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5.02.28 20:30 수정 : 2005.02.28 20:30

한국 현대미술의 산증인 월전 장우성 화백이 28일 오후 3시40분 종로구 팔판동 자택에서 노환으로 타계했다.

향년93세. 한국화단을 대표하는 한국화가인 장 화백은 더위가 기승을 부리면서 지난 해 여름부터 병석에 누워 혼자서는 거동을 못할 정도로 병마에 시달렸다.

재작년말 70년 화업을 정리하는 회고록 집필과 덕수궁미술관에서 열린 '한.중대가'전 준비로 무리를 한 후유증으로 노환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졌다.

서울 팔판동에 위치한 월전미술관을 경기도 이천시로 이전하는 문제에 친일작가라는 논란까지불거져 병세가 악화했다.

장 화백은 평생을 한국화의 새로운 형식과 방향을 모색하며 우리 화단을 이끌었다.

그는 동양고유의 정신과 격조를 계승하며 현대적 조형기법을 조화시킨 '신문인화'의 회화세계를 구축, 근대적 화풍을 이룩해 해방이후 새로운 미술의 형성과 발전에 큰 기여를 하였다.

특히 그는 시서화를 온전히 갖추어 전통문인화의 높고 깊은 세계를 내적, 외적으로 일치시킨 경지에 이른 마지막 문인화가로 평가받는다, 18세에 이당 김은호 문하로 한국화에 입문한 이후 1930년대 초부터 '조선미술전람회(선전)'와 '서화협회전(협전)'에 연속 입선하면서 한국 화단에 입지를 굳혔다.

그는 해방과 더불어 일본 화풍의 극복이라는 과제를 놓고 진취적인 한국화의 방향 설정에 주체적 역할을 하기도 했다.


장 화백은 또한 46년 서울대 미술학부 교수를 시작으로 71년부터 5년 간 홍익대교수로서 재직하며 제자육성에도 힘써 현재 한국화단을 이끄는 많은 중진작가들을제자로 두었다.

만년에는 월전미술문화재단을 설립해 월전미술관 '한벽원'을 설립하고 월전미술상을 제정하는 등 평생의 업적을 공익화하였다.

또 동방예술연구회를 설립, 원로 석학들의 강좌를 통해 소멸되어 가는 동양의철학과 사상, 미술정신을 재조명하고 이 강좌의 성과를 매년 문집 '한벽논총'으로발간하기도 햇다.

98년에 미수전, 2001년에 구순전을 열었을 정도로 노익장을 과시했던 고인은 생전에 많은 개인전과 초청전시회를 통해 한국화의 위상을 국내외에 알렸다, 주요 작품으로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 영정'(현충사), '백두산 천지도'(국회의사당), '유관순 열사 영정'(유관순기념관), '한국의 성모와 순교복자' 성화 3부작(바티칸 교황청박물관), '노묘'(월전미술관), '청춘일기'(호암미술관), '새안'(대영박물관), '홍매'(프랑스 문화부), '회고'(독일 쾰른 시립미술관), '심청도'(일본 후지미술관), '청년도'(서울대학교), '군록도'(고려대학교), '금강산도'(서강대학교)를 비롯해 인물화 산수화, 영모도 등 다수가 있다.

예술원 회원으로 1971년 예술원상과 72년 5.16민족상을 수상했으며 76년에는 정부로부터 문화훈장 은관장을, 2001년에는 금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장학구 월전미술문화재단 이사장 등 4남 3녀가 있다.

. 장례식장은 강남구 일원동 삼성의료원 영안실 15호실. 발인은 3월2일 오전 9시혜화동 성당이며 장지는 경기도 양평군 지제면 망미리 산 1-1 선영. ☎02-3410-2114(삼성의료원). 02-732-3777(월전미술관) (서울/연합뉴스)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