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병에 선 ‘준비된’ 학자 그는 요즘 한국에서 제일 바쁜 학자다. 최근 일주일간 거의 모든 신문과 방송에 등장했다. 아직도 인터뷰 요청이 줄을 잇는다. 이유는 일본 우익의 역사왜곡에 있다. 신주백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책임연구원(사진)은 이 문제에 관한한 ‘준비된’ 학자 가운데 하나다. 정작 그는 이런 일이 마뜩찮지만, 어쩔 수 없다. 스스로 자초한 길이다. 그는 한국 근현대사 전공자이자 일본 군국주의 연구자이면서 동아시아 역사교육 전문가다. 숨가쁜 역사전쟁으로 치닫는 동북아 정세는 그를 내버려두지 않는다. 원래 전공은 민족독립운동사다. 민주화운동의 뿌리가 거기에 있다고 믿었다. 관련 자료를 찾기 위해 90년대 말 도쿄대를 방문했을 때, 학문지평이 새로 열렸다. “일제의 ‘공민·국민 만들기 프로젝트’를 살펴보려 했지요. 여기서 역사교육 문제의 실체를 접하게 됐습니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귀국 뒤 역사문제연구소에 ‘한일관계 연구반’이라는 세미나팀을 만들었다. 동료 연구자들과 함께 정신없이 책을 파고 있는데, ‘비보’가 터졌다. 2001년 후소사판 역사교과서 파동이 일어난 것이다. 그러나 그는 개탄하는 대신 꿈을 꿨다. 동아시아 공동교과서라는 거대한 꿈이었다. 여럿이 꾼 꿈은 현실이 됐다. 오는 5월18일 출간될 <한·중·일이 함께 쓴 미래를 여는 역사>의 집필위원 명단에 그의 이름이 오를 것이다. 세 나라 내부에 똬리를 튼 우익들의 역사왜곡 시도가 그 앞에서 무기력해질 것이라고 그는 믿는다. 패권을 위한 역사왜곡에 대한 가장 강력한 경고가 이 교과서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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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운동 관점 아우르는 작업도 바쁜 와중에 그는 일을 하나 더 저질렀다. <192030년대 중국지역 민족운동사> <1930년대 국내 민족운동사>(이상 도서출판 선인)를 한꺼번에 냈다. 1999년 <만주지역 한인민족운동사>를 잇는 작업이자, 독립운동사를 아우르겠다는 기획의 한 부분이다.
“독립운동에 대한 남과 북의 기존 역사인식에는 한계가 많습니다. 남쪽의 임시정부 정통론, 북쪽의 항일무장투쟁정통론, 그리고 양쪽으로부터 소외당한 국내외 사회주의 운동을 ‘민족운동’이라는 관점에서 함께 담으려 했습니다.” ‘탈국경적 역사’를 공동 교과서 제작을 통해 몸소 실천하고 있지만, 그는 “남과 북의 ‘대립하는 역사’를 아우르기 위해서라도 민족운동이라는 개념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한·중·일은 물론 대만과 북한 등 동아시아 각 나라의 교과서를 분석한 단행본을 내는 일, 한국과 일본의 ‘국민 만들기’에 대한 단행본을 내는 일. 신 연구원의 2005년 일정표에 적힌 숙제들이다. 그를 공부만 하게 내버려둘 동아시아 평화의 기약은 아득하다. 그때까지는 그도 쉴 틈이 없을 것이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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