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
땅이름/청천·서흥·방산·곡산 |
494년 문자명왕 3년 7월에 고구려는 신라와 살수(薩水) 들에서 겨뤘다. 신라사람들이 져서 견아성(犬牙城)을 지키자 고구려군이 에워쌌다. 이때 백제군 3천이 신라를 도우러 오니 고구려군이 물러났다. 여기서의 ‘살수’는 청천강이 아니고 하나는 충북 청천면으로 보인다. 청천(淸川)은 신라때 살매현(薩買縣), 경덕왕때부터 청천으로 불렸다. 표기상 신라때는 ‘살모이/살물’이었다.
529년, 고구려 안장왕이 백제의 북쪽을 쳐들어와 혈성(穴城)을 뽑았다. 백제 성왕은 좌평 ‘연모’에게 일러 보병과 기병 3만을 이끌고 오곡(五谷) 벌판에서 싸웠으나 고구려를 이기지 못하였다. 숨진 이가 2천 남짓 되었다. 오곡은 황해도 서흥(瑞興)으로, 고구려때는 오곡군·우차운홀(五谷郡·于次云忽), 고려때 동주(洞州)였다. 고구려말 ‘돈/톤’(谷)으로 볼 때 ‘云’(운)은 ‘屯’(둔)의 잘못이거나 표기상 ‘톤/돈’을 적는 말일 것이다. ‘우치’(五)는 고구려말로 다섯이며. 일본어 ‘이츠-’(五)와 견주어진다. 서흥의 옛이름 ‘우치돈골’은 ‘우치동골’로 되어 ‘동골’만을 따서 고려때 ‘동주’로 이름을 붙인 듯하다.
땅이름에 셈씨가 나오는 곳이 강원도 양구군 방산면(方山面)과 황해도 곡산군(谷山郡)이다. 고구려때 방산은 삼현현·밀파혜(三峴縣·密波兮)로 ‘밀바기’였으며, 고구려말 ‘밀’(3)은 신라말에서도 함께 쓰였다. 곡산은 고구려때 십곡(성)현·덕돈홀(十谷(城)縣·德頓忽)로, ‘더/덕’(10)은 고구려말로 ‘열’(10)을 가리켰다. 고대말 ‘밀’과 ‘더/덕’은 각각 일본말 ‘미츠’(3), ‘토/토워’(10)와 견주어진다. 셈씨 ‘1, 3, 5, 7, 10’에서 고대 우리말과 일본말은 같았다.
최범영/한국지질자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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