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빈부 걔층…선은 어디든 있다” ‘저항 삼부작’ 희곡 〈과부들〉과 〈죽음과 소녀〉 〈독자〉 등의 세계적 극작가이자 문화제국주의 비평서 〈도날드 덕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를 쓴 문화비평가 아리엘 도르프만(63·미국 듀크대 교수)의 희곡 〈디 아더 사이드〉(The Other Side)가 국내에 첫선을 보인다. ‘저항 3부작’ 쓴 세계적 극작가 오는 18일부터 4월3일 문예진흥원 예술극장 대극장 무대에 오르는 연극은 지난해 4월 연출가 손진책(극단 미추 대표)씨가 작가로부터 연출을 의뢰받아 일본 신국립극장의 기획 시리즈 공연으로 세계 초연돼 화제를 모았던 바로 그 작품이다. “일본 공연 때부터 반드시 한국무대에 올리려고 마음먹고 있었습니다. 한국인들은 일본인보다는 감정 표현이 직접적인데다 분단이라는 현실을 좀더 가깝게 느끼고 있기 때문에 전달이 더 명확해질 수 있어요. 그래서 연극이 좀더 짙게 나올 것 같고….” 손진책씨는 “전체 구조는 그대로 유지하되 우리의 정서에 맞게 번역에 공을 많이 들였고 무대, 의상, 조명 등에 작은 변화를 줘서 작품을 쉽게 표현하려고 했다”면서 “비록 우리에게 분단이라는 것이 절실하지만 감정에 치우치지 말고 작품을 이성적인 눈으로 보아 달라”고 주문했다. 이 작품은 20년째 전쟁 중인 콘스탄자와 토미스라는 가상의 두 나라 국경지대에서 전사자의 신원을 확인해주는 대가로 삶을 꾸려가던 한 늙은 부부가 어느날 휴전과 함께 그의 집 한가운데 국경선이 그어지고 15년 전 집을 나간 아들로 보이는 국경수비대원의 방문을 맞는 상황을 그렸다.
한국어로 〈선의 저쪽〉으로 해석되는 이 작품에서 그는 “선이라는 개념을 남북 분단의 비극적 의미로만 생각하지 말고 지역, 빈부, 남녀, 계층, 세대 간의 문제 등 광의의 경계로 해석해 줄 것”을 당부했다. “아리엘 도르프만은 이 작품을 통해 세계를 이분법적으로 보는 것, 물화된 세계를 나와 내가 아닌 남으로 구분하는 시각이 얼마나 비극인가를 우화적으로 표현했습니다. 그 기저에는 20세기 모든 전쟁에 대한 고발과 평화를 외치는 부르짖음 등이 깃들어 있죠.” 그래서 그는 “2월 초부터 연습에 들어가면서 배우들에게 도르프만 작품의 특징을 이야기하고 ‘우리가 분단현실에 익숙해 있기 때문에 해석적인 것보다는 느끼는 것을 내놓아 보아라. 그러면서 너무 감정을 드러내지 말라’고 요구해왔다”고 말했다. 집 한가운데로 휴전선을 긋는다 그는 1992년 칠레 군사정권이 빚어낸 인간 내면의 상처를 다룬 〈죽음과 소녀〉를 국내에 소개한 인연으로 도르프만과 10년 넘게 우정을 쌓아오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공연을 준비하면서 도르프만과 자주 통화하고 있다면서 “한국어로 공연해서 얼마나 행복하겠냐. 꼭 한국을 방문해 인권문제를 위한 문학인들의 모임 같은 곳에 참석하고 싶다는 말을 전하더라”고 말했다. 분단 현실, 이성적으로 봐주길 그는 내년 하반기쯤에 남미의 군부독재 기간에 자행된 성폭력과 실종된 여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도르프만의 〈과부들〉을 한국무대에서 초연할 계획이다. 나치의 학살을 피해 아르헨티나로 이주한 유대인 부모에게 태어난 도르프만은 두살 때 미국으로 건너갔으나 미국에서 매카시 선풍이 불자 공산주의자였던 아버지를 따라 칠레로 이주해야만 했다. 그는 30대 초반 살바도르 아옌데의 민주혁명에 참여했으나 1973년 피노체트 군사쿠데타 정부가 들어서면서 다시 네덜란드를 거쳐 미국으로 망명하는 등 다국적인의 삶을 경험했다. 한편 〈디 아더 사이드〉에서 늙은 부부 아톰 로마 역과 러바나 줄랙 역은 권성덕(64)씨와 김성녀(55)씨, 아들로 짐작되는 국경경비대원 역은 정호붕(39)씨가 맡는다. (02)747-5161.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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