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
쏙 들어간 신데렐라식 멜로 드라마 이제 좀 진화하려나 |
요즘 드라마에 신데렐라와 재벌2세가 잘 안보인다. 월화 드라마부터 시작해 보자. 한국방송 2텔레비전 〈열여덟, 스물아홉〉은 늦깎이 연예스타와 이혼하려다 기억을 잃은 주부 이야기다. 여성의 매력을 무기로 신분 상승의 엘리베이터로 올라타는 전형적인 ‘신데렐라’ 구도와는 차이가 크다. 문화방송 〈원더풀 라이프〉는 하룻밤 실수로 아이를 가진 실수투성이 젊은 부부의 좌충우돌 신혼기를 담고 있다. 에스비에스 〈불량주부〉는 좀 더 현실에 밀착한다. 실직한 뒤 집안에 주부로 들어앉는 남편과 남편을 대신해 돈벌이에 나선 아내 이야기다. 회사에서 아내를 밀어주고 유혹하는 젊은 상사가 나오지만, 그도 재벌2세는 아니다.
수목 드라마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방송 〈해신〉은 통일신라시대 장보고의 활약과 사랑을 그린 퓨전 사극이다. 장보고는 날 때부터 ‘왕자’기는커녕, 노예로 당나라에 끌려갔다 시대 격랑을 헤치고 성공한 입지전적 인물로 그려진다. 문화방송 〈신입사원〉에도 재벌2세며 신데렐라는 없다. 주인공 강호(문정혁)는 3류 백수에서 어쩌다 전산착오로 대기업에 수석입사한다. 그와 경쟁 상대가 되는 봉삼(오지호) 역시 학벌과 능력은 뛰어나지만, 가난한 집안 출신이다. 극 초반 봉삼을 사이에 두고 미옥(한가인)과 삼각관계를 형성하는 현아(이소연)가 호텔재벌의 딸로 설정돼 있지만, 드라마의 주요 얼개는 아니다. 에스비에스 〈홍콩 익스프레스〉는 예외적으로 재벌가 이야기가 주된 그림이다. 하지만 여기서도 신분상승 욕망의 주체는 남성인 민수(조재현)다. 그나마 그는 옛 첫사랑 정연(송윤아)과 자신을 끌어줄 재벌가 딸 사이에서 방황한다. 재벌이 주요 배경으로 등장하지만, 이야기 중심은 신데렐라식 멜로가 아니다. 오히려 〈적과 흑〉 같은 근대 소설의 비극적 구도를 따른다.
이번엔 주말이다. 〈토지〉 〈이순신〉이야 사극이라 논외로 하자. 27일 끝난 문화방송 〈한강수 타령〉에도 신데렐라는 없었다. 돈 많은 집 아들과 사업가는 나왔지만, 여주인공 가영(김혜수)과 나영(김민선)이 걸어간 길은 신데렐라와는 거리가 멀다. 한국방송 2텔레비전 〈부모님 전 상서〉엔 박창수(허준호)가 부모 도움으로 회사를 물려받은 사업가로 나온다. 하지만 드라마 속 그는 신데렐라를 재투성이 부엌에서 구출해준 왕자가 아니다. 오히려 결혼생활을 파탄으로 이끌다 이혼한 뒤, 전처 성실(김희애)에게 매달린다. 큰 부잣집 외동딸인 첫째 며느리 송아리(송선미)가 있지만, 급격한 신분상승의 판타지 같은 건 드러나지 않는다. 이번에도 에스비에스 〈그린로즈〉에는 재벌2세가 있다. 하지만 역시 여성이다. 더구나 야심에 찬 부하직원에게 아버지를 살해당한다. 신데렐라식 판타지가 끼어들 만한 상황이 아니다.
신데렐라가 사라진 자리에는 좀 더 주체적인 캐릭터들이 등장하고 있다. 불가능한 신데렐라 판타지를 현실처럼 드러내려다 보니 천편일률적으로 비현실적이고 센 장치들이 동원되던 데 비해, 극 장치들도 실직, 전산착오 등으로 다양해지고 있다. 드라마의 진화를 기대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