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3.07 18:44
수정 : 2005.03.07 18:44
김종규 삼성출판박물관장, 구한말 시화첩 공개
‘병아리 십여 마리를 얻어 길렀더니/ 때로 이유 없이 다투는구나/ 몇 번 홰치는 소리를 내다가 멈춰 서서/ 면면히 서로 애틋하게 바라보다 문득 그치더라’
1884년 갑신정변을 일으킨 주역인 개화사상가 고균 김옥균(1851~1894)이 일본 유배 시절 조국의 암울한 상황을 걱정하며 쓴 것으로 보이는 한시가 최초로 발굴되었다.
김종규 삼성출판박물관 관장(66·한국박물관협회 회장)은 7일 ‘계(鷄: 닭)’란 제목이 붙은 김옥균의 한시를 실은 20쪽짜리 구한말 시화첩을 공개했다. 여기 실린 김옥균의 한시는 칠언절구 형식으로 그와 절친했던 개화당 출신의 지인 유길준이 행서 글씨로 옮겨 쓴 것이다. 시의 내용은 당시 외국 세력의 침탈 앞에서도 내부 정쟁에만 치중했던 조국의 현실을 은유한 것으로 풀이된다. 유길준은 친필시 말미에 ‘옛 친구 김옥균이 오가사와라 섬(김옥균이 갑신정변 실패로 일본에 망명한 뒤 유배되었던 곳)에 있을 때 지은 양계시(養鷄詩: 닭을 기르면서 쓴 시)를 적는다’고 덧붙이고 있다.
시화첩에는 또 ‘닭 계(鷄)’자를 전서, 예서, 행서체로 쓴 유길준, 박영효, 김응원, 유세남, ‘녹문도인’이란 필명의 일본인 등 5명의 필적이 쓰여졌으며, 닭, 병아리들을 그린 일본 화가들의 채색그림 5점도 실려있다. 시화첩은 김 관장이 30여년 전 수집한 것으로 닭의 해 관련 문헌들을 뒤지다 발견했다고 한다. 고서 연구자 김영복씨는 “글씨 앞에 붙은 간지로 보아 1900~07년 조선·일본 지인들이 고인을 추모하며 닭을 주제로 함께 만든 추억록 성격으로 보인다”며 “그의 한시가 별로 전하지 않는 만큼 유배 시절의 심중을 짐작할 수 있는 소중한 자료”라고 말했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