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5.02.23 10:56 수정 : 2005.02.23 10:56

[인터뷰]‘사람 vs 사람’ 정혜신씨가 분석하는 ‘남자’와 ‘나’

남성심리 분석전문 정신과 전문의. 예리한 심리분석과 함께 사회적 통찰이 깃든 정교한 글쓰기의 칼럼니스트. 최악의 취재대상이었다. 오래전에 “한번 뵙자”고 인터뷰 요청을 해놓고는 자꾸 미적거렸다. “정혜신씨 새 책 나왔는데 기사 안 쓰냐”는 데스크 독촉에 떠밀리듯 정씨를 만나고 왔지만, 그러고도 한참 머리를 벅벅 긁었다. “땅굴파기” 전문의와 “수박 겉핥기” 기자의 만남은 21일 있었다. 기자는 정씨가 최근 새로 펴낸 <사람 vs 사람>을 읽은 뒤였다. 편집자

<남자 vs 남자>, <사람 vs 사람>. 두 권의 책에서 37명의 사람을 분석한 정혜신. 그는 누구인가?

1. 뒤틀림


“무대뽀였다.”
정혜신은 “정신과에 대한 근거 없는 열정에 휩싸였다.” “무대뽀”로 정신과 의사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정신과 레지던트(전공의)들이 보길도로 ‘화병’ 연구를 떠났을 때, “반드시 그 팀을 따라나서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신과가 무조건, 너무너무 하고 싶었다.”

“그런 강렬한 느낌은 점점 더 강해졌다.”
정신과 정신병동에서 “사람이 갈 수 있는 가장 미천한 단계”를 보았지만, 정혜신은 “다시 병동으로 돌아왔다.” 담당 학과장이 6명의 정신과 레지던트 가운데 여자는 이미 정해진 한명만 뽑겠다고 일방적으로 선언했지만, 정혜신은 “무대뽀였다. 너무나 열성적이고 애절하게 다른 교수님 등에게 어필을 했다. 이유 없이, 막연히, 맹렬하게, 주위 사람들이 걱정할 정도로.”

정혜신은 “마침내 정신과 레지던트가 되었다.”
하지만,
“정신 입문 전부터 시작된 내 존재에 대한 거부는 내게 정신과 의사로서의 삶을 ‘환영받지 못한 아기’로 시작하게 하는 경험을 선사했다. 레지던트 시절 내내 나는 과다한 인정욕구에 시달렸고, 갈수록 공격적 태도를 갖게 되었다.”

정혜신은 몰입했다.
“가운을 입고 병동으로 들어가는데 코 끝으로 스미는 병원 냄새에 가슴이 두근거리면서 행복감이 몰려들었다. 병적인 몰입이었다.”

정혜신은 왜 그토록 “무대뽀”였고, 몰입했을까?
왜 40~50대 중년의 남자에 더욱 더 몰입하게 됐을까?
“아버지에 대한 기억과 감정이 근본적 이유다. 아버지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었다. 6살 때 어머니가 암 진단을 받고 7년을 병석에 계시다 돌아가셨다. 아버지 나이 46살에 부인이 죽었다. 정신과 의사가 되고 아버지가 우울증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아버지는 어느날 갑자기 길에서 쓰러져 돌아가셨다. 스트레스 때문이었다. 내 환자 가운데, 첫번째 죽은 분이 아버지다. 아버지는 죽을 만큼 고통스러웠지만, 한마디도 하지 않으셨다. 그냥 안으로만 안고서, 서서히 죽어가는 아버지가 남자의 원형처럼 내게 자리잡았다. 아버지의 삶이 준 영향이 크다.” 정혜신이 돌아가신 아버지의 지갑 속에서 우연히 발견한 것은 복권 석 장이었다.




2. 치유

“아마도 제 스스로의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동기, 제 스스로를 치유하고 싶은 내 문제 때문이었던 같다.”
그것은 치유였다.

“정신과 전문의가 되기 전까지, 대략 서른까지는 우울증적 색채가 짙은, 좋았던, 즐거웠던 기억이 없다. 소풍가기 전날의 가슴 설렘과 기뻤던 기억이 없다. 너무 어릴 때 엄마가 아파 우울하고, 암울하고, 의사들이 다녀간 뒤 조금 나아지고…. 그런 연속이었? 친구들과 즐겁게 놀아본 적이 없고, 아버지도 즐거웠을 리 없다. 엄마가 죽은 뒤 허전하고, 내 일생이 허전했다. 정신과에 너무나 너무나 맹목적으로 매달렸다. 젊은 엄마들이 아이들 팔짱을 끼고 다니는 것을 보면, ‘어떤 느낌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에게는 말할 수 없는 결핍이다.”

