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
흔들리는 대명사 |
영어에서는 대명사가 널리 쓰인다. 앞에 나온 명사가 다시 나올 때는 그것을 대신하는 말이 나타나는 것이다. 대명사는 문장이 이어지면서 아무리 여러 번 되풀이해도 괜찮다. 또 인칭에 따라 주격·소유격·목적격 등의 형태가 고루 만들어져 있어서 문장을 정확하고 간결하게 엮을 수 있게 해준다.
우리말에서는 대명사가 널리 쓰이지 않고 또 형태도 다양하지 않다. 앞에 한 번 쓰인 명사가 다시 나와야 할 때는 그것을 되풀이하거나 그냥 생략해 버리는 경우가 많다. ‘주어 감추기’에서도 들춘 바 있다. 그런데, 주어나 목적어가 생략되었대서 그들이 정말 없어진 것은 아니고 형태가 드러나지 않게 숨은 것일 뿐이다. 곧 일시적으로 ‘영’(0)의 형태가 된 것이다.
입말에서는 되풀이되는 명사를 생략해도 그다지 큰 문제가 안 된다. 언제라도 서로 물어볼 수 있고, 말하는 이의 태도나 억양 등을 통해 뜻을 짐작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글말에서는 앞에 나온 명사를 단순히 생략해 버리면 문장이나 단락의 뜻이 분명하지 않게 될 때가 많다. 같은 낱말을 되풀이하자니 문장이 길고 번거롭게 되고, 생략하자니 뜻이 흐려지는 것이다.
정보화 시대에도 쉽고 정확하게 뜻을 표현한 문장과 단락을 만들어내는 것이 꼭 필요한 일이고, 또 국어교육이 나아갈 방향이기도 하다. 대명사를 새로 만들어서라도 많이 썼으면 좋을 법한 마당에 우리는 있는 것도 제대로 활용하지 않는다. ‘나’라는 말 대신에 ‘엄마가’, ‘선생님이’ 하고 말할 때가 많다. ‘너’나 ‘당신’이라는 말은 여러 제약에 묶여 잘 쓰이지 못한다. 이 간단한 말을 쓰지 못해 일상생활이 불편해질 때가 얼마나 많은가?
안인희/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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