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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4.10 17:42 수정 : 2005.04.10 17:42

⑬ 낙산사

국내 관음신앙 으뜸 성지
진신 찾는 기복신화 많아
몽골군 관음상 뱃속 약탈
큰불만 10여차례 수난도

산불로 불탄 강원도 양양 낙산사는 불국사나 해인사에 버금갈 정도로 국민적 관심이 높은 고찰이다. 불자에게는 기도발이 잘 먹히는 관음신앙의 성소로, 일반인들에게는 동해와 솔숲을 낀 수려한 경관으로 알려진 까닭도 있을 것이다. 사실 현 문화재청장인 미술사가 유홍준씨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볼 만한 유물이 거의 없는 절’이라고 혹평한 대로 낙산사는 숱한 화재로 고풍을 잃어버렸다. 불탄 원통보전이나 화마를 면한 홍련암, 의상대 모두 50년대 이후 지어졌다. 그럼에도 대표적 명찰의 지위를 누려온 것은 어느 고찰보다도 묵향 어린 기록과 전설이 풍성하다는 데서 비롯한 바 크다. 창건주인 7세기 의상대사부터 일제시대, 한국전쟁기까지 묵향 가득 전해져온 설화와 전설, 풍경시들은 이 절의 위상을 대변하고도 남는다.

낙산사는 남해 보리사, 강화 보문사와 함께 국내 3대 관음신앙의 성지이며 이들 중 가장 으뜸 자리를 차지한다. <조선왕조실록><동국여지승람> 등의 역대기록들을 보면 낙산사는 왕실부터 노비까지 계층을 초월해 기도처로 사랑받았다.그것은 중국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의상이 관음보살이 현신했다는 이곳을 동방의 보타락가산(서역에 있는 관음보살이 사는 산)으로 간주하고 관음신앙의 본산지로 만든 데서 기인한다. 관음보살은 고통받는 중생들을 자비로 감싸안고 상처를 다독거려주는 모성적 불신이다. 때문에 불자라면 누구든 찾아뵙고 빌고 싶어했다. 여기에 바다에 접한 영험한 기도처로서 공간환경도 한몫을 했다. 낙산사 설화들이 대부분 관음보살을 직접 보고 복을 얻으려는 곡절의 과정으로 채워진 것도 이런 까닭이 있다. 관음보살이 해안 굴속에 산다는 얘기를 듣고 의상이 재계하며 기도하자 동해의 용과 팔부중상한테서 여의주와 수정염주를 받고 마침내 진신을 보았다는 <삼국유사>의 기록이 이를 말해준다. 그의 친구였던 원효가 낙산사로 관음보살을 보러가던중 여인으로 변신한 관음을 희롱하려다 되려 따돌림 당하고 진신을 보지못했다는 설화또한 익히 알려진 바다. 그런가하면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12세기 고려 때의 중신인 유자량이 병마사가 된 뒤 낙산사 관음굴에서 향을 피우며 인사를 드렸더니 파랑새가 꽃을 물고 날아와 갓 위에 떨어뜨렸다는 전설도 전해진다. 지금도 바닥 구멍으로 관음굴 해벽이 보이는 홍련암에는 파랑새를 만나려는 불자들의 행렬이 줄을 잇곤 한다. 관음보살의 자태를 얼마나 보고 싶었기에 그의 화신으로 알려진 파랑새 자체를 신격화했을까. 숱한 전란과 학정으로 핍박받던 백성들이나 정변으로 마음 놓을 새 없던 왕족, 귀족들 모두 관음보살에 유난히 귀의하고 싶어했던 민족사의 지난날이 그려지는 듯 하다. 11~12세기 이곳을 참례한 문객 김부의는 이렇게 읊고 있다. ‘한 번 바닷가 높은 곳에 오르고서는/ 머리를 돌리니 티끌 근심 없어졌노라/ 대성(관음보살)의 원통한 이치를 알고자 하면/ 성낸 물결이 산밑에 부딪히는 소리를 들을 것이다...’

묵향 가득한 이 절의 역사가 또한 잔혹한 약탈과 파괴로 점철되어있다는 것이 답사객을 슬픔에 젖게 만든다. 절의 사적기를 보면 통일신라 시대부터 일어난 큰 화재만 10차례가 넘는다. 대개 국내 고찰들은 대몽골 항쟁기와 임진왜란, 한국전쟁 때 불탄 역사를 지녔는데, 낙산사는 여기에 더해 신라와 고려, 조선 후기 숱한 실화와 산불로 당우가 불타버리는 참화를 겪었다. 28년 낙산사 본사였던 건봉사에서 펴낸 <건봉사급건봉사말사사적>의 낙산사 사적을 보면 절 건물은 원통전 9칸, 영산전 6칸 등 108칸이나 되었지만 한국전쟁 때 홀랑 타버리고 53년 4월 1군단장 이형근 장군이 원통보전 범종각을 새로 지어 중수하며 역사를 이어갔다. 하지만 이번 산불로 낙산사는 다시 맨땅에서 관음보살의 원력을 빌며 불사를 해야할 처지에 놓였다. 13세기 몽골군이 쳐들어와 이 절 관음보살상의 뱃속 유물을 털어갔을 때 당대의 문사 이규보가 남긴 비장한 한시를 의지삼을 만하다.

‘슬프다. 저 흉악한 오랑캐들이 여러 곳 침략할 때 절과 불상들이 훼손 당하지 않은 것이 없었으니, 우리 대성(관음보상)의 존귀한 몸체도 그런 피해를 당했네. 형체는 간신히 보존되었으나, 뱃 속 귀한 보물은 모두 노략질했으니 불상 안이 텅 비어 버렸네. 무릇 성인의 경계는 본래 차고 비는 소식의 이치가 없는 바이니 그 진체에 어찌 훼손이 있을 손가…저들은 업신여겨 손상입히고 나는 공경해 보수하네…’

관음보살은 절대로 속세에 자태를 보이지 않고 다른 모습으로 슬쩍 바뀌어 중생들을 관찰한다고 한다. 이번 산불 참화 때 원통보전에 있던 보물 1362호 건칠관음보살좌상은 다른 곳으로 미리 옮겨져 화를 면했다. 넌지시 천계에서 이를 지켜봤을 관음보살은 불탄 절터 어딘가에 무슨 모습으로 변신해 있을까. 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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