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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4.17 21:34 수정 : 2005.04.17 21:34

우리말에 ‘지금’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이 ‘어굴하기’까지는 안 해도 ‘억울’을 당하고 있다. “엉뚱한 죄명을 뒤집어써서 분한 것”이 아니라, “괜히 억눌리고 시달려서 느긋하지 못하고 답답한 처지에 있다”는 뜻이다.

왜냐 하면, 우리 사전들을 보면 안다.

총독부 <조선어사전>(1920)에는 ‘지금’이라는 말이 없다. 있는 것은 오직 헛것 ‘지우금’의 준말로 나오는 ‘지금’(至今)뿐인데, 그것도 꼬락서니가 “지금(至今)=우금(于今)=지우금(至于今)=지우김일’(至于今日)” 식이다. 그것들은 말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다.

이것은 어처구니 없는 헛짓이다. ‘지금’(至今)이라는 준말도 그 본말 ‘지우금’(至于今)의 뜻이 <새우리말큰사전>(1974)의 풀이로는 “예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라는데, 도무지 쓴 일도 없고, 쓰지도 않고, 쓸 것도 아닌 완전한 허깨비다. 그런 뜻으로는 우리말에 ‘아직, 아직껏, 여태, 여태껏, 입때, 입때껏, 지금까지, 지금껏’ 들이 얼마든지 있다.

한편, 문세영 <조선어사전>(1938)부터는 ‘지금’(只今)이 따라 붙는다. 이 ‘지금’(只今)은 이태백 시에 “只今惟有 庶+鳥 古+鳥 飛”라는 것이 있으니까 헛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중국에 있다는 것이지, 우리와는 상관없고, 우리는 쓰는 일이 없다.

중국에서도 ‘즈진’(只今)보다는 ‘진스’(今時), 당진(當今), 무샤(目下), 팡장(方將), 팡짜이(方在), 루진(如今), 지진(卽今), 셴진(現今), 셴스(現時), 셴짜이(現在) 들을 더 쓰는 것 같다.

중국에 있다는 ‘지금’(只今)도 우리한테는 상관이 없는 것이다.

일본 모로하시 <대한화사전>에 있다는 ‘지금’(只今)도 그 뜻이 “지금에 이르기까지”이므로 우리 ‘지금’과는 다르고 우리와는 상관 없는 것이다.


정재도/한말글연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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