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5.02.24 19:25 수정 : 2005.02.24 19:25



오랜 말글의 분단…하나될 수 있을까

남북이 펴내는 사상 첫 통일국어사전 편찬 작업이 제 궤도에 올랐다. <겨레말큰사전> 공동편찬위원회는 지난 20일 북한 금강산 호텔에서 결성식을 열었다.(<한겨레> 19일치 1면) 2009년 발간 예정인 <겨레말큰사전>은 분단 이후 남북의 언어 이질화를 극복할 획기적 전기라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깊다. “민족어 유산을 총집대성한다”는 큰 원칙 아래 진행될 <겨레말큰사전>의 편찬사업의 쟁점과 전망을 짚어본다.

1989년 문익환 목사 방복때 제안
지속적 교류속 지난 20일 첫 회의
“한글창제 이래 대사건” 학계 평가

40∼50만 어휘 방대한 조사
남북 18개도 사투리 채록 등
2009년 출간 맞추려면 빠듯
2차회의·예산지원 문제 산적

<겨레말큰사전>에 대한 세간의 반응은 그다지 뜨겁지 않다. 남북 공동 국어사전의 가볍지 않은 의미를 ‘일상’ 에서 절감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어학계에서는 “한글 창제 이래 대사건”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남북교류 차원에서도 획기적인 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일회성 행사에 그치는 게 아니라, 통일 이후까지 생명력을 가질 분명할 ‘성과’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편찬위원회 결성식이 열린 지난 20일 금강산 호텔에는 감격의 기운이 넘쳐 흘렀다. 홍윤표 남쪽 공동위원장은 “민족 문화사에 새로운 장을 여는 역사적 사업 앞에 경건하게 옷깃을 여민다”고 말했고, 문영호 북쪽 공동위원장도 “통일대사전을 겨레 앞에 내놓는 것보다 더 영예롭고 보람찬 일은 없다”고 화답했다. 상임위원장인 고은 시인은 축사를 읽다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어떻게 준비됐나= 첫 시작은 1989년 문익환 목사의 평양 방문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문 목사가 김일성 주석을 만나 통일국어대사전 편찬을 제안했고, 김 주석도 여기에 동의했다. 6·15 공동선언 이후 남북 언어학자들의 교류도 꾸준히 이어졌다. 관련 국제학술회의만 2001년 이후 4차례나 열렸다. 언어 전산자료 표준화에 대한 학술교류도 이어졌다. 지속적인 교류 속에 차근차근 성과를 쌓아온 결과는 지난해 12월 사전공동편찬위원회 출범에 합의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어떤 과정을 거치나= 그러나 갈 길이 멀다. 편찬위원회가 공식적으로 발표한 출간 예정시기가 2009년 12월이다. 국어학자들은 “실제로는 이보다 2­3년이 더 걸릴 가능성도 있다”고 말한다. 40만­50만 어휘의 표기·발음·의미·용례 등을 일일이 ‘합의’해가는 과정은 지금까지의 학술교류와는 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특히 “민족문화유산을 집대성한다”는 편찬위원회의 계획은 방대한 조사와 자료 수집을 피해갈 수 없다. 남쪽의 표준어, 북쪽의 문화어는 물론, 남북 18개도의 사투리를 직접 채록·수집하고, 일본·중국·러시아 동포들의 말도 사전에 실을 계획이다. 이 현지 조사에만 2­3년이 걸릴 전망이다.

수많은 어휘를 거르고 고르는 일도 어렵긴 마찬가지다. 그 기준이 될 어문규범의 합의가 가장 큰 관건이다. 국립국어연구원 전수태 연구원이 최근 펴낸 <남북한 어문규범 비교연구>를 보면, 남북은 자모의 수와 이름부터 서로 달리 규정하고 있다. 두음법칙 인정 여부를 비롯해 사소한 듯 하지만 말글 생활을 크게 변화시킨 규범의 차이들이 많다.

