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3.20 17:37
수정 : 2005.03.20 17:37
|
나전함→자개상자
|
‘매병’ 은 뭣인고?
‘술병’ 이라 하오
죽제고비→편지꽂이
영산회상도→석가설법도
몽유도원도→꿈속에 거닌 복사꽃마을
영산회상도, 청화백자운룡문호, 필가…. 우리 미술 문화유산 관련 용어들은 난해한 한문투 이름으로 악명(?)이 높다. 읽기도 까다로운 미술 문화재 용어들이 올 하반기 중에 쉽고 편한 한글 중심 용어로 대폭 바뀌게 된다는 소식이 들린다.
국립중앙박물관(관장 이건무)은 10월 용산 박물관 재개관을 앞두고 지난 연말부터 학계 전문가 20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추진해온 전시용어 개정 작업을 최근 마무리하고 보고서를 낼 예정이다. 산하 미술부에서 12월부터 이달 중순까지 수차례의 전문가회의와 자체검토를 통해 마련한 이 개정안은 △ 중학생 수준의 쉬운 용어 △ 재질, 장식기법은 표기하지 않고 기능중심으로 표기 △ 널리 알려진 용어는 그대로 사용하되 표준국어대사전을 기준으로 삼는 것 등을 원칙으로 삼았다. 내외국인이 유물들 성격을 쉽게 알 수 있게 하는 데 초점을 맞춘 것이다. 학계 권위자들의 의견을 모아 만든 국가기관의 용어 개정안인 만큼 사실상 국내 미술사 용어 통일안에 해당되어 파급효과가 클 것으로 보인다.
공개될 개정안은 회화·도자기· 금속공예· 불교조각·불교회화·서예·목공예 등 미술사 분야의 세부 장르를 망라하고 있다. 용어개정의 성과가 도드라진 분야는 공예쪽이다. 대나무로 만든 죽제고비의 경우 ‘편지꽂이’로, 필격은 ‘붓받침’, 필가는 ‘붓걸이’, 나전상은 ‘자개상자’, 등경은 ‘등잔걸이’ 등의 정겨운 우리말로 바뀐다. 옛 선비들이 썼던 책상인 서안은 어감이 좋아서 책상과 병기해 쓰도록 했다.또 불교공예품인 사리함은 ‘사리상자’, 사리장치는 ‘사리갖춤’으로 한글어감을 살렸다. 밥상의 종류인 구족반은 ‘개다리 소반’으로 바꿔부른다.
도자기도 조선 백자의 한 종류인 청화백자(靑華白磁)의 경우 한문표기 때 일본학자들 영향으로 관행화한 ‘빛날 화(華)자’ 대신 옛 문헌에 언급되는 ‘그림 화(畵)자’자를 넣기로 했다. 또 붉은 구리 안료를 써서 문양을 그린 진사백자의 이름도 재료의 의미를 살려 ‘동화백자’로 바꾸고, 산화철로 문양을 그린 백자는 철사, 철화백자를 혼용하던 데서 ‘철화백자’로 통일하기로 했다. 매병은 ‘술담는병’, 화병은 ‘꽃담는병’ 등으로 풀어서 쓴다. 또 청화백자유물들의 공식이름을 부를 때도 청화를 앞에 내세우던 기존 관행 대신 가장 큰 특징인 백자를 앞에 붙여 ‘백자청화…’식으로 부르게 된다.
불화쪽에서는 부처가 설법하는 그림인 ‘영산회상도’를 ‘석가설법도’로 고쳤으며 , 벽에 거는 불화인 탱화는 그림 그리는 화사들이 임의로 지은 말이라는 점을 들어 쓰지 않기로 했다. ‘후불탱’을 ‘후불도’, ‘감로탱’을 ‘감로도’로 고치는 식이다. 이밖에 회화는 조선초 화가 안견의 걸작 <몽유도원도>를 ‘꿈 속에 거닌 복사꽃 마을’이란 순한글 풀이 제목과 함께 표기하는 등 몇몇 명품들의 한문제목을 한글제목과 같이 표기하기로 정했다.
용어개정 작업에는 정양모 문화재위원장을 비롯해 최완수, 김리나, 최건, 김재열, 최공호, 이주형, 윤용이씨 등 미술사 전문가들이 대거 참여했다. 그러나 논의과정에서 학자마다 견해가 엇갈려 격론이 벌어졌고, 일부 용어들은 결론을 내지 못했다는 후문이다. 박물관 관계자는 “일제 잔재와 학자들이 편의적으로 지은 이름 등이 뒤섞였던 미술사 용어의 혼란상을 학계 동의아래 일차 정리했다”며 “개정안을 곧 교육부에 전달해 중고교 교과서의 문화재 용어개정에도 반영할 방침이며 추가보완작업을 벌여 장기적으로 용어사전도 발간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