정혜신은 관행처럼, 전공의 때 2년간 자신의 정신분석 치료를 받았다.
“일주일에 2회, 1회에 50분씩 진행되는 정신분석 과정을 시작했다. 그 과정은 2년 동안 계속되었다.”

정혜신은,
“몇 달 동안 이유 없는 눈물과 이유를 알 만한 눈물이 끊임없이 반복되었다. 어떤 날은 50분 내내 울다가 나온 적도 있다. …눈물이 그치는 날이 올 것 같지 않았다.”

그렇게,
“그 상처가 다 끄집어올려져, 비틀리고, 뒤틀리고, 엇나간 것을 제자리에 맞춰 치유하는 과정이었다. 여자라는 이유로 전공의 선발과정에서 불이익을 당했던 피해경험 때문에 나의 여성성 자체를 부정하려는 증상도 존재했다. 젊은 날 정신과 의사로서의 내 삶도 보통의, 일상적인, 평범한 나를 찾기 위한 특별한 노력의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 정신과를 선택한 이후에 내가 환자들에게 얼마나 도움을 주었는지는 의문이지만 가장 큰 도움을 받은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다. 물론, 지금도 환자를 만나면서 나를 치유하는 것은 아니다. 프로의 예의가 아니다.”

치유는 정혜신, 그 안에만 머물지 않는다.
“막다른 골목길에서의 깨달음은 무엇에 비할 수 없는 강력한 자기통찰력으로 연결된다.”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의 진료기록부 일련번호는 8000번을 넘었다.
“인간은 완성된 것보다 중단된 과업에 대해 훨씬 잘 기억한다.” 중년 남성의 삶에 대한 치유는 “본능적 욕구다.”

-남자는 무엇인가?
=이상하고 어색한 질문이다.

-그렇다면, 중년의 남자는 무엇인가?
=남자가 병도 잘 걸리고 빨리 죽는다. 핵심기제가 감정을 표현하고 해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남자다움이 남자를 멋있게도 하지만, 죽이기도 한다. 남자가 눈물을 보이는 것은 약해지는 게 아니라, 매력적으로 변하는 하나의 표시다. 40대는 제2의 사춘기, 진정한 사춘기다. ‘내가 나이를 먹더니 나약해지는구나’라며 당혹해할 게 아니라, 매력적으로 변할 수 있는 인생의 기회다. 여자의 중년보다, 남자의 중년이 훨씬 더 드라마틱하다. 40대는 남자에게 기회고 축복이고, 길목이다.

-남자는 왜 그러한가?
=40대 이전에는 직업적 안정 등 현실적 목표를 세워놓고 나간다. 그러다가 어느 정도 충족되면 내적인 것으로 틀어진다. 감성적이 되고, 옛날 동창들이 보고 싶어진다. 심리적·정신적으로 퇴행한다. 반대로 여자는 인생의 초기는 ‘남편이 몇 시에 들어오나’, ‘사랑한다고 몇 번 말해주나’가 중요하지만, 그것이 채워지면 외부적으로 관심이 이동한다. 40대가 되면 남자는 부인에게 의지하고 싶어 하지만, 여자는 귀찮아진다.

정혜신에게, 섹스는 치유로 통하는 정신과 진료실의 카우치(긴 의자)다. “섹스는 남자의 본질이 보이는 하나의 통로다. 사람을 읽는 중요한 하나의 코드다.” 정혜신은 ‘펠라티오’(오랄섹스)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사실 남자들은 섹스 중에 늘 자신의 힘을 과시해 보여야 한다는 강박관념이나 여자를 만족시켜야 한다는 의무감, 우월감 따위에 사로잡혀 행복하고 즐거운 섹스를 하기가 어려운 동물이다. 펠라티오가 남자들에게 극한의 희열을 주는 것도 같은 이치다. 펠라티오란 그저 받고만 싶어하는 심리적 퇴행상태를 떳떳하게 충족시킬 수 있는 합법적(?)인 행위다. 펠라티오는 남자들의 책임감을 날려버리는 해방구인 것이다. 아무 것도 의식할 필요 없이 완전히 피동적이고 의존적 상태로 온 몸을 여자에게 맡겨버리는 것. 남자들이 남자다워야 한다는 굴레와 껍데기를 벗어던지고 원초적인 한 인간으로 돌아가는 순간이다. 그것이 바로 남자들이 그토록 갈망하는 본심의 정체인 것이다.”




