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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4.07 19:35 수정 : 2005.04.07 19:35


△ 일본의 만행을 고발하기 위해 제네바를 방문중인 신혜수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상임대표(왼쪽)와 일본군 위안부 출신 심달연 할머니(가운데)가 6일 웬디 챔벌리 유엔인권고등판무관실(UNHCHR) 부판무관을 방문해 일본의 사죄를 촉구하고, 일본의 유엔 안보리 진출을 반대하는 30만명의 서명록을 전달하고 있다. 제네바/연합

일본 교과서 왜곡과 독도 문제로 한·일 간의 긴장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일본 문부성의 교과서 검정결과 발표를 계기로 <한겨레>는 한·일 지식인들의 ‘미래 제언’을 앞으로 세차례에 걸쳐 긴급 연재한다. 한·일 갈등과 대립의 실체를 드러내고, 용서와 화해, 공존의 미래를 위한 주문과 제언을 두 나라 모두에게 전하려는 뜻이다. 글쓴이들의 아픈 지적은 때로는 자국 내부를, 때로는 상대 나라를 향할 것이다. 이들의 글이 ‘한·일 우정의 해’ 2005년을 더럽히는 사람들을 향한 매서운 회초리이자, 그 반대편에서 평화를 꿈꾸는 이들을 위한 든든한 지팡이가 되기를 기대한다.

역사의식 공유 평화의 길 닦자

▲ 김성보/연세대 사학과 교수
동아시아에서 패권과 냉전의 시대를 마감하고 평화의 시대를 열기 위해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일까? 혹자는 각국의 민주주의가 신장될 때 전쟁은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말한다. 그러나 민주주의가 평화를 보장하는 충분조건은 되지 못한다.

평화·인권 ‘보편가치’ 생각을


국내에서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나라가 밖으로 침략을 일삼은 사례는 너무나 많다. 자국인만이 아니라 타국인을 동등한 인격으로 존중하는 자세가 일반화할 때에만 비로소 평화의 길은 열린다. 그러한 존중의 자세는 외국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생길 수 있다. 서로의 역사를 존중하고 나아가 함께 역사의식을 공유하는 과정이야말로 평화의 길을 닦는 첩경이다.

2001년도의 후소사판 교과서 검정 통과는 역사 왜곡을 우려하는 한국과 일본의 지식인·시민들이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역사의식을 공유해야 할 필요성을 절감하고 함께 연대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 두 나라 정부의 합의에 의해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가 만들어진 것과 별도로, 학계 차원에서는 두 나라 각각의 5개 학회 사이에 역사 교육 문제를 공동으로 연구하는 학술회의가 정례화됐다. 한국의 ‘일본교과서 바로잡기 운동본부(아시아 평화와 역사교육연대)’와 일본 쪽 시민단체들은 비판에 머물지 않고 대안을 만들어낸다는 취지에서 한·중·일 3국의 공동역사교재 편찬 사업을 추진했다. 이밖에도 학계, 시민사회의 다양한 영역에서 교류가 이뤄져 왔다.

한·일 민족감정 충돌 막아야

개인적인 경험에 근거할 수밖에 없지만, 적어도 지난 4년간의 교류 경험을 통해 다음의 두 가지 점이 확인됐다고 생각한다. 첫째, 평화와 인권이라고 하는 보편적 가치관에 입각하여 역사의식을 공유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침략과 전쟁은 피해국인 한국뿐만 아니라 가해국인 일본 민중의 삶까지도 철저하게 유린했다. 그 때문에 한일 양국의 민중은 평화의 소중함과 인권의 고귀함을 체험적으로 인식하고 있다.

