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호 사사 ‘왜색’시비도
이순신등 표준 영정 유명
28일 타계한 월전 장우성은 해방 이후 한국화 화단의 뼈대를 세웠으며 서울대 미대 인맥의 정점에 있었던 미술계 최고 실력자였다. 해방 뒤 일본화풍 정화를 내세우며 현대 문인화 운동을 일으킨 장본인이자 이종상씨 등 중견 한국화가들의 대부분을 제자삼았을 정도로 월전의 카리스마는 막강한 것이었다. 하지만 시인 서정주나 함께 수학한 동료화가 김기창처럼 작가적 성취와는 별개로 친일경력 시비는 그를 평생 따라다닌 족쇄였다. 이당 김은호를 사사하면서 일본풍 채색화로 선전 등 일제 관전에 다수 입상했고, 해방 뒤 문인화풍으로 돌연 화풍을 바꾼 이력 때문이다. 제자들은 큰 어른으로 존경했지만 재야 미술계는 그를 친일경력을 덮은 처세주의자로 비판해왔다. 2003년 월전이 자신이 그린 유관순 열사 표준영정의 제작을 다시 맡게되자 친일경력 시비가 재연됐고,결국 그가 타계한 날 제작 백지화 방침이 전해진 것은 기구한 우연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논란과 별개로 고인이 해방 뒤 수묵담채의 문인화와 현실 세태를 조화시킨 새 화풍을 선보이면서 현대 한국화의 새 방향을 제시한 것도 사실이다. 인물과 자연을 서구적 관점에서 사실적으로 표현하면서도 선의 리듬을 부각시킨 현대 수묵화를 모색한 그의 화력은 일본화풍의 멍에를 벗어나려는 몸부림이자 고답적 문인화풍에 대한 혁신의 노력으로도 평가된다. 80년대 이후엔 공해, 분단 등의 현실 문제를 다루면서 문인화의 현대적 변용에 힘쓰기도 했다. 또한 그는 46~61년 서울대 교수, 1971~74 년 홍대교수를 역임하면서 한국화단의 중견작가들을 다수 길러냈으며 국전 심사위원도 맡아 화단 실력자로서의 위치를 더욱 굳건히 닦았다. 말년 월전미술문화재단과 월전미술관 ‘한벽원’을 세웠으며 월전미술상 제정과 강좌교육기관인 동방예술연구회 활동 등을 통해 후학양성의 의지를 놓지 않았다. 이순신,정약용, 김유신, 유관순, 윤봉길 등 국가표준영정을 많이 그린 화가이자 옛 500원권 지폐의 충무공 영정을 그린 이로도 기억되는 그는 말년까지 계속된 친일 논란에 충격을 받아 병세가 악화했다는 후문이다. 대표작으로 <충무공 이순신 영정>(현), <백두산 천지도>(국회의사당), <한국의 성모와 순교복자> 성화 3부작(바티칸 교황청박물관) 등이 있고, 회고록 <화단풍상칠십년>(2003년) 등을 남겼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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