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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1.06 19:34 수정 : 2005.01.06 19:34

독일 뉘른베르크 전당대회에 참석한 히틀러 유겐트 단원들. 나치는 1933년부터 1938년까지 매년 뉘른베르크에서 전당대회를 열었다. 1939년에 이르러 독일의 10~18살 인구의 87%가 히틀러 유겐트에 소속됐다. \



한국 사회에서 파시즘·파시스트 등의 말은 사회과학적 개념어가 아니다. 일종의 ‘정치적 욕설’이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을 향한 증오의 언어였고, 최근에는 저항운동 내부를 향한 비난의 언어다. 넒게는 정치적 반대자를 향한 낙인의 언어다. 로버트 팩스턴의 〈파시즘-열정과 광기의 정치혁명〉(교양인)은 파시즘을 둘러싼 이런 한국적 맥락에 경종을 울린다.

“파시즘 나타날 가능성 1930년대 보다 높다”

팩스턴은 600여 쪽에 걸친 이 저서를 통해 “파시즘이란 개념을 의미의 남용으로부터 구출하고”, “살아 움직이는 파시즘을 보아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설파한다. 그래야 “(파시즘 등장의) 불길한 경고표지를 더 많이 읽어낼 수 있”고, “진짜 파시즘이 출현했을 때 알아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팩스턴은 “파시즘 지도자와 국가, 그리고 파시스트당과 시민사회의 상호작용을 탐구하는 훨씬 더 정교한 파시즘 모형”을 구축한다. 그것은 역사적 현실에 대한 치밀한 천착이다. 독일·이탈리아는 물론 유럽 각국에서 태동한 파시즘의 초기형태와 발전단계를 일일이 짚어가는 과정은 그 자체로 하나의 훌륭한 역사서다. 이를 통해 그는 ‘귀납적 연구’의 본보기를 보여주면서 이론서와 대중서의 특장을 한꺼번에 품었다. 출판사 쪽이 “파시즘 논쟁에 종지부를 찍는 결정적 저작”이라고 상찬한 것도 무리가 아니다.

“살아 움직이는 파시즘 봐야”

그의 파시즘 연구는 크게 세가지의 ‘통념’, 즉 △파시즘을 자본주의 위기의 필연적 결과물로 보는 스탈린주의적 시각 △파시즘을 군사독재나 권위주의 등과 등치시키는 안이함 △파시즘의 지도자나 정당의 내부로 분석의 시선을 좁히는 편협함 등에 대한 비판이다.

“제3세계 등 비유럽권에서 민주주의 실험 실패 늘어…
대부분의 민주국가에서 직간접으로 연관된 급진적 우익운동 퍼져…”


그가 보기에 파시즘의 가장 중요한 전제조건은 “허약하거나 실패한 자유주의의 위기”다. “파시즘이 암실에서 나와 공적인 무대로 쉽게 진출했던 곳은 기존 정부의 기능이 형편없거나 아예 전무했던 곳”이었다. 그러나 파시즘 성공의 결정적 요소는 “파시스트들과 권력을 나눌 준비가 된 보수 진영의 지도자들이 다른 가능성을 거부하고 파시즘이라는 대안을 선택하는 것”이다. 이때 “(파시스트) 당과 기업, 군, 고위 공직자들의 (파시즘) 연합은 경제적 이익·권력·특권, 특히 (좌파에 대한) 두려움에 의해 한데 뭉친”다.

그래서 팩스턴은 “파시즘 정권은 파시즘 세력과 보수적 질서라는 두가지의 완전히 다른 물질이 자유주의와 좌파에 대한 적대감, 적으로 규정한 대상을 파괴하기 위해서는 어떤 일도 서슴지 않겠다는 의지 등을 매개삼아 결합한 합성물”이라고 지적한다.

〈파시즘…〉의 탁월한 성취는 팩스턴이 과거가 아닌 ‘오늘’과 ‘미래’에 대해 발언한다는 점에 있다. 그는 새로운 파시즘이 등장할 가능성을 점검하는 데 이 책의 상당 부분을 할애했다. 그가 보기에 “대부분의 민주국가에서 파시즘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급진적 우익 운동이 광범위하게 퍼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문제는 이런 ‘파시즘의 1단계’가 정치제도에 뿌리를 내리는 2단계로 발전할 가능성이다. 팩스턴은 “제3세계 등 비유럽권에서 파시즘이 나타날 가능성은 1930년대의 유럽보다 더 높다”고 경고한다. 이 지역에서 “민주주의와 대의정치라는 실험이 실패한 사례가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책장을 넘기면서 최근 한국의 정치·사회 상황을 ‘오버랩’시키게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가 말하는 경고표지는 이런 것이다. “위협을 느낀 보수세력이 법의 지배를 포기할 태세를 갖추고 더 강한 동맹세력을 찾아 헤매며, 보수파들이 파시스트들의 정치적 테크닉과 결집된 열정에 손을 내밀며 그 추종세력을 흡수하고자 할 때, 파시스트들은 벌써 권력에 아주 가깝게 접근한 것이다.”

“좌파에 대한 두려움으로 뭉쳐”

번역판의 머리말을 쓴 조효제 교수(성공회대)는 “이 책을 읽고 나면 ‘일상적 파시즘’이나 ‘대중독재’ 등의 논의가 왜 파시즘의 이해를 명료하게 해주기보다는 오히려 흐리게 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진정으로 ‘우리 안의 파시즘’이 어디에 있는지 찾아내려면 팩스턴에게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 로버트 팩스턴은

“로버트 팩스턴(72)은 평범한 역사학자가 아니다.” 〈이코노미스트〉지의 평가다. 특히 한국에서 그는 ‘과거사 청산’과 관련해 즐겨 인용되는 학자다. 1972년 〈비시 프랑스〉라는 저서를 통해 프랑스 비시 정권이 나치즘에 자발적으로 협력했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이 저서로 팩스턴은 전세계의 주목을 받는 파시즘 연구의 최고 권위자로 자리잡았다. 서구 유럽을 풍미하고 있는 ‘파시즘의 미시구조 분석’의 지평도 그와 함께 열렸다.

프랑스 비시정권 해부
관념아닌 현실 파시즘 탐구

이런 노력이 한국에서는 ‘과거사 청산의 폭력성’을 증명하는 근거로 인용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진면목은 따로 있다. 40여년에 걸친 파시즘 연구를 집대성한 〈파시즘〉에서 직접 말하고 있듯이, “살아 움직이는 파시즘을 보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관념이 아닌 구체적 현실에서 극우적 운동의 싹부터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자세가 그것이다.

옥스퍼드·하버드 대학에서 공부했고 현재 미국 컬럼비아대학 명예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에 〈비시 정권의 열병식과 정치〉 〈20세기 유럽〉 등이 있다.

안수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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