둘째, 앞서 지적과 다소 상반된 느낌을 줄 수 있겠으나, 양국이 공동의 역사 이해에 도달하는 과정은 인내심을 요하는 참으로 지난한 길이라는 점이다. 평화와 인권과 같은 추상적인 가치를 공유하면서도 그 가치를 이해하는 방식에는 양국에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일본의 평화기념관들을 보면 미국의 폭격과 원자폭탄에 의한 희생은 강조하면서도 자신의 침략 사실은 제대로 드러내지 않는 경우가 많이 있다. 한편 한국의 수도 서울 한복판에는 전쟁을 기념하는 거대한 석조건물은 있을지언정 평화기념관은 아예 찾아볼 수 없다. 보편적 가치와 민족주의라고 하는 개별적 가치를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 하는 점도 난제로 남아 있다. 일본 쪽은 국권을 지키는 것이 평화와 인권을 지키는 필수조건일 수밖에 없었던 한국의 역사적 경험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 역으로 한국 쪽은 세계시민을 주장하는 일본 쪽의 견해에 귀 기울이며 민족주의를 절대적인 가치로만 여기는 한계에서 벗어나야 한다.

교과서 공동연구 기구 만들자

그런데 가치관의 공유는 공동의 역사이해에 도달하기 위한 출발점에 불과하다. 사건과 사실 하나하나에 대하여 면밀한 학술토론을 진행하고 이를 토대로 역사의 거시적 흐름을 함께 파악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공동의 역사 이해에 도달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3국 또는 양국의 공동 역사교재 출간은 역사의식을 공유해가는 긴 여정 속의 한 정거장일 뿐이다.

2001년도의 역사왜곡 문제로 서로 만날 수 있었던 한·일 양국의 시민사회는 이제 2005년도 역사 왜곡 재현의 현장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한·일 양국의 민족감정이 직접 충돌하는 상황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그런 상황이 연출된다면 그것이야말로 후소사판 교과서를 후원하는 세력을 이롭게 하는 일이 될 것이다. 평화와 인권의 가치에 입각해 후소사판 교과서 불채택운동을 전개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역사의식의 공유를 위한 작업을 보다 장기적인 전망 속에 체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후자의 사업을 위해서는 학문적 권위를 가진 학계와 활동력을 가진 시민단체가 힘을 합쳐 한·일 공동의 교과서 공동연구·편찬기구를 만들어야 한다. 양국 정부는 기구의 창설과 운영에 관여해서는 안 되며 다만 만들어진 기구에 대해 재정지원을 해야 한다. 두 정부가 이를 합의할 수 없다면 시민사회의 힘만으로 기구를 만들고 독지가들을 모아 운영하면 된다. 양국의 역사·사회과 교과서 모두에 대한 공동의 수정권고안을 만드는 일과 자체적으로 공동 교과서를 만드는 일이 주된 사업이 될 것이다. 사업 취지에 공감하는 한·일 양국의 지식인·시민들이 뜻을 모아 ‘반성과 화해, 미래의 평화공동체 실현을 위한 공동선언’을 채택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김성보/연세대 사학과 교수, 역사문제연구소 부소장


영토문제, 대화의 물꼬 트자

▲ 기미야 다다시/ 도쿄대 교수
영토 문제는 어떤 경우에도 주권이 관련되기 때문에 타협하기가 여간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 독도 문제는 일본에서는 순수한 영토 문제이며, 일본의 고유한 영토인데도 한국이 ‘불법점거’하고 있다는 식으로 알려져 있다. 그에 반해 한국에서는 한국의 고유한 영토라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며, 일본이 한국을 식민지배하려던 과정에서 억지로 자기 영토라고 선언했을 뿐, 한국의 독립과 동시에 당연히 한국의 영토가 됐다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럼에도 일본이 자기 영토라고 주장하는 것은 과거 식민지배에 대해 아무런 반성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여겨져 왔다. 또한 일본이 뭔가 영토 팽창주의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해석마저 나온다.

한-일 독도 문제설정 큰차이

한국 정부나 사회가 이 문제에 대해 격렬한 반응을 보이는 데 비해 일본 정부나 사회는 한국의 견해에 공감하지 않으면서도 그다지 활발한 반응을 보여주지 않고 있는 이유도 이처럼 상호 문제 설정의 큰 괴리에서 찾을 수 있다. 일본의 교과서 문제가 두 나라 사이에 놓여 있지만 가장 심각한 쟁점은 역시 영토 문제다. 즉, 일본의 공민교과서에서 독도 사진을 싣고 일본의 고유한 영토임에도 한국이 불법점거하고 있다고 서술한 것이 한국 정부가 가장 문제삼고 있는 부분이다.

