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경주 선도산의 성모당 전경. 경주박물관대학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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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화주의가 부른 ‘건국신화의 재구성’ 알에서 나와 신라 세운 혁거세
신성성과 6촌 연합에 밀려
지워진 어머니 서술성모 신라의 고도 경주 서쪽에 선도산(仙桃山)이 있다. 높이가 380m쯤 되는 높지 않은 산이지만 오악(五嶽)을 모시는 신라의 나라 제사에서 서악(西嶽)의 지위를 당당히 차지했던 산이다. 이 산은 마애삼존불로 이름이 있지만 사소(娑蘇)라는 별명을 지닌 성모(聖母)가 거주하는 산으로도 유명하다. 그런데 이 ‘성스러운 어머니’는 선도산을 두른 안개만큼이나 베일에 싸여 있다. 물론 <삼국유사>는 선도성모를 요모조모로 해명하고 있다. 하지만 일연이 <감통(感通)>편에 이 ‘선도산 성모가 불교 행사를 좋아했다(仙桃聖母隨喜佛事)’는 제목으로 실어 놓은 글 자체가 우리를 오리무중으로 인도한다. 어떤 실마리를 잡아야 이 미궁(迷宮)을 빠져나가 성모의 진상을 볼 수 있을까? 한데 첫 실마리는 정작 엉뚱한 곳에 삐죽 나와 있다. <삼국유사>에서 선도성모가 등장하는 첫 장면은 불사를 좋아했다는 이야기와는 달리 불교와 무관하기 때문이다. 선도성모는 먼저 박혁거세 신화에 슬쩍 끼어든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혁거세 탄생담은 신라 여섯 마을 조상들이 임금을 세우는 회의를 하던 중 하늘에서 백마가 운반해온 큰 알에서 혁거세가 나왔다는 내용으로 이뤄져 있다. 그런데 일연은 이 이야기 옆에 작은 글씨로 주석을 단다. 어떤 사람은 서술성모(西述聖母)가 혁거세를 낳았다고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서술성모는 선도성모와 같은 여신이다. 선도산의 다른 이름이 서술산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혁거세는 서술성모가 낳았는가, 하늘에서 내려왔는가? 모종의 충돌이 발생한다. 선도성모를 ‘뵙기’ 위해 넘어야할 첫 번째 고개다. 선도산 첫째 고개는 난생(卵生) 문제를 해결해야 넘을 수 있다. 시조모가 될 여성이 신이한 존재와 접촉한 후 알을 낳아 버렸는데 버려진 알 속 아이가 시조나 왕이 되었다는 신화는 적지 않다. 유화가 낳은 고구려의 주몽이 그런 인물이고, 적녀국왕의 딸이 임신한 지 7년 만에 낳은 석탈해도 알로 태어났기에 버려진다. 이런 ‘알로 태어난 아이’라는 시각에서 보면 혁거세의 탄생은 뭔가 미심쩍다. 어머니도 없이 불현듯 출현한 알 곁에서 흰말이 울고 있다? ‘6촌-알-흰말-하늘’, 다소 낯선 결합이다.
신라건국신화에는 임금추대회의를 하는 6촌 대표들과 신이한 알의 출현을 곧바로 연결시키려는 의도가 보인다. 6촌의 연합을 강조하려는 뜻이다. 이런 의도라면 특정 집단의 시조모가 6촌 연맹체의 첫 임금을 낳았다는 이야기는 신라건국신화의 이념에 어울리지 않는다. 바로 이 대목에서 알을 낳은 어머니, 곧 서술성모가 지워졌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건국신화에서 배제됐다고 해서 전승되던 시조모에 대한 숭배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서술성모는 본래부터 혁거세 집단, 다시 말해 신라 사량부에서 시조모로 모셔지고 있었고, 아마도 그 사당이 서술산에 세워지면서 여산신의 전통에 따라 서술산의 산신으로도 추앙됐을 것으로 생각한다. 1970년대에 복원된 것이기는 하지만 지금도 서술산에는 성모사(聖母祠)가 서 있지 않은가. 대가야의 왕비 정견모주(正見母主)가 죽은 후 가야산의 산신으로 모셔지고, 박제상의 아내가 박제상을 기다리다 죽어 치술령의 산신이 된 사례도 이런 추정의 유력한 방증이 된다. 그리고 이런 여산신 모시기에는 마고할미나 노고할미와 같은 창조여신이 남신에게 창조신의 자리를 내어주고 산신으로 좌정했던 신화적 전통이 범례로 작용했을 법하다. 고구려의 유화처럼 나라 제사는 못 받아먹어도 선도산 산신으로 잘 먹고 잘 살던 성모는 신라 진평왕 무렵 돌연 지혜라는 비구니의 꿈에 나타난다. 그때 지혜는 안흥사 불당을 수리하다가 돈이 모자라 일을 접고 있었다. “나는 선도산 신모다. 네가 불당을 수리하려는 것이 기뻐 금 열 근을 시주하려고 한다. 내 자리 밑에서 금을 꺼내 써라.” 신모의 현몽에 깜짝 놀라 잠에서 깨어난 지혜는 무리를 데리고 성모를 모신 신사(神祠)로 간다. 과연 성모의 상 밑에 황금이 있어 뜻한 바를 이루었다는 이야기다. 전통적 무속신앙의 여신인 선도산 성모가 제 제물로 이웃 절에 시주를 하다니? 일연의 분식(粉飾)대로 정말 성모는 불사를 좋아했을까? 