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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1.09 22:04 수정 : 2005.01.09 22:04

<도성대지도>의 전체모습. 산에 둘러싸인 시가지 얼개가 마치 꽃봉오리가 피어나는 듯 그려진 개화식 지도다. 꼼꼼하게 기록된 도심부 길과 주요 동네의 지리정보와 함께 북한산·인왕산·남산 등 산세의 회화적인 묘사가 돋보인다.



200년전 서울!
5부47방340계 치밀한 계획도시였다

인구 1000만을 넘는 거대도시 서울의 200년 전 모습은 어떠했을까. 막연하게나마 왕궁을 중심으로 양반촌과 민가, 상점가 등이 올망졸망 들어찬 촌락도시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조선후기 한양성은 무질서한 촌락도시가 아니라 유교적 세계관과 음양오행의 풍수적 원리에 근거해 5부 47방 340계의 치밀한 행정체제로 닦여진 왕도였다.

외곽 전원지대의 녹음과 합리적으로 구획된 업무, 주거 영역이 조화를 이룬 당시 도시경영의 실체를 보여주는 한양성 옛 지도 하나를 집중분석한 영인본 도록이 최초로 발간되었다. 서울역사박물관(관장 김우림)은 조선시대 한양의 옛 모습을 담은 고지도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고 정밀한 것으로 평가되는 <도성대지도> 도록을 최근 펴냈다. 박물관 소장품인 이 도성대지도는 세로 188cm, 가로 213cm의 큰 화폭에 18세기 한양의 자연지세와 북·남촌의 도심부와 동서 변두리의 촌락, 지명 등을 함께 그리고 표기한 아름다운 옛 지도로 축척(1대2900)의 정밀함, 정보량, 예술성 등에서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있다. 군데군데의 자연지세 묘사부분에서 대화가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 필치와 비슷한 독특한 미점이나 소나무 표현이 엿보여 그가 관여했을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자연지세·지명등 상세표시
구역별로 따로 찾아볼수도
방어체계·권력관계도 유추

도록의 돋보이는 장점은 단순 영인본 차원을 넘어 요즘 교통지도책처럼 하나의 지도 전체를 24개 구역으로 나누어 상세하게 분석했다는 데 있다. 각 지역을 1:1비율로 옮겨놓고 지명이나 지형에 대한 상세한 색인을 달아 실제 지도를 찾아 보는 듯한 생동감을 살리고 있다. 특히 도성을 5부로 나누고 각 부를 329방으로 나누었던 영정조 시대 서울의 주요 지명, 행정구역 등을 치밀하게 기록해 놓았다. 구역별로 번호를 찾아보면 광화문 육조거리, 창덕궁의 소문인 선인문, 청계천 광통교, 목멱산 소나무, 굵기에 따라 달리 표시된 시가지의 대로, 소로 등을 일목요연하게 찾을 수 있다. 종로인 운종가는 세부도를 실어 입체적 이해를 도왔다.

철저한 색인 못지않게 지도사와 회화사, 사회사 등 다양한 관점에서 고찰을 시도한 노력도 보인다. 말미에 실린 국사편찬위 이상태 자료조사실장의 ‘도성대지도에 관한 연구’와 미술사학자 김상엽씨의 ‘도성대지도의 회화사적 의미’란 논고가 그것인데, 지도의 기본 정보를 토대로 당대 한양성의 방어체계, 권력·공간의 함수관계, 도시생활적 측면을 검토했다. 이 실장이 육상궁, 북한산성 등의 지명과 시설명 등의 연대적 변천을 대조하며 지도의 제작시기를 영조 29년(1753)부터 영조 35년(1759)사이로 비정한 것은 중요한 성과다. <도성대지도>에 도성과 북한산, 북한산성이 세밀하게 묘사된 것이 영조때 수도방위전략의 수정을 의미하며, 집권층 노론인사들이 주로 살던 북촌을 거의 묘사하지 않은 점에서는 당시 당파의 권력 관계를 엿볼 수 있다는 김씨의 분석도 눈길을 끈다. 도록발간은 박물관 소장품 가운데 1점을 매년 선택해 집중 소개하는 특별기획의 첫번째로 후속 작업이 기대된다. 한편 박물관쪽은 조선왕조의 정사인 <조선왕조실록><승정원일기>의 일차 자료인 <승정원 사초1>도 정서본과 영인본으로 내놓았다. (02)720-0114.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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