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저녁 독일 부퍼탈 샤우스필하우스에서 공연된 안무가 피나 바우슈의 ‘한국’ 주제 신작 탄츠테어터 ‘새 작품 2005’의 공연 장면 가운데 등목하는 대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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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동적인 한국 보이나요 독일 중서부의 부퍼탈. 37만명의 작은 공업도시이지만 두 명의 세기적 혁명가를 품어냈다. 프리드리히 엥겔스. 부유한 공장주의 맏아들인데 부퍼탈 지역 유산 계급의 위선을 지켜보며 사회에 눈을 떴다. 그리곤 19세기 사회주의 혁명가가 됐다. 피나 바우슈(65)가 다음이다. 연극과 무용의 경계를 허문 그만의 ‘탄츠테어터’는 이제 엄연한 예술 장르다. 부퍼탈에 터를 잡은 피나의 ‘탄츠테어터 부퍼탈 피나 바우슈’는 그래서 20세기 무용의 혁명가다. ‘사우스필하우스’ 공연 성황
6월22일부터 서울로 무대 옮겨 ‘한국’을 주제로 꼬박 2년에 걸쳐 만든 피나 바우슈의 2005년 신작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 15일(현지시각)부터 부퍼탈의 ‘샤우스필하우스’ 무대에 오른 ‘새 작품 2005’(Neues Stuck 2005)다. 로마를 소재 삼은 <빅토르>로 1986년 시작한 ‘세계 도시 시리즈’의 13번째 “난산”이기도 하다. 극장을 찾은 지난 17일(현지시각) 저녁 6시, 745석은 꽉 찼다. 9일치 공연이 3일만에 매진됐다. 하지만 그건 피나 바우슈의 이름값이다. 신작의 몫은 공연 뒤 기립을 포함해 전 관객이 퍼부어준 10여분의 박수와 못 박힌 듯 오랜 여운이다. ‘한국’에 대한 시선이 단편의 춤조각으로 열거된다. 정연한 논리로 나열되진 않지만 산만하지 않다. 구심점이 있어서다. 한국적 색감과 안감으로 짠 여성 무용수의 천연 색색 드레스가 우선 눈에 띈다. 여성의 역할이 특히나 강조되는데 지친 현대인(남성)을 유혹하고 도발하고 씻겨주고 달래며 안아주는, 이를테면 표현(삶)의 원시적인 힘처럼 기능한다. “서울을 테마로 한 신작이란 기사를 보고 왔다”는 브레멘(독일 북부)의 데이비드 크론(39·WDR 방송국 무대설치)이 “마치 ‘귀향길’을 표현하는 듯했다”고 전한 소회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여성무용수가 집단적으로 남성의 등목을 해준다. 자장가를 불러주고, 상의를 벗거나 관객을 조롱하는 듯한 표정을 짓기도 한다. 그에 따라 관객은 불편하거나 폭소를 터뜨린다. 피나는 줄곧 “언제나 ‘빨리빨리’로 지쳐있는 한국인의 모습”과 “다른 한편으로 느껴지는 강한 힘과 역동성”이 맞선다고 말했는데 그 대비가 요부의 것에서 신부의 것으로, 투우사의 망토 또는 걸레나 사랑의 정표로 쉴 새 없이 변이되는 드레스를 통해 도드라진다. 흙으로 덮은 <봄의 제전>, 물로 채운 <아리안> 등에서 볼 수 있듯 피나에게 무대 배경은 더없이 중요하다. 새하얀 암벽 조형물을 무대에 세웠다. 마치 삶의 근원으로 다가서는 역로를 의미하듯, 암벽 들머리를 오르내리고 무대를 뛰는 무용수들을 따라 관람객이 덩달아 숨차고 고통스럽다. 대번에 암벽을 수직으로 가로지르는 등반가의 출연은 그래서 낯설다. 인파로 몰리는 백화점, 한강변 휘황한 불꽃쇼, 화려한 꽃밭 따위 동영상이 암벽에 투영되면, 작은 무대는 고스란히 ‘한국’으로 확장된다. 강박적으로 반복되는 피나 바우슈식 춤사위는 여전하다. 하지만 음악이 전통 악기의 산조, 대중가요 따위 우리에게 낯익은 소리라면 느낌은 널을 뛴다. 피나는 “가사보다 하나의 소리로서 음악을 차용했다”고 했지만 감평은 오직 관객의 몫이다. 특히 <잔디에 베인 나무>(장윤규 곡)에 춤을 얹진 디타 자스지피의 춤은 압권인데, 살풀이에 발레를 버무린 양 강하고 현대적이다. 거기엔 가사를 이해하는 한국인만의 감성이 따로 자리할 터다. 무대 감독 피터 팝스트는 “한국을 알려면 여행서적이나 다큐를 보면 된다”고 말했다. 관람객 비드 카이프(43·사회복지사·부퍼탈) 는 “예전 봤던 작품보다 밝고 친근하다”며 기립박수를 쳐놓고는 “어떤 게 한국적인 거냐”라고 묻는다. 아무래도 이 작품은 한국을 의식하고 그린 대가의 추상화 한편 정도로 봐야할 듯하다. 지난 10월 하순, 한국을 직접 답사한 흔적이 곳곳에 녹아있지만 지나치게 형식적 소재만 빌렸다는 지적도 가능할 것 같다. 하지만 피나는 줄기차게 작품을 다듬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오는 6월22일~26일, 개관 5돌을 맞아 작품을 위탁한 엘지아트센터에서 비로소 제목을 단 공연 만날 수 있다. 그리곤 전 세계 무대 곳곳에 오르게 된다. 부퍼탈(독일)/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사진 엘지아트센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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