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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3.03 18:26 수정 : 2005.03.03 18:26

박명림 교수 동아시아 평화공동체 실천 대안 제시

서울에 동아시아 공동안보기구인 동아시아 조약기구(EATO) 사무소가 설치된다. 학자들이 서울에 모여 동아시아 공동역사교과서 집필에 열을 올린다. 각 나라 인권문제 해결을 고민하는 동아시아 인권재판소도 서울에 세워진다. 평화와 인권, 화해와 공존을 고민하는 동아시아인들이 서울로 모여든다.

아직은 ‘가상의 시나리오’다. “서울을 동아시아의 제네바로 만들자”는 구상이 꿈꾸는 서울 전략이다. 평화허브, 인권허브, 화해허브의 공간으로 서울을 재구성하자는 박명림 연세대 교수(국제대학원)의 제안이다. 박 교수는 3일 이런 내용을 뼈대로 하는 ‘한반도 평화구축과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한겨레>에 보내왔다. 지난달 20일 일본 평화학회 등의 주최로 후쿠오카에서 열린 학술 심포지엄 발표문을 다시 다듬고 덧댄 논문이다. 이 논문은 현지 일본 지식인들로부터도 상당한 호응을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추상적’ 형태로만 논의되던 동아시아 평화공동체 구상을 정책적 제안 형태로까지 구체화했기 때문이다.

‘지역적 냉존’ 탓 다자기구 요원
공동발전→경제공동체→안보기구
‘가교국가 3단계 전략’ 구체화

그 구상의 핵심은 ‘이중 평화전략’이다. 하나는 한반도의 평화, 또 다른 하나는 동아시아의 평화다. 박 교수는 “이제 양자를 분리해 접근해서는 두가지 모두 성취하기 어렵다”며 “두가지 평화전략을 동시에 해결하려는 문제의식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1990년대 이후 꾸준히 제기됐던 ‘동아시아 공동체론’이 실체적 진전을 이루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성공 사례로 꼽히는 유럽연합이 일찌감치 해소했던 뇌관들이 동아시아에선 아직 제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계적 냉전은 해체됐지만 북핵문제를 비롯한 ‘지역적 냉전’이 엄존한다. 공통의 안보를 논의하는 다자안보기구는 없고 오직 미·일, 한·미, 북·중 동맹 등 ‘양자간 동맹’만 존재한다. 각 나라의 인권침해 사태가 외교문제로 비화하지만, 공동인권협약 및 인권기구도 없다.

박 교수는 바로 이 문제에 주목해 3단계 전략을 제안한다. 우선 한반도를 아우르는 ‘공동번영 5개년 계획’을 통해 ‘발전을 통한 평화’를 달성하는 것이다. 북핵·인권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는 틀로서 남북의 공동경제발전을 추구하자는 정신이 여기에 담겨있다. 북핵위기 극복은 동북아 수준의 ‘에너지 및 경제공동체 건설’의 계기로 활용할 수 있고, 나아가 국제수준에서 동아시아 내의 다자안보기구를 출범시키는 것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한국만이 북한,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과 평화이익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이중의 평화전략을 위한 3단계 접근의 중추는 한국일 수밖에 없다. 박 교수는 이를 ‘가교국가 전략’이라고 부른다. 그 핵심공간은 서울이다. “홍콩, 싱가포르처럼 물류중심, 비즈니스 중심 공간이 아니라, 평화·민주주의·인권·화해의 발신지로서 허브도시”를 추구하자는 것이다. 한국의 주도로 동아시아 국제기구들을 만들고, 이를 서울에 유치하는 것은 동아시아 공동체를 추구하는 이론과 정책이 맞들어지는 과정이다.


박 교수는 이런 내용을 뼈대로 하는 ‘동아시아 영구평화구상’을 오는 5월께 단행본으로 출간할 예정이다. 그의 제안이 동아시아 공동체론의 실제적 진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을 지 주목된다.안수찬 기자 ahn@hani.co.kr


‘역사 청산 없인 공동체형성 불가’

‘한·중·일 근대사인식 비교’ 주제
고구려연구재단 4일 심포지엄

<창작과 비평> 봄 호에서 와다 하루끼 도쿄대 명예교수는 “전쟁으로 분열되고 그 기억에 시달려온 역사를 청산하지 않으면 동아시아 지역협력과 공동체 형성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때마침 고구려연구재단은 4일 오전 10시부터 서울 언론회관에서 ‘한·중·일의 근대사 인식 비교’를 주제로 국제 학술심포지엄을 연다. 특히 최근 학계·교육계 등의 관심을 모으고 있는 <한·중·일이 함께 쓰는 미래를 여는 역사>의 집필위원들이 대거 참여했다.

세 나라의 역사교과서를 분석한 왕현종 연세대 교수(역사문화학과)는 “자국사 내부의 서술에서는 대체로 비슷한 논조를 갖추고 있지만, 한중일간의 상호인식과 관계를 설명하는 데 이르면 민족주의적, 애국주의적 관점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편향이 드러난다”고 밝혔다.

신주백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앞으로 세 나라가 지향하는 역사인식의 방향이 획일적으로 (역사교과서에) 서술되기보다는 국가 내에서도 편차를 드러내며 더욱 다양화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신 연구원은 “따라서 민간차원의 활발한 (역사)교류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또 일본역사교과서만을 중점적으로 분석하는 자리도 마련된다. 한국역사연구회·역사학회·역사교육연구회는 오는 5일 오전 10시부터 서울역사박물관 강당에서 ‘일본역사교과서에 대한 한일 양국의 시각과 공동대응’을 주제로 공동학술대회를 연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학계 공감

‘창비’ 봄호 평화의 이중전략 다뤄
이일영교수 ‘개방형 민족경제’ 강조

‘평화의 이중전략’ ‘동아시아 안보기구’ ‘한반도 공동번영 5개년 계획’ 등의 제안은 학계 내에서도 일정한 공감대를 형성해가고 있다.

<창작과 비평> 봄 호도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뤘다. 이일영 한신대 교수(국제학부)는 “(한반도 평화를 위한) 근본적 대안은 분단경제를 뛰어넘는 새로운 경제체제의 설계”라며 “동북아 경제협력을 주도하기 위해서는 한반도 경제의 통합과정이 반드시 동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이 교수는 ‘한반도 경제체제’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그는 “새로운 한반도 경제체제가 목표로 하는 것은 분단체제를 해체·재구성하고 동북아에서의 신지역주의를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형성되는 ‘개방형 민족경제’”라고 정의했다.

한반도 경제체제를 지탱하는 환경은 다자 안보기구다. 이남주 성공회대 교수(중국학)는 “다자간 안보협력은 동아시아가 대국들의 군사적 경쟁무대로 전락하는 것을 방지할 거의 유일한 선택”이라고 단언한다. 이 교수는 “최근 동아시아 협력론은 많은 실천적·정책적 의제를 생산하고 있다”며 “국민국가의 안보정책에 대한 절대적 권리는 국가 자체만의 안보가 아니라 개인적 인권의 보장·증진과 조화를 이루는 상대적 권리로 전화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다자 안보기구의 틀을 통해 공동인권협약의 문제의식까지 품자는 이야기다.

<창작과 비평>은 이번 호 머리말에서 “2005년이 한국사회 내부의 평화와 동아시아 국가간 평화를 정착시키는 ‘이중 프로젝트’의 원년으로 기억되길 바란다”며 이를 올해 연중기획 테마로 삼겠다고 선언했다. 실천적·정책적 대안을 지향하는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이 한국 학계에서 무르익어 가는 반가운 징후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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