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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3.10 18:46 수정 : 2005.03.10 18:46

손이 없다고 밥 먹을 권리마저 없는가

책 제목은 <섹스 자원봉사>(아롬미디어·8500원)다. 제목만으로는 내용을 짐작하기가 부담스럽지만 부제를 보면 주제가 드러난다. ‘억눌린 장애인의 성’. 일본인이 쓴 이 책은 장애인의 성적 욕구 해결을 돕는 자원봉사(제도)를 제안하고 있다.

주장의 요지를 이해하는 것과 이를 수용하는 것은 조금 다른 이야기다. 장애인에게 섹스 자원봉사를 한다는 것은 한국 사람들에겐 ‘상상 밖’의 일이다. 그런 일이 실제로 가능이나 하단 말인가.

그 물음을 비웃는 듯, 책의 첫 장부터 충격적이다. 한 남성 자원봉사자가 신체장애 1급의 노인을 만나 인터뷰한다. 69살의 노인은 뇌성마비를 앓아 태어날때부터 장애를 짊어졌다. 그가 자신의 성에 대해 ‘생생한 고백’을 털어놓는다. 이어 자원봉사자가 노인을 ‘돕는다’. 노인이 말한다. “비록 손발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지만… 성은 삶의 근원, 그만둘 수 없어요.”

담론밖 ‘낯선’ 주제에 대해
어느 일본인 자원봉사 제안
흥미롭거나 불편하게 들리지만
장애인 그들에게 성욕은 있다

곧이어 ‘성’을 말하는 장애인들이 속속 등장한다. 이를 접하는 일은 대단히 흥미롭거나 지극히 불편하다. 대립적인 이 두 정서, 흥미와 불편함은 오직 한가지 이유에서 비롯된다. “한국에서 이 문제가 사회적 의제로 제기되거나 공개적인 여론의 주제가 된 적은 한번도 없어요.” 장애인온라인신문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칼럼니스트 조항주씨의 말이다.

이 책은 ‘낯선’ 주제로 한국 사회의 ‘경계’를 끝까지 밀고 나간다. 일본에는 장애인들이 사랑의 짝을 찾는 공개 인터넷 사이트들이 있다. 여기에는 ‘자원봉사자’를 찾는 사람과 여기에 응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희안한 사람들의 이상한 행동이 아니다. 일본에서는 이 분야를 전문화한 성매매 업소가 있다. 지은이가 인터뷰에 한 바에 따르면, 업소 종사자들은 남다른 의미와 보람까지 느끼고 있다.


이 대목에서 다시 한번 독자들은 윤리적·사회적 물음에 부딪힌다. 장애인의 성욕해소를 돕는 일과 성매매로 인한 여성의 소외문제가 충돌하기 때문이다. 성적 소수자인 장애인을 위해 성매매를 허용하는 일은 여성의 성 상품화로 이어진다.

글쓴이는 정교한 결론을 내놓지 않는다. 장애인의 성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촉구하고 이에 대한 세상의 은밀하고도 선정적인 관심을 이성적 판단으로 바꾸기 위해 그 세계를 ‘있는 그대로’ 적어 내려갈 뿐이다.

그러나 은연중에 드러나는 해답은 ‘자원봉사’다. 장애인의 소외를 마음깊이 이해하는 사람들이 장애인의 손과 발이 되는 것, 그럴 준비가 돼있는 사람들을 위해 사회와 정부가 제도를 마련해주는 것이 그 뼈대다.