넘어야 할 선도산의 둘째 고개다. 둘째 고개를 넘으려면 ‘점찰법회(占察法會)’라는 수수께끼를 풀어야 한다. 성모는 지혜 비구니에게 불당을 수리한 후에 봄·가을로 사람을 모아 점찰법회를 베풀라는 주문을 한다. 그런데 지금도 그렇듯이 점치는 일은 본래 무당의 주업에 속한다. 점찰법회란 무속 행위를 불교, 특히 밀교가 받아들여 중생을 교화하기 위한 방편으로 삼은 것이다. 업보를 적은 대나무쪽을 뽑아 운명을 점쳐 중생을 참회에 이르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선도성모의 점찰법회에 대한 요구가 뜻하는 바는 분명하다. 무속을 무시하지 말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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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사를 즐기는 산신으로
끝내 중국의 공주로 둔갑하니
우리 신화 수난사 ‘압축판’ 이라 한데 이 이야기는 일연이 처음으로 한 것이 아니다. 이미 김부식이 <삼국사기>에서 언급한 일이 있다. 김부식이 송나라 사신으로 가서 우신관(佑神館)이란 곳에 참배를 했는데 그곳에 있는 여선상(女仙像)을 두고 왕보라는 사람이 중국 제실(帝室)의 딸이 바다 건너 진한에 이르러 아들을 낳아 해동의 시조가 되었고, 그 후 지상신선이 되어 선도산에 있는데 이게 바로 그 신상이라고 소개했다는 것이다. 느닷없이 웬 중국 왕실의 딸인가? 김부식의 이런 언급에는 뭔가 수상쩍은 혐의가 풍긴다. 이 기록에 대해 일찍이 15세기 서거정은 <필원잡기>에서 ‘유화 이야기를 오인한 것’이라고 오해한 바 있고, 20세기 초 대종교 교주 김교헌은 <신단실기>에서 중국이 아니라 부여에서 왔다는 다분히 민족주의적 해석을 내놓은 바 있다. 최남선도 중국은 ‘지나(支那)’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바다 건너 서쪽 어딘가를 말한다면서 중국을 부정하려고 했다. 그렇지만 지금 우리에게 풀어야할 수수께끼는 왜 중국 제실이라는 전승이 끼어들어 왔느냐는 것이다. 있는 기록을 실속도 없이 틀렸다고 애써 부정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신라 건국신화에서 혁거세의 신성성을 보장해주는 존재는 하늘이다. 알에서 태어난 것도 범상치 않은 일이지만 그 알이 하늘에서 내려온 것이라는 데 더 신성스러움이 있다. 건국신화에서 천신은 왕의 권력을 정당화해주는 강력한 배후다. 그런데 김부식이 소개한 전승에서는 천신의 자리에 중국 제실이 들어가 있다. 다시 말하면 중국을 하늘보다 강력한 힘의 배후로 새롭게 끌어들인 것이다. 신라 건국신화의 재구성이라고 할 만하다. 김부식이 만난 송나라 학사 왕보의 입장에서 보면 이는 중화주의의 표현이다. 그리고 비록 ‘어느 왕인지는 모르겠다’는 유보적인 태도를 취했지만 그런 주장을 받아들여 국내에 전파한 김부식의 처지에서 보면 내심 뿌듯했을 것이다. 중국의 황실과 신라의 왕실이 혈연으로 이어져 있다는 사실이. 이는 중화주의를 추인하는 모화주의, 나아가 소중화주의가 아닌가. 일연이 김부식의 기록을 받아들이면서 학거세와 알영이 바로 사소가 낳은 동국의 첫 임금이라고 추단한 것을 보면 김부식 이후 중국을 신성성의 원천으로 삼아 건국신화를 재구성하려는 움직임이 고려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김부식과 비슷한 시기에 김관의가 편집해서 의종에게 바친 고려건국신화를 보면 왕건의 할아버지인 작제건이 당나라 숙종의 아들로 설정되어 있다. 당나라 숙종은 신라에 온 일이 없지만 고려건국신화는 고려 왕가와 중국 왕실 사이에 혈통관계가 있다는 ‘신화’를 만들려고 했던 것이다. 이는 기자조선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중화주의의 발원지로 알려진 한나라 때 만들어진 기자동래설이 고려시대에는 역사적 실재로 받아들여졌으니 말이다. 이처럼 김부식 이후 고려 지배층에 퍼져나갔던 모화주의가 드디어는 선도성모의 본적마저 지워버렸던 것이다. 한 혈족집단의 시조모였던 서술성모, 그러나 신라건국신화에서는 배제된 서술성모, 불교가 진흥된 진흥왕 시대에는 불사를 무진장 좋아하는 여산신으로 화장을 고친 선도성모, 끝내는 소중화 의식에 따라 신라건국신화를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중화의 매개자로 성형한 선도성모. 선도성모의 얼굴을 곰곰이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우리 신화의 역사가 시나브로 선연해지는 것도 같다. 조현설 서울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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