3. 땅굴파기와 소통

정혜신의 몰입과 땅굴파기는 치유로, 다시 소통으로 연결된다.
“그나저나 올해는 개인적으로 대인관계에서 더 활발해질 수 있었으면 한다.”

정혜신의 땅굴파기는 글쓰기에서도 이어진다.
“너무 힘들고 고통스럽고 밤새도록 게시판 댓글을 천여개씩 보다가 새벽녘에는 구토가 났다. 너무 진저리가 났다.” 정혜신은 <사람 vs 사람>에서 조선일보 김대중 주필을 분석하기 위해, “80년대 초부터 2004년에 이르기까지 김대중이 쓴 수백편의 칼럼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다 읽었다.”, “2001년도에 심은하의 결혼설과 관련하여 언론에 보도된 자료들을 모아보니 200자 원고지로 환산해서 8700매 가량이었다.”

때로 용감한 땅굴파기도 암석을 만난다. 정혜신은 <사람 vs 사람>에서 “김훈이 어려웠다. 예의에 벗어나는 것 같기도 하고, 정신과 의사 티를 내는 것 같기도 하고…. 쓴 것을 날리고 다시 쓰고…. 톤을 조절하기가 어려웠다. 두달 정도 걸렸다.”

그래도 몰입과 땅굴파기는 정혜신만의 독특한 소통이다.
“사람을 만나고 나면 비판적인 글을 쓸 수가 없다. 나는 기자와 다른 접근통로, 그가 어떤 인간인가를 판단한다. 나를 믿고 얘기해줬는데, 공개적인 글로 쓰기에는 한계가 생긴다.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사람을 만나지 않고 쓰기로 한 이상, 자료에 대한 강박관념이 있다.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는 콤플렉스 탓이다. 1~2개 자료가 아니라 게시판의 댓글까지 훑는다. 다양한 사람들의 글을 읽다보면, 한 개인의 실체적 진실이 보인다.”

그렇게, 정혜신의 땅굴파기는 <사람 vs 사람>에서도 소통된다.
“김선주 한겨레 전 논설주간은 ‘실체적인 (작가) 김수현의 모습에 가장 가까운 인물평이다’고 말했다.”

정혜신의 소통은 공감이다. 소통은 정혜신 자신과의 교감을 지나 남편으로 건너간다.

“남편이 좋아한다. 누구보다 자기 심정을 잘 이해할 수 있으니까. 내 주위 사람도 행복해지고, 내 남편이 제일 도움을 받는다. 정신과 전문의는 관찰하는 사람, 꿰뚫어 보는 사람이 아니다. 공감하는 사람이다. 비난하고 평가하는 심판관이 아니다. (책에서) 시각은 비판적이나 한 인간으로서 공감을 하게 된다. 정형근만 빼고.”

정혜신의 소통은 사회로 뚫린다.
“관계 안에서, 존재 속에서, 사회 안에서, 맥락 안에서 읽지 않으면 사람을 제대로 보기 어렵다. 정신과 의사들이 인문학적 관심 없이, 우울증이냐, 정신분열증이냐는 병 중심으로 걸어왔다. 인간 전체 맥락 속에서 인간을 소홀히 한 점이 있다.”

그래서, 정혜신의 소통은 땅굴파기처럼 깊다.
“검사시절부터 음주운전이나 음주폭행 등의 구설수에 오른 그의 일관된 전력을 보노라면 각성상태가 쉽사리 무너지는 그의 정신적 취약성에 의사로서 최소한의 연민은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이해해줄 일이 있고 그렇지 않은 일이 따로 있다. 나는 주성영 의원을 보며 각성상태가 붕괴된 권력기관의 무서움을 실감한다. ‘아듀 2004년’이 다시 올 수 없는 2004년에 대한 작별인사라면 나는 '주성영'으로 상징되는 혼수상태의 권력기관들에게, 올해를 마지막으로 다시는 이런 시대착오적인 색깔공방이 재연되지 말라는 의미에서 세밑인사를 보낸다. 아듀, ‘주성영.”(2004/12/27 <한겨레 >칼럼 아듀, ‘주성영’ 중에서)

하지만, 정혜신의 소통은 ‘공감’이 아니라 관찰과 분석인 듯 불편할 것만 같았다.
“꿰뚫어본다, 내려다본다는 느낌은 없다. 사람들이 그렇게 보는 게 부담스럽다. 다만, 직접적으로 더 훈련을 받고, 충분히 젖어들 수 있을 뿐이다. 얘기를 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내가 분석한다고 느낀다. 하지만, 24시간 정신과 전문의로 사는 게 아니다. 그냥 느끼거나 판단되는 것은 있지만, 평소에는 그러지 않으려고 스스로 경계한다. 자꾸 그러면 사는 게 재미가 있나?”

