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48년 4월, 제주에서 일어난 4·3사태 당시 토벌대에 쫓긴 주민들이 은신하던 와흘굴(북제주군 조천읍 와흘리)을 뚫고 나온 임시 출구의 모습. 학자들은 4·3 당시 민간인 학살이 이후 동아시아 지역에서 발생한 여러 집단학살의 ‘원형’이라고 평가한다. <한겨레> 자료사진 동아시아 평화인권포럼 한·중·일 대립의 끝은 어디일까. 정답은 지난 1세기의 동북아 역사가 말해준다. 전쟁이다. 그리고 뒤이은 학살이다. ‘학살’은 민족국가간 대결과 이념대립의 비극적 완결판이다. 국가권력은 전쟁을 경외했지만, 힘없는 민초는 국가권력의 학살에 난도질당했다. 학살을 기억하는 시민사회가 국가간 대립을 극복할 진정한 ‘주체’인 이유다. 일본의 교과서 왜곡과 독도문제로 동아시아 전체가 떠들석한 가운데, 의미심장한 행사가 지난 주말 제주에서 열렸다. 제주4·3연구소가 주최한 ‘동아시아 평화인권포럼’은 한·중·일 학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학살’의 과거사 위에 ‘평화’의 미래사를 싹 틔우려는 자리였다. 난징·오키나와 그리고 제주와 광주
피로 물든 민족과 이념대립 상처
미·일 우익동맹에 민중의 경고 1일부터 2일까지 제주대 국제교류회관에서 열린 이번 학술대회에서 각 나라 학자들은 20세기를 피로 물들인 집단학살의 상처를 들추었다. 중국 학자들은 난징을, 한국 학자들은 제주와 광주를, 일본 학자들은 히로시마와 오키나와를 불러냈다. 난징대학살 당시 일본군은 19만명의 중국인을 죽이고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여성을 강간했다(장시엔원 중국 난징대 역사학과 교수). 아시아·태평양 전쟁 막바지에 발생한 오키나와전에서는 현지 주민 네명 가운데 한명이 사망했다. 일본군은 이른바 ‘본토 결전’에 대비한 시간을 벌기 위해 오키나와인을 ‘죽음의 동반자’로 삼았다(아라카키 야스코 지역사연구가).
세계사의 비극으로 기록될 난징과 오키나와의 앞과 뒤에 한반도에서 벌어진 학살이 있다. 일제 식민지 시기 조선인의 저항에 대한 보복으로 자행된 비무장 조선인의 집단살해는 난징대학살의 예고편이었다(김동춘 성공회대 사회학과 교수). 해방 직후 발생한 제주 학살은 2차대전 이후 미군의 지휘 아래 자행된 동아시아 민중학살의 원점이다(이토 나리히코 일본 츄오대 교수). 특히 제주는 “대만, 오키나와와 함께 군사적 요충지인 제주도를 결코 포기할 수 없었던 미국에 의해 냉전체제의 제물로 바쳐진 섬”(김영범 대구대 사회학과 교수)이다. 김동춘 교수는 중요한 ‘경고신호’를 보냈다. “극우 반공주의를 내세운 제국주의 지배체제 자체에 이런 학살의 개연성이 잠복돼 있으며, 파시즘 세력이 위기에 처했을 때 반공주의, 인종주의 담론과 더불어 이런 집단살상의 방법이 동원된다”는 것이다. 일본의 우경화와 이를 뒷받침하는 미·일 우익동맹은 동아시아 ‘학살의 역사’를 자꾸 곱씹어보게 만드는 핵심 원인이다. 이토 나리히코 교수는 “동아시아 평화공동체에 대한 강렬한 염원에도 불구하고 그 길이 열리지 않는 것은 미국과 일본이 이 지역에서 평화공동체가 아닌 ‘전쟁공동체’를 만들려 하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특히 이토 교수는 “미국 지배 하의 일본이 동아시아 공동체에 참여한다면 일본은 ‘트로이의 목마’처럼 평화공동체를 내부에서부터 파멸시키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번 학술대회에 참가한 한·중·일 학자들은 거의 한 목소리로 ‘동아시아 평화벨트’ 구상을 이야기했다. 김영범 교수는 “세 나라 평화애호세력이 국경을 넘어 교류·연대하기 위해, 학살·생체실험·핵피폭 등의 참상을 겪었던 도시인 난징·하얼빈·광주·여수·제주·타이완·오키나와·히로시마 등을 잇는 평화벨트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분쟁 해법 첫걸음은 공동교과서” 한-일 역사 학술대회 ‘동아시아 평화벨트’ 구상의 실현은 아직 먼 미래의 일이다. 첫걸음을 떼는 게 중요한데, 그것이 공동역사교과서라고 말하는 한·일 지식인들이 있다. 한국학중앙연구원과 일본 도쿄대학은 6일부터 이틀간 도쿄대에서 ‘한일 역사교과서의 현재와 미래’를 주제로 국제학술대회를 열었다. 이길상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이 자리에서 “민족이나 국가를 떠나 동아시아 3국이 공동의 역사교재를 편찬했다는 것은 이 지역이 전쟁의 상처를 딛고 평화로 가는 여정에 있어서 매우 큰 족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백영서 연세대 교수는 “동아시아 역사인식의 갈등을 끝내기 위해서는 역사 교과서와 역사교육을 재구성하는 작업이 일차적으로 필요하다”면서 “세 나라 역사학자·교사들이 연대해 자발적으로 만든 한중일 공동 교과서 <미래를 여는 역사>는 동아시아 평화 공동체의 첫 걸음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고 평가했다. 공동 역사인식 작업의 과제도 제기됐다. 백 교수는 “<미래를 여는 역사> 집필진의 동아시아적 관점은 동아시아 지역 전체를 구조적으로 연관시켜 파악한다는 목표에는 미치지 못한다”며 “세 나라 역사의 단순 비교를 넘어 상호 연관의 역사를 서술하고, 국가 중심의 역사 서술을 견제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토 마나부 도쿄대 교수는 현행 한·일 역사교과서의 유사성을 분석하면서 “한국과 일본은 자국사를 세계사와 구분해 가르치고, 초중고 과정을 통해 자국사의 통사를 3차례에 걸쳐 반복 학습시키는 등 ‘국가의 역사 또는 국민의 역사’라는 내셔널리즘에 입각해 역사교육을 실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사토 교수는 “한국과 일본이 함께 기존의 ‘국민교육’에서 지역사회·국가사회·세계사회의 시민임을 자각시키는 ‘시민교육’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길상 교수도 “역사교과서를 국민 주체성 함양의 도구에서 해방시키자”며 “일부 국사교과서를 국정으로 운영하는 한국이나 국가에 의한 검정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일본 모두, 역사교과서 자유발행제를 통해 국가 권력에 의한 국사 독과점을 제거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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