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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2.27 16:47 수정 : 2005.02.27 16:47

김종영의 추상조각

새봄…
추상조각·드로잉 대가에 ‘끌’림

조각과 드로잉을 숙명처럼
한평생 지고 살았던
각백(刻伯)으로 불렸던 조각가
그 유적들 3곳서 선봬

화가에게 화백이란 존칭이 주어지듯 각백(刻伯)으로 불렸던 조각가. 평생 ‘불각(不刻)의 미’를 최고의 경지로 추구했던 자연주의자. 50년대 이후 한국 추상조각의 조타수 구실을 하며 많은 후학들을 길러낸 우성 김종영(1915-1982) 앞에 붙는 찬사들은 그가 현대미술판에서 보기 드물게 널리 추앙받는 제도권 조각가란 점과도 잇닿아 있다.

자연적 혹은 구성적 추상조각이란 국내 추상조각의 한 줄기를 일궈낸 김종영의 대규모 회고전이 미술판의 새 봄을 연다. 덕수궁 미술관에서 24일 개막한 ‘한국현대조각의 선구자:김종영’ (5월15일까지·02-2022-0600)을 시작으로 25일 함께 막을 올린 서울 평창동 김종영 미술관의 ‘다(多)·경(景)·다(多)·감(感):조각가 김종영의 풍경’ 전(5월15일까지·02-3217-6484), 서울 청담동 갤러리 원의 ‘김종영의 정물 드로잉’ 전(3월27일까지·02-514-3439)이 뒤를 잇는다. 이례적일 정도로 집중도와 중량감이 느껴지는 이 대규모 회고전은 평생 조각과 드로잉이란 두 장르를 숙명처럼 지고 살았던 그의 작업세계를 풍성한 고인의 유작과 도판들로 갈무리해 보여주게 된다.



자연의 본질을 꼬장꼬장한 철제 추상조각과 문자향이 흐르는 기하학적 형태의 나뭇조각들로 표현했던 김종영의 조각세계는 언뜻 답답할 정도로 평이한 구석이 있다. 권진규 같은 귀기 어린 에너지, 근대기 혁명아 김복진의 패기, 문신과 같은 합리적 형식성은 희박하다. 추사 김정의의 고졸한 미의식에 심취했던 그는 서울대 교단에서 묵묵하게 내공을 쌓으며 세속화의 길에 쉽사리 빠졌던 여느 중진들과 다른 길을 걸었다. 비정형 앵포르멜 운동이나 브랑쿠시, 아르프 같은 서구 조각 거장들의 자장에 딸려들어가면서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쉬 접었던 당시 풍토에서 거의 유일하게 자기만의 목소리로 한국적 추상조각의 언어를 가다듬으려고 외길을 걸었던 것이 그의 작업 여정이었다.

▲ 1958년작 ‘전설’
덕수궁 미술관의 전시에서는 초창기인 <소녀상>(36년작) 등 30~40년대 인물상들과 50년대 <전설> 등으로 대표 되는 추상주의 철 용접 조각들을 필두로 60~80년대 유기적이고 기하학적 형태미를 추구했던 덩어리감 돋보이는 작업들이 시대순으로 선보인다. 초창기 입상에서 이미 그만의 정적이고 단순한 형상미를 추구한 흔적이 엿보이며 철조각으로 구현했던 자유로운 조형정신이 60년대 이후 대상에 집착하지 않고 면, 양감 등 자연물의 조형적 요소와 생명력에 집중한 불각의 미학으로 관심이 옮겨가는 과정을 엿볼 수 있다.


김종영 미술관의 전시는 조각 못지않게 형태의 원형질을 찾으려고 천착했던 방대한 드로잉작업들을 망라한다. 전시제목처럼 인물, 산, 식물, 동네 따위를 그린 드로잉은 그가 자연에 대한 인식론적 성찰을 심화시키고 그 안에 숨은 질서를 찾기 위한 절박한 방편으로 풀이되는데, <세한도>를 비롯해 겸재 정선의 금강산 그림을 본떠 해석한 <만폭동도>, 북한산 풍경, 삼선동 풍경 등 다양한 유형의 작품들이 나온다. 일제시대 졸업여행으로 다녀왔던 금강산 스케치와 그의 70년대 금강산 그림들을 비교 감상할 수 있다. 김종영 컬렉션으로 입소문난 원갤러리는 정물 드로잉만을 모았다. 문기 감도는 감도는 화초의 수묵 드로잉과 이 드로잉을 추상적인 구조물로 변환한 먹 드로잉 등에서 고인의 작가의식을 느낄 수 있다. 3월26일 오후 2시 덕수궁미술관에서는 ‘한국현대조각과 김종영’을 주제로 학술발표회도 열릴 예정이다.

▲ 1973년 드로잉 작 ‘세한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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