-점심 시킬까요?
=그럴까요? 그런데, ‘코돈부르’ 돈가스가 뭐죠, 선생님?

정혜신은 ‘코돈부르’ 돈가스가 뭔지 모르는 기자를 위해, “물어보세요”라며 음식점 번호를 누른 핸드폰을 건네줬다. 그리고 정혜신과 기자는 우동을 나눠 먹었다. 정혜신과의 소통은 뜻밖에 편안했다. 섹스가 남자를 읽는 코드 가운데 하나라면, ‘재미’는 정혜신과 소통하는 하나의 코드다. 정혜신은 지난 2003년 ‘감성콘서트-남자들’을 열었다. 정혜신은 피아노를 치고 노래를 불렀다. 정혜신의 컬러링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심수봉의 ‘사랑밖에 난 몰라’다. 그렇게, 정혜신의 공감과 소통은 즐겁다.

-낭만적이다!
=동의하죠!

“사람들이 저를 두고 공격적인 여자를 떠올린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공연과 영화를 좋아하고, 소설책을 좋아한다. 낭만적이기도 하지만 재미있어야 한다. <사람 vs 사람>을 인물을 비교하는 형식으로 쓴 것도 재미가 있어야 되기 때문이다. 역동적이고 재미가 있으니까. 나훈아 콘서트는 체육관 버전 등 다섯번 정도 봤다.”

그래서 정혜신은 주저하지 않는다.
“김대중(조선일보 주필)의 글은 읽어야 되서 읽었지만 굉장히 괴로웠다. 지루해서 볼 수가 없다. 거대담론에 대해서만 굉장히 흥분하고…. 도무지 재미가 없다.”

정혜신의 소통은 이제 자유롭다. 방사선이다.
정혜신은 최근 (주)‘정혜신 M 연구소’를 세웠다. 심리학자들과 함께 최고경영자 등의 스트레스 대처 등 정신건강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역시, “재미난 작업이다. 하루하루 회의하면서 너무 너무 웃는다. 굉장히 즐겁게 일한다. 옆 사무실에서 ‘저 여자들이 왜 저러나…’ 그런다.”

-내가 보는 정혜신은 누구인가?
=<사람 vs 사람>에 쓴 인물 중에서 심은하나, 김민기처럼 극도로 내향적인 모습이다. 제 개인에게 그런 구석이 있다. 심은하의 고통과 괴로움이 누구보다 잘 이해가 된다. 한마디로 대인관계가 없는 사람이다. 1:1은 괜찮은데, 집단적인 대화는 그렇지 않다. 극도로 내향적이다. 사람을 굉장히 꺼리고, 만나야 되는 절체절명의 이유가 아니면 절대로 사람을 만나지 않는다. 하지만, TV 강연 등에서는 하나도 떨리지 않는다. 모순된 것이 있다. 개인적으로 이상하고 오묘하다. 모순된 점이 있다.

-어떤 정혜신이고 싶은가?
=오랫동안 모순이나 갈등을 치유하면서 비로소 평상심, 내 본래의 평이한 모습을 찾았다. 뭐가 되고 싶은 것은 없다. 난 지금의 나로 만족한다. 내 모습이 좋다. 지금 이게 나니까.

정혜신은 <사람 vs 사람> 머리말에 이렇게 썼다.
“아무리 사람에 대한 개인적 관심이 크다고 해도 두번씩이나 인물에 관련된 책을 펴내는 것을 보면 나는 대체로 용감한 편이든지 아니면 ‘무대뽀’쪽이든지 둘 중 하나일 것이다. 부디 조금 용감한 쪽이었길 바란다.”

기자는 오늘, ‘무대뽀’였다.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김순배 기자 marcos@hani.co.kr

* 정혜신씨 홈페이지 www.hyeshin.co.kr

광고

관련정보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