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사장을 통째로 예술작품으로 만들 생각” 우리 번여객 다 끌어모아도 750평 못채웁니다
이문열 황석영씨도 유럽땅에서는 ‘무명작가’
고인돌 세우고 컴퓨터단말기…IT로 전시관 장악할 터 12척 배로 300척 적선을 맞은 이순신의 마음이 이랬을까. 1대1로 맞붙어선 백전백패다. 아득한 두려움이 밀물처럼 차오른다. 황지우(53) 푸랑크푸르트도서전 주빈국 행사 총감독은 지금 ‘난중일기’를 쓰고 있다. 적군을 제압하는 길은 하나밖에 없다. 우리의 역량을 수백 배로 키우는 ‘과감한 아이디어’로 승부하는 것뿐이다. ‘문화 올림픽’, ‘인문 올림피아드’로 불리는 세계 최대의 도서전 주빈국 행사가 6개월 앞에 닥쳤다. 가장 문화적인 행사를 치르는 처지에서 전쟁술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그만큼 시간이 촉박하고 사정이 절박하기 때문이다.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의 주빈국이 된다는 것은 한국이 지닌 문화적 역량이 온 세계에 날것으로 노출된다는 뜻이다. ‘성공이냐 실패냐’로 문화선진국의 발판을 마련하느냐 못하느냐가 갈린다. 열악한 예산, 취약한 진용을 탓할 단계가 아니다. 조건과 현실을 그대로 받아안은 채로 진두에 나서야 한다. 되돌릴 수도 회피할 수도 없는 결전을 앞둔, 머리가 하얗게 새버린 그를 주빈국 조직위 총감독실에서 만났다. 행사일정과 각종 아이디어가 빽빽하게 적힌 커다란 칠판 옆 책상에 앉아 그는 작전회의를 하듯 사람을 만나고 있었다.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주빈국 행사가 왜 그렇게 중요합니까?
=세계 문화의 한복판으로 들어가는 관문이기 때문입니다.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은 수백만 권의 전 세계 책이 집결하는 최대의 책잔치입니다. 그 잔치 한가운데 놓인 것이 주빈국 행사입니다. 이 주빈국 행사를 통해 한 나라의 문화가 세계인의 시야 안으로 진입합니다. 1970년대에 남미의 여러 나라가 주빈국 행사를 치렀습니다. 그걸 계기로 하여 남미 문학이 유럽을 강타했고,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옥파비오 파스 같은 문인들이 노벨문학상을 탔습니다. 일본은 1990년 이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르고 4년 뒤 오에 겐자부로가 같은 상을 받았습니다. 헝가리는 2년 뒤, 포르투갈은 3년 뒤 노벨상 수상 대열에 들었습니다. 이 행사를 성공시켜 우리도 노벨상을 타자는 뜻은 아닙니다. 한 나라 문화적 상상력의 최대치가 세계와 겨루어 가늠되는 자리라는 이야깁니다. 더구나 우리는 유럽인들에게는 아주 멀고 작은 나라입니다. 정보산업·태권도·월드컵·김치 같은 게 알려져 있지만 문화적으로 우리는 아직도 ‘얼굴 없는 나라’입니다. 이문열과 황석영씨가 아무리 유명해도 유럽 땅에 도착하는 순간 무명작가가 되고 맙니다. 이번 행사는 그들에게 우리의 얼굴을 알려주는 자리입니다. 중국과도, 일본과도 다른 우리만의 얼굴을 각인시키는 자리이지요. 출판계에서는 도서전 주빈국 행사가 ‘출판’ 중심 행사인데, 출판 바깥의 문화 행사로 치우치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적지 않습니다. =출판계에 그런 걱정이 있다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분명히 말하지만, 이 행사의 핵심은 출판입니다. 출판을 중심에 두고 그 둘레에 넓은 의미의 문화행사를 배치하는 것이죠. 그것은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독일 쪽 준비위의 요청이기도 합니다. 다만 출판 행사도 문화 행사의 형식을 띨 수밖에 없고, 역대 주빈국 행사도 이 형식을 따랐습니다. 주빈국 행사가 방대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처음 주빈국 조직위가 만들어졌을 때 기획된 행사가 무려 104개였습니다. 그걸 지난해 총감독에 취임한 뒤 54개로 줄였고, 최근 29개로 축소해 확정했습니다. 규모는 줄이되 내실을 키우는 방향으로 행사가 조정된 셈인데, 예산이 턱없이 부족한 현실에서는 규모를 줄이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행사들 가운데 가장 공을 들이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역시 도서전 전시장 안에서 펼쳐지는 행사입니다. 행사의 중심 노릇을 할 주빈국관이 있고, 우리 출판사들의 책을 전시하는 한국관이 있습니다. 주빈국관이 순수한 전시 목적이라면, 한국관은 책을 사고파는 비즈니스 공간입니다. 이 두 공간 사이에 일종의 넓은 통로로 ‘아고라 광장’이 있습니다. 아고라 광장은 우리 문화의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보여주려고 합니다. 장터 개념을 적용해 한쪽에서는 금속활자 제작 시연을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목판 인쇄와 한지 제작 시연을 합니다. 목판으로 인쇄한 우리 전통 문양을 그 자리에서 한지에 찍어 상품으로 팝니다. 가운데 마당에서는 우리의 전통놀이와 먹을거리를 풀어놓고 한국문화 체험 이벤트를 벌입니다. 그 옆에 ‘디지털 하우스’를 열어 정보기술 강국으로서 한국의 현재와 미래를 보여줍니다. -주빈국관이야말로 이 행사의 얼굴일 텐데요. =그렇습니다. 