문제는 따로 있다. 한국 사회는 이런 제안을 수용할 채비가 갖춰져 있지 않다. ‘장애인 섹스자원봉사’는 여러 면에서 윤리적·철학적·사회적 논란을 부추긴다. 서구 유럽에선 대단히 정책적인 문제지만, 한국은 윤리적·학술적 토론부터 거쳐야할 상황이다. ‘성적 소수자’ 문제가 진보담론의 지평을 넓혀가는 한국 사회에서 장애인의 성은 아직 담론 밖의 일이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한국은 아직 ‘상상 밖’…소수에 의한 목소리만

지난해 12월 다큐멘터리 영화 <핑크 팰리스>(감독 서동일)가 발표됐다. 장애인의 성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첫번째 한국 영화였다. 지난해 10월 서울 갈월종합사회복지관에서는 ‘장애인 성 향유를 위한 성 아카데미’가 열렸다. 장애인들이 성을 ‘마음껏 누리고 향유하도록 돕는’ 강좌였다. 이보다 한달 앞선 9월에는 지체장애인인 사진작가 박지주씨가 전신마비 여성장애인 이선희씨를 모델로 한 예술누드사진을 찍어 인터넷에 올렸다.

이들이 세상을 향해 말하려 했던 내용은 간단하다. ‘무성(無性)적 존재’로 치부됐던 장애인에게도 사랑과 연애, 성에 대한 욕구가 있음을 알리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이들에게 ‘선정적’ 눈길을 주었다가 ‘냉소적’으로 돌아섰다.

정신지체인의 성 문제를 연구해온 전용호 대구미래대 교수(사회복지학과)는 “많은 사람들이 장애인의 성욕을 모른 척 했고, 장애인 스스로도 이를 억누르고 포기했다”며 “장애인의 성 문제를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 차원에서 다뤄야 한다”고 말했다. 역시 이 분야의 몇 안되는 연구자인 윤가현 전남대 교수(심리학과)는 “손이 없다고 밥먹을 권리가 없는 게 아닌 것처럼, 인간 누구나 갖는 욕구와 권리의 문제로 장애인의 성욕을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내에는 이 문제에 착목한 학술모임이 아직 없다. 재활의학의 한 분야, 또는 특수교육학회 차원의 생활지도 문제로 장애인의 성을 다루는 정도다. 지난 1999년 보건당국 등이 시설에 수용된 지체장애인들에게 강제로 불임수술을 시행한 사실이 드러나 논란을 빚었던 일은 한국 사회의 ‘낮은 수준’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건이었다.

결국 이 문제는 먼저 고민을 시작한 소수에게 떠맡겨져 있다. 장애인 성 문제를 다루는 온라인 매체 <폭시애이블>(foxiable.net)을 준비중인 조항주씨도 그 가운데 하나다. 조씨는 “장애인의 성을 성매매와 연관시켜 해결할 수는 없다”며 “결국은 봉사의 기본정신을 확대시켜야 하고, 이를 위해 장애인 당사자의 당당한 요구와 정부의 적극적 제도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안수찬 기자


장애인 ‘성의 천국’ 네덜란드

1970년대부터 자원 봉사
자치단체 시설 운영도

장애인의 성에 대한 사회적 관용의 ‘첨단’은 네덜란드에 있다.

1970년대부터 성혁명을 주창한 시민운동가들이 장애인을 위한 ‘섹스 자원봉사’ 활동을 벌였다. 이런 노력은 ‘선택적 인간관계 재단(SAR)’이라는 일종의 비정부기구 설립으로 이어졌다. 80년대 후반에 만들어진 이 단체는 남녀 장애인의 성생활을 재정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우리는 돌이 아니다. 어떤 중증 장애인도 성적 욕구가 있다’가 SAR의 이념이다.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장애인시설에는 ‘섹스 서비스 제공 매니저’가 따로 있다. 시설 내에는 장애인의 성생활을 위한 독립적인 공간이 있다. 시설 직원들은 장애인들끼리의 성행위를 돕기도 한다. 옷을 대신 벗겨주고 침대에 눕혀주는 등의 도움이다. 몇몇 지방자치단체는 장애인들에게 성생활 지원금도 지급하고 있다.

그 바탕에는 성매매와 동성애 결혼을 합법화한 네덜란드 특유의 법 제도와 문화가 있다. <섹스 자원봉사>의 지은이는 이에 대해 “적극적인 사회보장이 (사회적) 자애를 낳고, 이것이 성에 대한 관대함과 특유의 휴머니즘으로 이어졌다”고 짚는다.안수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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