앞으로 무엇을 해야하나= 편찬위 결성식에도 불구하고 제2차 편찬위원회 전체 회의의 시기 및 장소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남쪽 편찬위원들은 사업의 규모와 성격에 비춰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대화틀 마련이 필수적이라고 보고 있다. 이를 위해 편찬위 사무국을 개성에 설치하고 공동편찬위 회의를 정례화하는 등의 ‘땅 고르기 작업’이 하루빨리 매듭지어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자금도 문제다. 현지 조사 등에 들어갈 돈이 만만치 않다. 통일부와 문화관광부의 예산지원을 기대하고 있지만, 여의치 않다. 사전 발간을 위한 국민모금 사업을 펼친다는 계획이지만 그 성과는 불투명하다. 남쪽 사업 주체인 사단법인 ‘통일맞이’ 관계자는 “남북교류 사상 가장 역사적이고 가치있는 공동사전발간 사업에 대한 정부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글·사진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남북 말글 차이는 방언적 차이
공동사전 발간 시간문제일 뿐”

남북 공동위원장 홍윤표 교수

<겨레말큰사전> 공동편찬위원장이자 국어학회장인 홍윤표 교수(연세대 국문과)는 “남북 말글의 차이는 방언적 차이일 뿐이고, 남북 국어학자들은 눈빛만 봐도 서로를 이해할 만큼 신뢰가 깊다”며 공동사전 편찬에 자신감을 보였다.

­분단 이후 남북 말글이 서로 얼마나 달라졌나?

=나는 남북의 언어가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차이가 있지만 경상도·전라도 사이의 ‘방언적 차이’에 불과하다. 분단 이후 남과 북이 각각 언어순화 작업을 펼쳤는데, 그 결과를 보면 전체 어휘와 어문규범 등에서 80% 정도 똑같다. 서로 상의 없이 각자의 방식으로 진행했는데도 이렇게 된 것은 민족이 함께 써온 언어의 뿌리가 깊고 실제 언어생활상의 차이도 크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다만 분단 이후 새롭게 만들어진 어휘, 새로 들어온 외래어, 같은 어휘를 다른 뜻으로 쓰는 경우 등이 있지만, 이것이 사전편찬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공동사전은 그런 차이들까지 통일시키는 작업인가?

=이 사전의 목적은 민족문화 유산의 집대성에 있다. 남북의 차이를 단일한 것으로 무조건 ‘통일’시키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남북의 방언은 물론 국외 동포들의 언어까지 수집해 싣는 것이다. 이들의 말글을 강제적으로 규정할 ‘단일지침’을 만들자는 게 아니다. 먼저 남북의 공통점을 뽑아내고, 서로 다른 것을 드러내 깊이 논의하되, 도저히 합의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한 단일한 규범은 통일 이후 후대의 몫으로 넘길 것이다. 예를 들어 ‘일없다’는 말은 남쪽에서는 ‘필요없다’로, 북쪽에서는 ‘괜찮다’는 뜻으로 쓰이는데, 공동사전에는 이 두가지 뜻을 함께 실을 것이다.

­논의 과정에 어려움은 없나?

=학자들 스스로 남북의 현행 어문규범에 각각의 모순점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편찬위원들끼리는 여러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 있다. 이미 상당 기간 남북 언어학자들의 교류가 지속됐다. 그 성과도 적지 않다. 국어학 외적인 문제가 학자들의 교류를 막아서지만 않는다면 좋은 결과를 예상한다.

­사전이 발간되면 남북의 언어생활이 모두 바뀌는 것인가?

=두 정부 차원에서 <겨레말큰사전>을 준거로 어문규범을 바꾸는 것은 또다른 문제다. 출판매체를 비롯해 기왕의 표기법을 바꿔야 할 것이다. 그런 방향으로 나가는 것이 옳겠지만, 아직은 조건이 성숙하지 않았고, 그래서 민간차원의 논의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그 성과인 <겨레말큰사전>은 통일 이후에도 국어사용의 커다란 지침이 될 것이며, 이후 수정·보완을 거치며 남북 말글의 진정한 통일을 이루는 뼈대가 될 것이다.

글·사진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위원회

남쪽=고은 상임위원장, 홍윤표 남쪽 공동위원장(연세대 국문과 교수), 조남호(국립국어연구원 연구관), 조재수(한글토피아 대표), 이희자(경인대 국어교육과 교수), 홍종선(고려대 국문과 교수), 이태영(전북대 국문과 교수), 이상규(경북대 국문과 교수), 김재용(원광대 국문과 교수), 오봉옥(한글문화연구소 책임연구원), 정도상 집행위원장(소설가)

북쪽= 문영호 북쪽 공동위원장(조선언어학회 위원장), 윤춘현(조선사회과학지도위원회 국장), 정순기(조선언어학회 부위원장), 고인배(조선사회과학지도위원회 처장), 고인국(조선사회과학원 부원), 최병수(조선언어학회 서기장), 방린봉(조선사회과학원 실장), 권종성(조선사회과학원 실장), 리명복(조선사회과학지도위원회 위원), 곽상무(민족화해협의회 과장)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