더욱이 일본에서는 이런 문제들이 갑자기 발생해 의외라는 느낌이 강하다. 이것은 그 전까지는 일본 사회의 화제를 독점하다시피 했던 이른바 ‘한류 열풍’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류 열풍은 단순한 ‘붐’이라기보다 한-일 관계의 다음과 같은 구조적 변용이 가져다주는 현상이라고 강조하고 싶다. 한-일 관계의 구조적 변용이란 △한-일의 정치경제 체제의 접근과 시장민주주의라는 기본적 가치관의 공유 △한-일의 힘의 상대적 균형화 △한-일의 상호 인식량의 상대적 균형화 △한-일의 상호 협력 가능성에 대한 상호 인식의 증대 △시민사회의 교류를 포함한 한-일 관계의 다층화라는 다섯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이런 변화는 두 나라 관계를 호전시키는 방향으로만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마찰을 가져올 수도 있다. 따라서 이런 변화를 염두에 두면서 최근의 영토 문제, 교과서 문제를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힘의 관계’ 변화도 한몫

이 문제들은 한-일 관계가 기본적으로 변화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다. 이 문제들의 발전과정을 자세히 바라보면, 두 나라 관계의 변화가 문제의 발전 또는 수습에도 확실히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한-일 관계를 상대적으로 대등한 관계로 보는 시각이 전에 비해 강해졌다는 것이 이 문제에 관한 한국 사회의 자세를 뒷받침하고 있다. 또 적어도 이 문제들로 한-일 관계를 필요 이상으로 악화시켜서는 안된다는 제동력이 국경을 넘어서 작용하고 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을 것인가? 먼저 우리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문제는 지금 두 나라는 서로 외교적으로 아주 어려운 과제에 직면해 있다는 사실이다. 일본은 미-일 관계만 상대적으로 좋을지 모르나 영토·역사 문제 등으로 남북한, 중국, 러시아와의 관계에서는 상당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국도 북핵 문제에 휘말려 남북관계도 예상했던 진전이 없으며, 외교적으로 꽉 막힌 느낌이 있다.

그런데 한-일 사이에는 북핵 문제를 포함해 외교에 관한 한 상대적으로 공통이익이 많다. 두 나라가 공통의 이해를 실현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이 상당히 많은 것이다. 특히 북한을 경제적으로 회생시켜 국제사회의 ‘보통국가’로 유도하는 것은 서로의 자원을 이용하면서 협력해야 할 일이다. 이렇게 한-일 협력의 가능성을 강조하는 것이 두 나라 사이에 놓여 있는 문제를 방치해도 된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다만 한-일 사이의 문제에만 집착한 나머지 양호한 두 나라 관계가 서로에게 얼마나 이익이 되는가를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상호 협력이익 잊어선 안돼

역사 문제에 관해 한-일이 100% 똑같은 인식을 공유하기는 어려울지 모르지만, 너무 괴리가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대화를 통해 좁혀야 한다. 한국 정부나 사회는 지금까지 구축해온 여러 가지 경로를 통해, 일본 교과서들의 역사인식이 어떤 문제들을 안고 있는지, 또 그러한 역사인식에 입각한 교육이 한-일 관계의 미래에 ‘왜 그리고 얼마나’ 해로운지를, 일본의 공감세력들과 함께 일본 정부와 사회에 널리 알려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한 영토 문제에 대해서는 “문제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자세가 아니라 서로 대화할 수 있는 자세가 최소한 필요하다. 그래야 이 문제에 관해 일본 정부나 사회를 납득시킬 명분을 줄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쌓았던 소중한 한-일 관계를 더욱 긴밀한 협력관계로 발전시키는 것이 영토를 얻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믿는다.

기미야 다다시/ 도쿄대 교수(현대 한국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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