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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3.14 18:11 수정 : 2005.03.14 18:11

텔레비전은 ‘바보상자’라고 불린다. 나오는 이나 보는 이나 바보 되기 십상인 탓이다. 재미가 주된 목적이라는 예능오락프로그램는 더욱 그렇다. 웃기는 데만 힘을 쏟다보니, 제 스스로 바보가 되는지 마는지도 모른다. 만드는 이들만 바보 되면 문제가 작지만, 보는 이들까지 실없는 웃음에 홀리게 만든다면 ‘사회악 아니냐’는 중죄 혐의까지 떠안게 된다.

온갖 비판에도 꿋꿋한 에스비에스 주말 오락프로의 ‘당연하지’ 놀이를 보라. 연예인끼리 서로의 사생활을 신나게 폭로하고 외모나 목소리 등을 빌미로 인신공격까지 서슴지 않는다. 위아래 앞뒤 가리는 모습은 진작에 없었다. 이 바보같은 황당한 놀이는 순간 웃기고 잠시 재밌지만, 웃음이 지나고 난 자리엔 뭔가 불쾌한 느낌만 남는다. 이 때문에 이 꼭지가 시작됐을 때부터 시청자들의 비판은 끝이 없었다. 아이들이 이를 보고 그대로 따라해 고민이라는 부모들도 많았다. 그렇지만 피디는 “오락프로가 재밌으면 그만”이라며 모르쇠요, 방송사는 “시청률 잘 나오면 최고”라며 방패가 돼 준다.

어디 이뿐인가. ‘토크쇼’들은 ‘당연하지’의 아버지뻘이다. 떼로 나온 연예인들이 제 안방인 양 쉴 새없이 농담을 지껄이는데, 여럿이 떠들다 일대일 승부로 바뀐 것이 ‘당연하지’다. ‘바보들의 대행진’ 수준인 이것 또한 끝없이 쏟아지는 비판과 힐책에도 끄떡없다. 연출자들은 “그렇다면 따분하게 의미만 따지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하냐”고 따지기까지 한다. 이런 피디들이 많은 탓인지, 토크쇼들은 프로그램 개편 때마다 하나씩 둘씩 늘어나 이젠 일주일에 6개의 토크쇼가 안방 시청자들을 기다린다. 텔레비전은 소위 ‘얼간이 통’(boob tube)이 다 됐다. 오락프로는 이제 제작자·연출자·시청자 모두를 바보로 만들며 아래로 아래로 수준을 낮추고 있다.

물론, ‘바보상자’라는 혐의에 억울해하는 방송인들도 많겠다. 재미있으면서도 뭔가 되돌아보고 떠올리게 하는 프로그램들도 없지 않기 때문이다. 잘 만든 다큐멘터리 한편이 인생의 전환점을 끌어내기에 충분하며, 깊은 감동을 주는 드라마 한편이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도 사실이다. 오락프로도 “재미가 최고”라는 일부 피디들의 생각과는 다르다. 재미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운 까지 거론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그런데, 허허벌판 사막을 헤매다 ‘오아시스’라도 만난 듯 반가운 일이 있다. 토크쇼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달 처음 방영된 <이문세의 오아시스>(여운혁 연출)가 진원지다. 진행자와 말손님 한명만이 나와 속 깊은 이야기를 펼쳐놓는다. ‘99초 파워 인터뷰’는 대단히 솔직하고 진지하고 재밌다. 그래서 신선하다. 소음 투성이 토크쇼들과 자연스럽게 비교되다 보니 더욱 돋보인다. 원래 토크쇼가 이런 것인데도 말이다. 다만 ‘각계 각층 최정상 명사’로 말손님을 제한한 것이 아쉽다. 4회까지 나온 ‘명사’들이 연예계에 한정된 것도 걱정스러운 일이다. 이제 갓 첫 삽을 뜬 <오아시스>가 질 낮은 토크쇼가 횡행하는 사막에 진정한 ‘오아시스’가 될지 ‘신기루’에 그칠지 많은 이들이 주목하고 있다.

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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