영토에 도달하는 미사일을 갖고 있고, 더구나 핵폭탄을 보유하고 있다면 이쪽이 먼저 공격하는 것도 훌륭한 방위”라는 논리로 이어진다. 일본의 이해를 지키기 위한 어떤 침략전쟁도 정당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이해는 일부 극우적인 논리에만 숨어 있는 게 아니다. 99년 일본 문부성이 내놓은 <고등학교 학습지도요령 해설-지리역사편>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일러전쟁에서의 승리가 아시아 제국의 민족독립이나 근대화 운동에 자극을 준 것을 이해시킨다.” 이는 제국주의 팽창과 식민지 지배, 그리고 그에 대항하는 민족독립운동을 교묘하게 교차시켜, 결과적으로 러일전쟁이 제3세계의 독립운동을 고취한 것으로 판단하게 만들고 있다.

그렇다면 러일전쟁에 대한 한국인의 ‘기억’은 어떤가. 중학교 교과서를 보면, 러일전쟁의 원인을 러시아와 일본의 이해대립으로 보면서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우리나라를 본격적으로 침략한 것으로 결론짓는 데 그치고 있다. 그나마 고등학교 국사교과서에서는 러일전쟁의 원인과 경과에 대해 전혀 기술하지 않고 있다. 러일전쟁 전후의 일본 침략정책에 대한 이해를 충실하게 갖기 어려운 것이다.

러일전쟁은 실질적으로 한국 지배권을 둘러싼 제국주의 열강 간의 전쟁이었다. 그래서 조선은 당시 교전당사국이 아니었음에도 치열한 격전장이 됐다. 러일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는 러시아도 중국도 아닌, 일본의 식민지가 된 조선이었다.

러일전쟁에 대한 한국과 일본의 ‘기억’은 극명하게 대비된다. 침략전쟁을 긍정하는 방향으로 불러들인 러일전쟁에 대한 일본의 ‘기억’은 우려할 만하다. 반면 러일전쟁에 대한 우리의 깊이 있는 기억이 없는 것도 부끄러운 일이다. 동아시아 공통의 역사기억에서 점점 멀어져가는 ‘균열’은 이렇게 두 나라에서 동시에 발생하고 있다. 왕현종 연세대 역사문화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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