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을 밝히는 작업보다 허망한 환상을 심어주는 작업이
거대한 산업으로서 군림하게 된다
지금은 객관적 인식을 기초로 한 현실개혁이 요청되는 시대다
잠재성의 사유가 중요한 것이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이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보이는 것이 전부라면 새로운 무엇인가가 이 세상에 나타나는 일이란 없을 것이다.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더 넓게 말해 감각으로 확인되지 않던 무엇인가가 생겨나기도 하고 또 보이던 것이 사라지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감각으로 확인되는 세계가 전부가 아니라 비가시의 세계, 감각을 넘어선 세계도 있음을 확신하게 된다. 말할 필요도 없이 비가시, 비감각의 세계가 가시, 감각의 세계와 별도로 따로 존재할 리는 없다. 서울과 뉴욕이 따로 존재하듯이 그렇게 두 세계가 따로 존재할 리는 없는 것이다. 세계는 하나이다. 다만 하나인 세계가 우리에게는 감각으로 확인되는 차원과 확인되지 않는 차원으로 구분되어 존재한다. 그래서 우리는 현실세계와 비-현실세계를 구분한다. 그런데 이 비-현실세계를 사유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방식이 있다. 그 핵심적인 것들 중 하나가 ‘잠재성’(virtuality)이다. 잠재성 개발할수록 진실 보여 바둑을 생각해 보자. 흑백의 바둑돌이 20개 놓여 있다. 두 기사가, 예컨대 이창호와 이세돌이 열심히 바둑판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은 도대체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일까? 이미 놓인 20수를 볼 때도 있겠지만, 두 사람은 그 외의 공간도 샅샅이 훑어보고 있다. 두 사람은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일까? 바둑을 두는 사람들이라면 모두 알고 있듯이, 이들은 지금 “수를 읽고 있다”. 그런데 도대체 이 ‘수’라는 것이 무엇일까? 수는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분명 없다. 그러나 바둑 두는 사람이 지금 환상을 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길들’이라고 부르는 어떤 객관적인 것들을 보고 있다. 더구나 두 사람이 함께 그 길들을 보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한 사람이 홀로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이 서로 ‘머리싸움’을 하면서 그들에게 공통된 길들을 보고 있는 것이다. 그 길들은 분명 존재한다.
이 길들의 존재는 고수와 하수의 구분에도 중요하다. 만일 객관적으로 길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래서 누구는 그 길들을 더 잘 보고 누구는 더 잘 보지 못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어떤 사람은 상대적으로 고수이고 다른 사람은 상대적으로 하수가 되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고수와 하수는 분명 구분된다. 하수가 보지 못하는 그 무엇을 고수는 본다. 하수가 살아나갈 수 없다고 판단하는 공간에서 고수는 살아나갈 수 있는 길을 읽어내는 것이다. 바로 이런 것, 즉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데 마음에는 보이는 것, 감각으로는 확인되지 않는데 우리 정신으로 읽어낼 수 있는 것은 바둑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당구를 칠 때도, 야구경기를 할 때도, 미술관에 전시를 할 때도, 결혼식을 할 때도, 이런 차원은 언제나 존재한다. 그런데 이렇게 감각으로는 확인되지 않지만 우리의 머리로, 정신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존재론적으로도 대단히 중요하다. 이 차원을 개념화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20세기 후반에 들어와 각별하게 새롭게 주목된 것은 ‘잠재성’의 개념이다. 이 개념은 라이프니츠와 베르그송에 의해 다듬어졌고 들뢰즈에 의해 새로운 의미가 부여되었으며, 21세기에도 여전히 중요하게 다루어질 핵심적인 존재론적 화두들 중 하나라 하겠다. 잠재성은 가능성과 다르다. 이것은 곧 현대 존재론의 잠재성과 컴퓨터 공학의 ‘버추얼 리얼리티’(virtual reality)는 다르다는 것을 뜻한다. 컴퓨터 공학의 ‘버추얼 리얼리티’는 ‘가상현실’이다. 철학적으로 정확하게 표현하면 차라리 ‘버추얼 액추얼리티(actuality)’라 해야 할 것이다. 어쨌든 이 가상현실은 잠재성이 아니라 가능성을 뜻한다. 잠재성과 가능성은 어떻게 다른가? 가상실재의 ‘버추얼’은 ‘가짜’라는 뜻을 함축한다. 가상현실은 실제 현실에 대한 지각을 바탕으로 그것을 변형시킨다. 예컨대 강아지를 지각해서 그것의 이미지를 만든 다음 그 이미지를 변형시킬 수 있다. 그래서 바로 그 강아지인데 꼬리를 두 개 가진 경우, 귀가 없는 경우 등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 점에서 가능적인 것은 상상적인 것과 통한다. 즉 현실에서 출발하되 그것을 변형시켜서 그것과는 다른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 상상적인 것이다. 때로는, 아니 상당히 자주, 이미 상상한 것에 다시 상상을 덧붙여 변형하며, 그런 변형을 계속된다. 이렇게 현실보다 훨씬 외연이 큰, 즉 실제 현실보다 더 범위가 넓은 차원이 가능의 차원이며, 가능의 차원은 상상의 차원과 같다. 판타지산업은 가상성 극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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