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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1.06 19:32 수정 : 2005.01.06 19:32

“정확한 용어로 쓰지않고 유행어로 안이하게 남발”

국내 학계의 파시즘 연구는 걸음마 수준이다. 본격적인 파시즘 연구서적은 〈유럽의 파시즘〉(서울대 출판부·2001년 4월 출간), 〈파시즘〉(이후·2002년 3월 출간) 등 다섯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정치학자들 가운데 이 문제를 ‘전공’으로 삼은 경우도 거의 없다. 정치학을 전공한 박상훈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교수는 “국내 학계에서 파시즘에 대한 진지한 학문연구는 거의 없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진지한 연구 거의 없었다”

한국 사회가 파시즘을 이해하는 방식은 1980년대 초반의 이른바 ‘사회구성체 논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당시 운동권 그룹 가운데 일부가 ‘(반제국주의) 반파쇼 투쟁’을 주창하면서 파시즘이란 말이 통용되기 시작했다. 이와 관련해 민중민주(PD)계열의 이론가들이 한국 사회를 ‘신식민지파쇼체제’로 규정하기도 했다. 남미의 신식민지 이론 및 제3세계 파시즘 이론의 틀을 빌린 것이었다.

박상훈 교수는 “당시 파시즘 논의는 사회과학적 이론에 뿌리를 둔 것이라기보다 군사정권에 반대하는 정치적 레토릭이 강했던 탓에 오랜 생명을 갖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남미 좌파이론에서 ‘수입’한 운동권 용어로 등장했으나 학계의 개념어로 자리잡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한국의 파시즘 담론이 2000년대 들어 급속하게 ‘대중화’된 것은 역설적이다. 파시즘 연구의 탄탄한 기반도 없이 너도나도 파시즘을 말하게 된 데에는 ‘일상의 파시즘’에 대한 일부의 논의가 일정한 구실을 했다. 2000년 5월 〈우리 안의 파시즘〉(삼인) 출간을 필두 삼은 이런 주장은 2002년 학술 계간지를 통해 여러 학자들이 논쟁을 펼치고, 그해 9월 비판사회학대회(한국산업사회학회 주최)에서 공개 논쟁을 벌이는 데까지 발전했다.

“예방보다 독성에 무감각 우려”

당시 논쟁은 “국가폭력에 맞서는 저항운동이 지배계급의 모순을 닮아간 사실을 올바르게 지적하는 이론”(조정환 갈무리 출판 대표)이라는 주장과 “극우적 권력이 여전히 발호하는 상황에서 폭력을 성찰한다는 아름다운 이름 아래, 밖의 폭력보다 우리 안의 폭력이 더 근본적이라고 말하는 것이 오히려 근본주의적 폭력”(김진석 인하대 교수)이라는 비판을 축으로 전개됐다. 로버트 팩스턴의 〈파시즘〉은 이런 논쟁 구도 전체가 ‘허공’을 가리키고 있었음을 뒤늦게나마 확인할 기회를 준다. 파시즘이 아닌 것을 파시즘이라고 규정한 뒤에 시작한 파시즘 논쟁은 결국 “파시즘을 정확한 용어로 쓰지 않고 일종의 유행어로 안이하게 남발하는 것”이고, 이는 “파시즘을 예방하기보다는 오히려 파시즘의 독성에 무감각해질 가능성을 높이는 것”(조효제 성공회대 교수)이기 때문이다.


안수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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