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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2.28 18:07 수정 : 2005.02.28 18:07

“일제에 짓밟힌 두레정신 회복을”

“우리네 속담에 ‘동네마다 후레자식이 하나’라는 게 있어요. 그 말은 동네마다 이런저런 특성을 지닌 인물들이 하나씩은 있다는 단순한 사실을 가리키는 것이기도 하지만, 비록 후레자식이라도 동네의 구색으로서 제 자리가 있었다는 뜻이 되기도 합니다. 후레자식과 함께 동네마다 한 사람씩은 있던 게 몸이 불편한 장애우들이었는데, 그들 역시 동네의 일부로서 같이 먹고 살았던 거죠. 그게 바로 ‘두레 공동체’ 정신입니다.”

원로 소설가 송기숙(70)씨가 오랜만에 산문집 〈마을, 그 아름다운 공화국〉(화남)을 펴냈다. 1965년 〈현대문학〉을 통해 평론가로 먼저 등단한 그에게는 문단 경력 40년을 기념하는 의미도 지니는 책이다. 동학농민전쟁에서 식민치하 소작쟁의, 5·18 광주항쟁에 이르는 근현대사를 천착해 온 작가는 이번 산문집에서 사라져 가는 마을 공동체의 의미, 동학농민전쟁의 좌절 이후 증산교와 보천교 등 ‘민족종교’로 옮겨 간 민중의 변혁 열망, 섬과 섬사람들의 진취적 기상, ‘붉은악마’ 응원에 투영된 국가주의의 그림자 등 다채로우면서도 묵직한 주제들을 풀어놓고 있다. 먼저 작고한 소설가 이문구에게서 ‘인간 천연기념물’이라는 별호를 얻었던 작가는 산문집 뒤편에 고은, 박현채, 황석영씨 등 문단 안팎의 지인들에 대한 인물평도 실었다.

“일제가 조선을 침략한 뒤 가장 역점을 두었던 게 마을마다 있던 노동공동체 ‘두레’를 무력화시키는 것이었습니다. 두레 정신이 반일·민족주의로 이어지는 걸 경계했던 거죠. 두레를 결정적으로 파괴한 게 박정희 정권 당시의 새마을운동이었죠. 이즈음 농촌을 다녀 보면 ‘내 것 없으면 죽는 세상이여’라는 노인들의 탄식을 듣게 됩니다. 범상하게 들어 넘길 수도 있지만, 이전의 따뜻한 공동사회가 살벌한 이익사회로 바뀌는 세태에 대한 환멸이 담긴 무거운 말이죠.”

산문집의 대강을 이루는 농어촌의 역사와 현실은 송기숙씨가 대하소설 〈녹두장군〉과 장편 〈암태도〉 〈오월의 미소〉 등을 쓰기 위해 발품을 팔아 다녔던 취재 현장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번 산문집의 글들은 어떤 의미에서 그의 소설의 밑그림을 이루는 것들이라고 할 수 있다.

“평론으로 등단하고 소설로 ‘전공’을 바꾸었습니다만, 소설 쓰기를 주업으로 살아 온 게 새삼스럽게 잘했다고 생각해요. 불행했던 우리 역사와 현실을 소설로 쓰면서 그만큼 고민하고 탄식했고, 그 연장선에서 더러는 현실에 뛰어들었고, 지금도 그런 시각으로 현실을 보고 있으니까요.”

작가는 요즘 대통령 직속 ‘광주문화중심도시조성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총리급의 고위직이다. “적성에 맞지도 않는 벼슬을 하는 게 징그럽다”는 그는 “내가 죽으면 망월동에 묻히게 될 것 같은데, 자식들에게는 화장시켜 달라고 당부했다”고 말했다.

글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사진 김종수 기자 jongs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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