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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1.08 13:29 수정 : 2005.01.08 13:29

성낙주 교사, 1912년 사진첩 발굴ㆍ공개

지금까지도 베일에 가려진 석굴암(국보 제24호)주실 지붕이 마치 시루떡처럼 기와를 적어도 두 겹 이상이나 얹고 그 중간에는 토석을 채운 구조였음을 결정적으로 밝혀 주는 1912년 촬영 사진자료가 공개됐다.

석굴암 연구가인 성낙주(49) 서울 중계중 국어교사는 1913년 석굴암이 해체되기직전인 1912년 늦가을 무렵, 일본 동양헌사진관(東洋軒寫眞館)이란 곳에서 촬영한 석굴암 관련 화보집인 `신라고적석굴암 석불'을 8일 공개했다.

이 화보집은 이미 학계에 공개돼 석굴암 연구에 매우 긴요하게 활용되고 있는 1912년 겨울판의 또 다른 석굴암 화보집 `신라고적 석굴암 석불'(총 26장)과 비교할 때 촬영회사는 동양헌사진관으로 같으나, 수록된 사진은 겹치는 것이 없다.

이번에 성 교사가 공개한 `신라고적 석굴암 석불'은 석굴암 감실 조각상 8상(像)을 사진 1장에 각 2상을 담아 처리한 것을 제외하면, 당시 주실과 전실의 부조입상 7상을 한 장에 하나씩 담고 있다.

여기에다 본존불 한 장, 입구정면을 촬영한 한 장, 멀리서 석굴암을 조망한 원경 한 장을 더해 총 34장으로 구성돼 있다.

이중 감실조상 한 장분이 결실돼 현재는 33장이 남아 있으나 이것만으로도 식민지시대 초반 무렵에 나온 석굴암 관련 화보집으로는 분량이 가장 많다고 성 교사는 덧붙였다.

이번 화보집을 통해 공개된 석굴암 관련 자료 중에서도 4번이라는 번호를 매기고 있는 석굴암 주실 전면사진은 해체 직전인 1912년 무렵 주실 지붕구조를 명확히 알려 주는 거의 유일한 자료로 평가된다는 점에서 비상히 주목되고 있다.

바깥에서 석굴암 주실을 정면에서 바라보고 있는 장면을 담은 이 사진에는 고대 불교석굴 사상 유일하게 석재를 이용한 돔 형식으로 쌓아 올린 이 석굴암 지붕전면부가 무너져 내리면서 생긴 절단 토층면을 앙상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에 따르면 석굴암 주실 지붕은 두 겹 이상 되는 기와 지붕을 씌우고 그 사이에는 토석을 채웠던 것으로 드러났다.

사진첩 발굴자인 성 교사는 기와가 세 겹일 가능성이 크다고 했으나 사진판독으로 볼 때 두 겹은 확실하게 드러나며 나머지 한 겹은 그다지 명확하지는 않다.

성 교사는 "이 사진을 통해 석굴암 주실, 특히 그 지붕은 방수와 보온, 충격에의 완충 등을 위한 다목적용으로 우리의 예상보다 훨씬 더 치밀하게 축조되었음을알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석굴암은 통일신라시대 창건 이후 퇴락과 중수를 반복했을 터이므로이번 사진에 드러난 지붕 구조가 곧바로 신라시대 초창기 때의 그것이라고 단언할수는 없다"면서 "그러나 중수가 있었다고 해도 전래의 고식을 따랐을 개연성이 높기 때문에 이 사진에 담긴 정보가 현재로서는 가장 원형에 가깝다고 해도 무리는 아닐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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