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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2.24 19:28 수정 : 2005.02.24 19:28

“북, 군사 색채강한 국가사회주의 체제”

서동만 상지대 교수(인문사회대)가 <북조선 사회주의 체제성립사 1945­1961>(도서출판 선인)를 내놓았다. 1995년 일본 도쿄대에 박사학위 논문으로 제출했던 저술을 10년만에 고치고 덧대 번역했다.

1천쪽이 넘는 분량은 이 책이 지니는 ‘기념비’적 가치를 웅변한다. 1990년대 이전까지 본격적인 북한 연구는 서대숙·이정식 등 재미 한국인, 로버트 스칼라피노·브루스 커밍스 등 미국 학자, 가지무라 히데키·와다 하루키 등 일본 학자들이 이끌었다.

서 교수는 이종석·박명림 등과 함께 90년대 이후 북한 연구의 ‘한국화’를 주도한 주역이다. <북조선 사회주의 …>는 냉전의 패러다임과 외부자의 시각에서 벗어나 ‘당사자’의 문제로 북한을 연구한 이들 세대의 학문적 성취를 집약하고 있다.

이 책에서 서 교수는 북한 권력집단 내부의 ‘피의 숙청’에 초점을 맞췄던 그동안의 연구를 넘어, “북한 사회주의 체제가 언제 어떤 과정을 통해 형성·정착됐는지”를 시기별로 나눠 실증적으로 추적한다. 방대한 자료에 대한 분석을 근거로 서 교수는 북한을 “군사적 색채가 강한 국가사회주의 체제”라고 정의한다.

사회주의 형성 시기 실증적 추적
“한반도 위기 북 독자 해결 못해”

%%990002%%눈길을 끄는 것은 서 교수가 북한에게 전하는 ‘제언’이다. 그는 “한반도 전체의 위기를 초래한 북조선 사회주의의 위기는 북조선의 독자적 역량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고 진단한다.

1960년대 초반의 “국가사회주의 형성과정에서 나타났다가 내버려진, 다양한 변종과 선택지를 되살려 재음미할 필요가 있다”고 충고한다. 그 시절의 논쟁과 상호비판의 정신을 되살려 개혁·개방을 위한 역동성을 갖추라는 이야기다.

서 교수가 북한과 한국전쟁이란 호칭 대신 ‘북조선’, ‘6·25’를 선택한 이유를 설명하는 대목도 인상적이다. 그 근거를 따라짚노라면, ‘남한’에서 ‘북조선’을 연구하는 일의 어려움을 이해할 수 있다.

이 책의 덤은 머리말에 있다. 그는 86년 일본 유학 이후 지금까지 삶의 여정을 되짚는다. 국정원 기조실장으로 임명됐다가 ‘친북 인사’로 몰렸던 일도 돌이킨다. 국정원에서 대학으로 돌아온 지난해에는 아내가 세상을 떠났다.

역설적이게도 이 책은 서 교수가 ‘친북’과는 한참 거리가 먼, 지극히 실증적인 지식인이었음을 드러낸다. 그런 면에서 이 저술은 너무 늦게 국내에 소개됐다. 학자를 재단하는 무분별한 이념공세의 폭력성이 이제서야 만천하에 입증됐기 때문이다. 그는 이제 “사무치는 회한과 그리움”을 말하는 쓸쓸한 학자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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