그동안 가장 많이 고심한 것이 주빈국관을 어떻게 펼치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두려움, 그게 솔직한 마음입니다. 안타깝게도 현재 번역된 우리 책을 다 끌어모아도 750평이나 되는 이 드넓은 공간을 채울 길이 없습니다. 주빈국관은 전통적으로 ‘대화’와 ‘소통’이 주제이기 때문에, 유럽인들이 알아먹지 못할 우리말 책을 쌓아놓을 수는 없습니다. 지난해 아랍권 22개국이 연합으로 주빈국 행사를 했는데, 아랍어 책으로 채워놓아 단절감만 낳고 말았습니다. 그렇다면 어디에서 돌파구를 찾아야 할까요? =결국엔 우리가 지닌 최대 강점을 밀고 나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정보기술(IT) 강국으로서 우리의 힘으로 주빈국관을 장악해버리는 것입니다. ‘한국의 책 100’ 사업으로 번역한 우리 출판물을 주요 콘텐츠로 삼아 책에 관한 새로운 개념을 제시하는 것이죠. 아름다운 사랑의 시이든 화려한 예술서든 우리가 제공하는 콘텐츠를 행사장 안과 밖에서 각종 단말기로 내려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삼국유사>를 판타지소설로 개작한 뒤 독일 최대의 통신회사 ‘도이체 텔레콤’과 제휴해 독일 전역에서 내려받는 것도 추진하고 있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출판물 행사가 아니라 정보기술 행사로 비치지 않을까요. =그런 우려를 씻으려면 행사장을 통째로 예술 작품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최근 독일 라이프치히 도서전에서 연 주빈국 예비행사 때 가로 24m짜리 백색 판에 최초의 금속활자본인 <직지심경>의 번역문을 돋을새김해서 전시했는데, 그쪽 사람들이 그 거대한 흰색 활자판의 단순한 디자인에 경이감을 표시했습니다. 주빈국관에 한국의 고대문화 유산인 고인돌을 만들어 세운 뒤 그 표면을 잘라 최첨단 기술문명의 상징인 컴퓨터 단말기를 들여앉힐 것입니다. 전시장을 꽉 채운 원시의 거석들이 첨단 전자문명을 안고 있는 형국이지요. 이 그 단말기에서 우리의 출판문화 콘텐츠들이 흘러나옵니다.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과감한 아이디어’로 난관을 뚫어버리는 것이죠. 예산 부족, 물량 부족을 발상의 대전환으로 헤쳐나가겠다는 것이군요. =그렇습니다. 발상을 뒤바꿔 해결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주빈국 행사 전후로 독일 전역에서 미술·무용·음악 행사들이 열리는데, 독일 유수의 미술관이나 극장, 오케스트라와 공동제작 방식을 통해 돈 한 푼 안 들이고 행사를 치를 수 있도록 했습니다. 지금도 저희 머릿속에는 많은 아이디어들이 있습니다. 최소한의 금전적 뒷받침만 있다면 얼마든지 실현할 수 있고, 꼭 실현해야 할 일들이 있습니다. 우리 한글의 아름다움을 펼쳐 보여주는 전시도 하고 싶고, 한국적 역동성 아래 깃든 명상의 세계를 보여줄 한국 선 알리기 행사도 치르고 싶습니다. 머리숱이 많이 빠졌습니다. =총감독 취임 이후 밤잠을 설친 것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빠진 머리카락의 반은 아이디어를 짜내느라, 나머지 반은 ‘재원 문제’로 고심하느라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행사가 성공하면 머리숱도 제자리로 돌아오겠지요. 글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사진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 인터뷰 뒤안길
고대했던 민간후원금 한 푼도 안 들어와 잠설치고 머리 ‘숭숭’
황지우 총감독과의 인터뷰는 3시간 넘도록 이어졌다. 덩치 큰 행사의 전모를 설명하는 데는 그 시간으로도 부족했다. 그가 가장 힘들게, 가장 많이 이야기한 것이 돈 문제였다. 그는 그동안 행사 기금을 마련하려고 백방으로 뛰어다녔지만 시민사회의 냉담한 반응에 굴욕감마저 느꼈다고 했다.
애초에 잡은 예산은 250억원 중 정부 지원금 130억원만 예정대로 받았을 쓸 뿐 기대했던 민간 후원금은 사실상 한 푼도 들어오지 않았다고 한다. “출판계가 돈을 모으고 있지만 목표액 30억원을 다 채워도 행사의 밑돌로 삼기에는 태부족입니다. 일본의 경우 정부와 민간이 조직적으로 재원을 마련해 1990년 주빈국 행사를 ‘일본 문화 세계화의 완성판’으로 만들었습니다. 한 달 동안 독일 공중파 방송으로 스모 대회를 방영하기도 했고, 일본회를 독일에 퍼뜨려 그들의 입맛을 바꿔놓았습니다. 풍부한 재원의 뒷받침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지요.”
그는 문화행사가 곧 비즈니스임을 기업들이 알아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독일 쿤스트페어라인 미술관이 한국 미술전을 공동기획 방식으로 대관료 없이 해주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그 미술관 관계자가 프랑크푸르트의 한국 기업을 찾아가 카탈로그 제작비만 지원해 달라고 요청했는데, 한마디로 거절당했답니다. 비즈니스 감각으로 보더라도 한국 제품이 유럽 시장으로 들어가려면 문화라는 윤활유가 필요한데, 그런 걸 생각할 여유가 없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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